"처음엔 놀랐었죠. 그 많은 사람들이 매일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에 놀랐어요. 그런데 사람 숫자가 점점 늘어나더라고요."

최루탄이 그렇게 많이 쏟아지는데도 물러서지도 않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이번엔 우리가 이길 수 있겠다는 걸... 물론 불안감이 다 사라졌던 건 아니에요. 이러다 사람들이 더 희생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더라고요. 광주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었는데, 서울에서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양손에 피를 묻혔던 사람들 속을 어찌 알겠어요.

▲ 1987년 6월 26일 '6. 26 국민평화대행진'에 참석해 최루탄 추방을 결의하고 있는 '서울지역 8개 의과대연합' 학생들 ▲ 1987년 6월 26일 '6. 26 국민평화대행진' 출정식에서 '바람맞이' 춤을 시연하고 있는 이애주 교수

평화행진이야말로 민주제도가 당연히 보장하는 국민의사의 표현방법이며, 우리의 간절한 호소와 요청이 전적으로 짓밟힌 이 시점에서 분명히 또 평화적으로 국민의 뜻을 밝힐 수 있는 유일의 길이다. 따라서 당국도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보려는 성의가 있다면 마땅히 평화대행진을 조장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1987년 6월 25일 "성명서 - 6.26 국민평화대행진을 앞두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되면 누가 대통령이 될지 중학교 다니는 우리 아이도 알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던 노태우의 발표 내용이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냥 믿기엔 지금까지 그들이 쌓아 온 업보가 너무 많았죠.

정말 기뻤어요. 더 이상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기뻤어요.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게 됐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았고요. 우리 커피숍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벌써 헌법 개정과 대통령 선거 이야기로 신이 나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6월 29일이에요. 잊을 수 없는 정말 좋은 날이죠. 그래서 오늘 하루 커피가 공짜예요.

▲ 1987년 6월 29일 '6. 29 선언'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1일 차 값 무료'를 선언한 가화커피숍

6.29선언은 전 국민이 대동 단결하여 투쟁한 성과이다.
오직 민주화의 일념으로 온갖 분열과 대립을 척결하고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 노동자와 국민은 투쟁하였습니다. 경적을 울리고, 손수건을 흔들고, 가두에서 함께 빗발치는 최루탄 속에서, 번뜩이는 검거 경찰의 눈을 주시하며 콧물과 재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하자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으며, 고문을 당하고 감옥 속에서 까지 저항하고 투쟁하였습니다.
1987년 "6.29 선언은 전 국민이 대동 단결하여 투쟁한 성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