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면 인쇄기의 스위치를 다시 올리곤 했어요. 우리 인쇄소에서는 밤낮으로 하는 일이 달라요."

낮에는 올 컬러로 장식된 음식점 전단지도 찍고, 화려한 화장품 광고지도 찍고, 출판사 최신 전집 홍보물도 찍어 내요. 하지만 밤만 되면 검은색 잉크 자국이 선명한 작은 인쇄물을 찍어내거든요. 작은 글씨로 가득 차 있지만 내용은 참 좋더라고요.

▲ 1987년 6월 8일 '6. 10 국민대회' 관련 유인물을 배포하려는 시민들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 ▲ 1987년 6월 10일 거리에서 시민들의 가방까지 뒤져가며 불심검문을 강행하는 경찰들

서울시경은 4일 서울지역 26개 대학생들이 오는 6일 고려대에서 서울지역대학 연합문화제를 갖는 것과 관련, 관내 인쇄업소에 대한 검문검색을 실시, 이 집회를 알리는 팸플릿 등 유인물을 회수하고 제작자를 검거토록 일선 경찰서에 지시했다.
1987년 6월 4일 "대학연합 문화제 대비 인쇄소 검문검색 강화", 경향신문

어제는 경찰들이 충무로와 을지로 인쇄골목을 휘젓고 다닌 모양이에요. 반정부 선전물을 찍어주는 인쇄소를 찾겠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대요. 흉흉한 소문이 동네방네 다 났더라고요. 대부분 경찰 욕을 하더라고요. 무례하고 강압적이라고 말이에요. 흑백 인쇄물 몇 장이 뭐 그리 무섭다고 경찰까지 나서서 그 난리를 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에요.

저 유인물들을 해가 뜨기 전에 포장까지 끝내야 해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요즘 우리 인쇄소에선 참 잘 지켜지고 있어요. 6월의 깊은 밤이 또 이렇게 흘러가고 있네요. 밤만 되면 인쇄기처럼 정신이 맑아지는 우리 남편. 그 피곤한 얼굴 좀 누가 다리미로 밝게 펴줬으면 좋겠어요.

▲ 1987년 6월 버스 승객에게 최루탄 추방 관련 전단물을 나누어 주는 교회여성연합회 회원들

치안본부는 9일 오전 9시부터 전국 경찰에 갑호비상근무령을 발동,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편 대회 당일인 10일에는 전국 20개 대회장과 도심 시위 예상지역에 모두 3백75개 중대 5만 8천여 명의 병력을 배치, 대회 원천봉쇄 및 시위 저지와 공공건물 등 주요 시설물 보호에 나서기로 했다. 경찰은 이에 앞서 8일 밤 민추협 사무실과 전국 1백10개 대학을 수색, 각종 시위용품 4천3백여 점을 압수하고 9일 아침부터 재야인사들을 가택연금 조치했다.
1987년 6월 9일 "경찰 5만8천 투입 6.10 봉쇄작전",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