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관사예요. 지하철의 맨 앞칸이 내가 일하는 일터죠. 벌써 13년 차 베테랑이네요."

나는 이곳 지하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통해 바깥의 세상을 봐요. 6월 내내 이곳도 긴박한 나날의 연속이었어요. 최루탄을 피해 계단으로 내려오는 시민들을 보면 거리의 모습이 머리 속에서 그려졌어요. 지하철 두 번째 칸에 올라 탄 대학생들의 얼굴은 초여름 강한 햇빛에 까맣게 그을려 있었을 거에요.

▲ 1987년 8월 파업을 결의하고 거리 행진에 나선 노동자들과 이 모습을 옥상에서 바라보는 시민들 ▲ 1987년 8월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버스 운행 중단"을 선언하고 집회를 개최한 삼선 버스기사들

서울지하철공사 소속 기능직 고용직 근로자 1천5백여 명은 17일 정오부터 서울 도봉 상계2동 847 창동 차량기지에서 1시간 동안 제3차 노조결성 보고대회를 가졌다. 근로자들은 이날 대회에서 "지하철공사 근로자들은 그동안 공기업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철저한 의무만을 강요 당한채 권익을 빼앗겨왔다"며 "안전지도관 제도 철폐", "계급장 철폐", "기본급 인상", "독립채산제 실시" 등 20개 항을 요구했다.
1987년 8월 17일 "서울지하철 천여 명 노조 결성 보고대회", 동아일보

우리도 근무가 없는 날이면 거리로 나갔어요. 거리에 서면 오랫동안 쌓여있던 노동의 피곤함이 금방 사라지곤 했지요. 최루탄 냄새는 우리에게 피곤함을 허락하지 않거든요. 오로지 눈물과 콧물, 기침만 선사할 뿐이죠. 학생들과 함께 거리에 서면 여기가 내 나라고 우리가 진짜 국민이 된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니깐 우리가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거리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일터로 가져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민주노조를 만들었지요. 우리가 바랬던 건 시민의 안전과 직장의 민주화였어요. 적절한 인원 증원과 안전을 위한 시간 배분, 그리고 노동에 합당한 임금인상을 요구했어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위협과 탄압이었죠. 아직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미완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 1987년 8월 12일 "임금 인상"과 "사원 복지" 개선 요구 사항을 벽에 적어 놓고 파업을 진행 중인 한진교통노동조합

이제 우리 노동자들도 참된 민주를 향한 힘찬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우리들의 행진을 멈추게 할 수도 없고 또 멈춰서도 안됩니다. 터오는 새날을 향해 더욱 힘차게 나갑시다.
1987년 8월 26일 "광주시내 회사택시 연대파업 투쟁보고서", 광주직할시 민주택시 운전자협의회, 한국기독노동자 전남지역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