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의 휴가였는지 모르겠어요. 거의 1년 만에 맞이한 천금 같은 휴가였죠. 그런데 급하게 부대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하늘에서 폭파됐다는 소식이에요. 16년 만에 다시 찾아 온 대통령 선거와 88올림픽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끔찍한 테러가 발생한 거죠. 그러니 전군은 비상태세에 들어가게 됐고, 저는 휴가가 취소되서 급하게 부대로 돌아가게 된 거예요.

▲ 1987년 11월 1일 '서울노동조합운동연합 결성식'에 모여 선배 노동열사들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노동자들 ▲ 1987년 11월 22일 제13대 대통령 선거 유세에 집중하기 위해 구조물 위까지 올라간 시민들

승객 95명과 승무원 20명 등 1백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를 떠나 서울로 오던 KAL 858편 여객기가 29일 하오 2시쯤(한국 시간) 버마 랭군 상공에서 실종됐다. 사고기는 실종 2일째인 30일 상오까지 기체의 잔해 등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항공전문가들은 이 비행기가 고성능 폭발물에 의한 공중 폭발이나 뱅골만의 이상 기류에 휘말려 삽시간에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1987년 11월 30일 "KAL기 실종 115명 탑승 29일 하오 2시", 매일경제

1987년은 쉽지 않은 해였어요. 계엄령 선포가 언제 발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번엔 광주가 아니라 서울이 타깃이라는 소문까지 퍼져 나갔어요. 나라를 지키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국민을 진압하기 위한 훈련이 우리의 임무였어요. 한동안 강도 높은 시위 진압 훈련이 계속됐어요. 언제든 출동할 수 있게 비상 대기 중이었죠.

우리 같은 군인에게 6월항쟁은 이런 의미였어요. 일병에서 상병으로 진급하는 동안 일어난 큰 사건이었죠. 시위 진압 훈련이 중지된 건 6.29선언 직후의 일이었어요. 6.10민주항쟁이 가져다준 민주화의 바람이 부대 안까지 불어오는 데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요. 상습적인 구타와 폭력을 한 번에 없애 버리기엔 잘못된 관습의 뿌리가 너무 깊어 보이거든요.

▲ 1987년 11월 "학생의 날을 맞으며",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새로이 자기 변신을 시도하며 재집권을 탐색하는 현 군부독재정권 하에서의 공정한 선거 보장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임을 40여 년 독재의 집권 기간이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선거가 독재 종식의 투쟁이 되기 위해 국민적 요구를 정확히 수렴해나갈 공정성의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의 구체적인 대안으로 공정선거 보장을 위한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1987년 11월 "학생의 날을 맞으며", 경희대학교 총학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