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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아이들의 꿈도 함께 가져갔습니다. 맑은 영혼들의 아름다운 꿈을...
▲ 아이들이 가졌던 꿈 세월호는 아이들의 꿈도 함께 가져갔습니다. 맑은 영혼들의 아름다운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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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신항에 '세월호'가 도착하는 지난 3월 31일 김포시민문화회관에서는 <416, 분노를 기억하라> 마지막 행사가 열렸습니다.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만나러 대부분의 유가족이 목포로 간 날이었습니다.

2학년 5반 큰 건우아빠인 김광배 4.16가족협의회 인양분과팀장은 김포시민들에게 세월호 진상규명 과정의 의문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감추는 사람이 범인입니다'라는 그의 말 속에는 세월호의 진실이 숨어있는 거 같았습니다.

모든 의문점을 이야기한 후 건우아빠는 말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여러 가지 병이 들 거 같은데... 암이나 다른 병에 걸려도 상관없는데 치매만 안 걸렸으면 좋겠어요. 우리 건우를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봄날 같던 건우, 너의 생일을 축하해

혹여 사랑하는 아들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절대로 치매에 걸리면 안 된다는 아빠의 바람이 아픈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던 마지막 행사였습니다. 4월 8일이 건우생일이라며, 사랑하는 아들을 생일날 만날 것 같이 상기된 표정으로 미소 짓던 건우아빠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건우에게 생일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단원고약전에 실린 건우의 짧은 이야기를 시로 각색해서 낭송파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건우의 생일날 저녁에 건우아빠에게 보냈습니다. 엄마, 아빠의 마음 속에 늘 살아있는 건우의 생을 건우 대신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빠엄마의 든든한 아들이었던 건우는 큰건우로 불린다. 드럼과 베이스를 치고 심리학자가 꿈이었던 건우. 아빠 김광배씨는 아들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치매가 제일 무섭다고 했다.
▲ 2학년 5반 김건우 아빠엄마의 든든한 아들이었던 건우는 큰건우로 불린다. 드럼과 베이스를 치고 심리학자가 꿈이었던 건우. 아빠 김광배씨는 아들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치매가 제일 무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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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봄날 같은 건우에게

벚꽃잎 환한 봄날이었지.
촉촉한 봄비에 새싹들이 연둣빛 내뿜던 4월이었지
그래 너는 4월 8일 세상에 왔어.
봄꽃들처럼 환하게 엄마, 아빠의 첫째 아들로 와주었구나.

끝까지 파고드는 기질이 아빠를 닮아서
궁금한 것 있으면 끙끙거리며 알아내고야 마는 직성.
엄마에게는 드라마 그만보라는 잔소리꾼이기도 했고
동생에게는 엄하면서도 의젓하게 챙겨주는 딱, 형이었지.
아빠는 그런 너를 참 많이 사랑했단다.
네가 하고 싶은 것 있으면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니'하며
너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지.

중학교 때, 베이스기타 치고 싶다던 네게 기타를 사주자
넌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지.
그때 연주하던 네 모습, 완전 멋진 쿨가이였어.
너보다 더 잘 친다며 친구에게 베이스를 넘겨주고
다시 드럼을 연습해 드럼주자가 됐던 우리 건우,
넌 정말 멋진 녀석이야.

못되게 구는 친구는 시간을 두고
혼내주겠다던 사내다움도 있었던 네가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 역할을 했었다니.
그래서 심리학자로 진로를 결정했었구나.
속 깊게 정말 잘 커주었구나. 건우야.

과묵한 카리스마 속정 깊은 너에게는
의리로 똘똘 뭉친 다섯 친구들이 있었지.
그 친구들이 세월호를 타고 먼 하늘의 별이 되었어.
이제는 너희 다섯 친구들의 아빠들이
너희들처럼 다섯 친구가 되었단다.

네가 살아서 꿈을 펼칠 수 있었다면
넌 드럼 치는 심리학자가 되어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치유했을 거야.

곧 벚꽃이 떨어질 거야.
아무리 예쁘게 핀 꽃도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니까.
그중엔 좀 일찍 떨어지는 꽃도 있겠지.
우리 건우처럼 말야.

환한 꽃들이 기억 속에 있는 것처럼
건우의 환하고 멋진 모습도 기억 속에 늘 있을 거야.
사랑하는 우리 건우.
늘 곁에 있어줄 거지.

사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드럼과 베이스주자를 하며 열심히 밴드 활동을 했던 속 정 깊은 쿨 가이. 어쩌면 인기 밴드의 리더로 세상을 살았을 건우처럼,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저마다 가슴에 품었던 꿈을 따라가 봅니다.

단원고 2학교 2반 유정이는 빵집을 운영하는 부모님께 멋진 글씨로 효도하는 기특한 딸이었다.
▲ 오! 유정빵집 단원고 2학교 2반 유정이는 빵집을 운영하는 부모님께 멋진 글씨로 효도하는 기특한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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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유정빵집' 큰 딸 유정이의 꿈

일주일에 두 시간씩 제과제빵학원에 다녔던 유정이(단원고 2학교 2반 오유정) 부모님은 안산에서 '유정빵집'을 운영하십니다. 어느 날, 학원에서 만든 쿠키를 들고 '유정빵집'에 간 유정이는 팔리지 않은 빵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해요.

하지만 유정이 아빠는 가게 안에 늘 구수한 빵내음이 가득하고 손님들이 먹고 싶은 빵을 마음껏 고를 수 있어야 한다며 빵 굽는 일을 멈추지 않았답니다. 그날 남은 빵은 저녁에 반짝 세일하기도 하고 이웃에 나누어주기도 하는 '유정빵집'. 그 초라한 계산대 서랍을 보면서 유정이는 많은 고민을 했답니다.

그러다 엄마 생일선물을 사기 위해 간 화장품 가게 글씨를 보고 '유정빵집'을 살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해요. 평소 할머니에게 손편지 쓰는 걸 즐기는 유정이는 노란 도화지에 예쁜 손글씨로 이렇게 썼답니다.

'오! 유정 빵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 유정 빵집에서는 맛있는 빵을 한 시간 동안 반값에 드립니다. 시간은 저녁 8시부터 9시까지입니다. 서둘러오세요.'

예쁜 손글씨가 빵집 유리창에 붙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빵을 사갔습니다. 유정이 덕에 남은 빵을 걱정하지 않게 된 '유정빵집'에 지금도 유정이의 예쁜 손글씨가 붙어있겠지요.

단원고에 들어온 걸 너무도 좋아했다는 단원고 2학년 2반 수빈이는 한국사에 매료돼 사학자의 길을 가고 싶었던 여고생이었다.
▲ 사학자의 꿈을 가졌던 수빈이 단원고에 들어온 걸 너무도 좋아했다는 단원고 2학년 2반 수빈이는 한국사에 매료돼 사학자의 길을 가고 싶었던 여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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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를 매료시킨 사학자의 꿈

단원고에 들어온 걸 너무도 좋아했던 수빈이(단원고 2학년 2반 남수빈)이는 한국사에 매료돼 사학자의 길을 가고 싶었다고 합니다. 진학할 대학교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로 미리 정해두었다고 해요.

사실 중학교 시절 수빈이는 힘든 사춘기시절을 보냈다지요. 자기 방에 독서실 책상을 들여놓고는 친구들은 좀체 만나지 않았고, 아빠와는 많은 갈등도 겪었다고 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온 수빈이가 달라진 거예요.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빈이에게 아빠가 물어봤다고 해요.

"단원고 어떠냐?"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밝고 즐겁고 자유롭다? 이 학교 오길 잘한 것 같아, 아빠. 거기 애들이 다들 순해."

집에서는 좀 멀지만 할머니집이 가까워 단원고를 선택했던 수빈이는 중학교 때와는 달리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똑 부러지게 미래 사학자의 꿈까지 키운 수빈이는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교환학생 온 케이틀린(한국이름 한솔지)과 자주 어울려 다녔는데, 젊을 때 넓은 견문을 넓혀야 한다며 유학이나 교환학생을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무남독녀 외동딸이 금쪽같았던 아빠는 그런 계획을 적극 반대하셨다고 하네요. 수빈이가 프랑스로 유학 갔다면 한국사 뿐 아니라 세계사에도 매료됐겠지요.

태권도 발차기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단원고 2학년 4반 경빈이는 태권도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 태권도지도자가 꿈이었던 경빈이 태권도 발차기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단원고 2학년 4반 경빈이는 태권도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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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차기가 일품이었던 태권도 소년 경빈이

태권도 발차기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빈이(단원고 2학년 4반)는 태권도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여섯 살 때부터 했으니 10년 넘게 태권도를 한 거지요. 경빈이의 발차기는 정말 일품이었는데 발차기하는 사진을 보면 발이 일자로 쭉 뻗어 있어 참 근사하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태권도와 공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지만, 경빈이는 둘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물론 더 열심히 해서 올림픽에 나가고 세계에서 태권도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경빈이의 꿈이었습니다. 대회에 나가면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같이 딴 경빈이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처럼 차는 애가 없다."
"팔을 귀에 붙이고 손드는 건 줄 알았잖아."

우쭐대는 경빈이에게 스승님이신 관장님은 "이겼을 때 진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같이 운동하는 친구로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만 진정한 승리를 얻는 것이다"라며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해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을 고민하는 나이가 되면서 경빈이는 공부에 더 집중하기로 아버지와 약속했습니다. 아버지는 "운동만 하는 선수로 반짝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평생 태권도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하셨고, 경빈이도 태권도 지도자로서 자격을 갖추고 미래를 위해 공부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세요. 경빈이처럼 멋진 발차기를 하는 별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임마누엘 성호는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는 삶을 살고 싶었고 그런 길을 가기 위해 사제의 꿈을 꾸었다
▲ 어린 사제 박성호 임마누엘 성호는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는 삶을 살고 싶었고 그런 길을 가기 위해 사제의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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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정의로운 사제를 꿈꾼 성호

임마누엘 성호(단원고 2학년 5반 박성호)는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는 삶을 살고 싶었고 그런 길을 가기 위해 사제가 되기로 맘을 먹었다고 합니다. 삶의 태도나 진로, 신앙적인 모든 면에서 이끌어주신 인생의 멘토 엄마도 성호의 꿈을 반기셨다고 해요.

그도 그럴 것이 성호의 집안은 친가 쪽으로 3대째, 외가 쪽으로 5대째 가톨릭집안이었으니까요. 수녀님으로 계신 이모님과는 어릴 적부터 여행도 다니고 단짝처럼 지냈다고 하니 참 자연스러운 결정인 거지요.

성호와 같은 나이인 선부동성당은 제2의 집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청소년이 할 수 있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는데 전례부에서는 미사진행 해설을 하고, 신부님 옆에서 시중을 드는 복사도 했다고 해요. 레지오활동을 통해 교리공부도 열심히 했고 성가대에서는 솔로를 맡기도 했다니 성호는 어린 사제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온 것이지요.

성호가 존경하는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중 첫 번째가 신앙의 모범이신 엄마고 두 번째가 전 생애를 남을 위해 헌신하신 이태석 신부님, 그리고 정의를 증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노무현 대통령이었다고 합니다.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의 벗이 되고, 정의를 위해 앞장서는 사람이고 싶었던 성호는 하늘나라에서 모두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세상이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게 해달라고.

단원고 2학년 9반 혜선이는 배를 고치거나 만드는 조선공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 조선공의 꿈 키운 혜선이 단원고 2학년 9반 혜선이는 배를 고치거나 만드는 조선공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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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만드는 조선공이 되고 싶었던 혜선이

허스키한 목소리에 뭐든 솔선수범하고 잘해냈던 혜선이(단원고 2학년 9반 김혜선)는 배를 고치거나 만드는 조선공이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시각디자이너가 꿈이었는데 미대 쪽은 워낙 학원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선뜻 해줄 수가 없었던 부모님의 뜻을 따라 포기한 착한 딸이었지요. 속 깊은 혜선이는 다른 진로를 선택했는데 그것이 바로 조선공이었답니다.

배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시각 디자인의 꿈도 함께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혜선이는 그때부터 조선공의 세계를 알아보았고 한국해양대학교로 진학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고 합니다. 친구들도 혜선이를 통해서 조선공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하니 참 생소한 직업이지요.

조선공에 대한 책을 사려고 서점을 돌았지만 책을 구할 수 없었던 혜선이는 조선소에 직접 가서 배 만드는 과정을 보고 싶어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다녔다고 해요. 친구들에게도 늘 그쪽 이야기만 할 만큼 정말 열정적이었다는 혜선이는 선생님의 친구 아들이 발명한 '온열구명조끼' 얘기를 듣고는 따뜻해서 사고를 당해도 오래 버틸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고 해요.

조선공이 꿈이었던 혜선이가 세월호를 타고서 얼마나 호기심 많은 눈으로 이곳 저곳을 다녔을까요. 아마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배 구석구석을 돌아봤을 거예요. 혜선이의 눈빛만큼 밝은 별이 반짝일 때마다 혜선이가 그리워질 거예요.

달콤하고 부드러운 ‘캬라멜 마키아또’를 좋아했던 수정이는 커피전문점이나 카페를 여는 것이 꿈이었다.
▲ 카페를 가지고 싶었던 수정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캬라멜 마키아또’를 좋아했던 수정이는 커피전문점이나 카페를 여는 것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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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같은 카페를 갖고 싶었던 수정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캬라멜 마키아또'를 좋아했던 수정이(단원고 2학년 10반 장수정)는 커피전문점이나 카페를 여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커피도 마시고 맛난 음식도 먹으면서 회의도 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공간이지요.

미역국과 호박볶음으로 엄마 생일상을 차렸던 솜씨를 발휘해 김치볶음밥이나 해산물을 잔뜩 넣은 해물볶음밥을 만들고 햄애그 샌드위치를 커피와 함께 내오는 자신을 상상했답니다. 엄마랑 자주 갔던 커피전문점에서 실내인테리어를 살펴보면서 미래에 차릴 카페를 어떻게 꾸밀지도 미리 그려보곤 했다지요.

'너를 사랑해 너를 부르네 너를 기억해 너를 기다리네
그대의 말 한마디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
너를 사랑해 너를 기억해
기쁨 슬픔 눈물 하늘 별 그리고 천국' - 빅뱅의 <천국> 중에서

좋아하는 빅뱅 노래 <천국>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커피향을 맡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일 거고, 그런 천국 같은 카페를 하고 싶었다는 수정이의 첫 손님으로 예약된 사람은 다름 아닌 엄마라고 해요. 어릴 적부터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던 수정이는 카페를 여는 첫 날, 향기 좋은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드리려고 했답니다. 그 안에는 '엄마, 사랑해' 하는 마음도 담겨있겠지요. 수정이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고 싶네요.

* 이 기사는 '단원고약전'(관련 스토리펀딩)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약전을 집필해주신 단원고약전작가단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도서 구입이 어려운 작은도서관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다음 스토리펀딩'으로 진행했으며 목표치 달성으로 전국 100곳의 작은도서관에 보낼 예정입니다. 이 기사는 펀딩에 게재된 기사이며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진실규명을 위해 단원고약전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국의 공공도서관에도 비치될 수 있도록 오마이뉴스에 다시 한번 게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416단원고약전, #세월호 진상규명 , #잊지말자 416 , #단원고아이들 , #펴지 못한 아이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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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가지고 사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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