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대중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스팅 내한 공연

스팅 내한 공연 ⓒ 이현파


지난 5월 31일 열린 스팅의 내한 공연에 다녀왔다. 그가 한국을 찾는 것은 올해가 네 번째로,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소극장인 '현대카드 언더 스테이지'에서 400명 관객을 대상으로 펼쳐진다는 점이 특별했다. 스팅 정도의 뮤지션을 지금 이 순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꿈같은 일일 것이다.

스팅의 공연에 간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많은 지인이 영화 <레옹> 이야기를 꺼내며 부러워했다. <레옹>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Shape Of My Heart'의 멜로디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도미닉 밀러가 선사한 처연한 기타 리프, 그리고 그 위로 울려 퍼지는 스팅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위대한 조화였다. 인생을 카드에 비유한 심오한 가사와 상관없이, 그것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마틸다를 감싸 안는 구원의 음악이었다.

한계를 거부하는 예술가, 스팅

폴리스(The Police)의 목소리이자 베이시스트였던 스팅은 80년대 '뉴 웨이브' 열풍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스팅은 자신의 영광을 가져온 음악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았다. 스팅의 창작력은 록부터 포크, 재즈, 레게 등 모든 경계를 넘나들었다. 굳이 대중적인 노래를 만들고자 애쓰지는 않았으나, 그의 멜로디는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했다. 삶과 죽음, 자유에 대한 사유를 담은 가사는 그의 음악에 지적인 힘마저 보탰다.

2014년 연말, 스팅은 미국 케네디 센터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헌정 공연에 나선 브루노 마스는 폴리스의 명곡 'Message In A Bottle'을 부르며 흥겹게 춤을 추었다. 자신의 순서를 마친 브루스 스프링스틴, 레이디 가가, 에스페란자 스팔딩, 그리고 배우 메릴 스트립도 다시 무대에 올라와 함께 노래했고, 스팅에게 박수를 보냈다. 스팅의 목에 메달을 걸어 준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떼창'의 일원이었다. 스팅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입증하는 명장면이었다.

 현대카드 Curated '스팅 내한 공연'

현대카드 Curated '스팅 내한 공연' ⓒ 현대카드


몸에 쫙 달라붙는 회색 티셔츠, 그리고 검은 청바지. 어느새 스팅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린 수수한 패션이다. 팬들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의 차림을 한 스팅이 환호 속에 무대에 올랐다. 스팅은 첫 곡 'Synchronicity II'부터 주저 없이 소리를 내질렀다. 이날 공연에서 스팅은 한 음을 길게 끄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도 했다. 스팅은 1951년생으로, 흔히 말하는 '내일모레 칠순'이다. 그러나 스팅의 목소리는 옥타브가 조금 낮아졌을지언정, 그 어떤 젊은 가수보다 명징하고 날카로웠다. 폴리스 시절의 에너지는 여전했다. '과거'로 남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스팅은 총 21곡의 노래를 불렀다. 폴리스의 히트곡, 솔로 가수 스팅의 히트곡, 그리고 'One Fine Day 등 새 앨범 < 57th & 9th >의 수록곡들이 고루 섞인 선곡이었다. 새 앨범이 오랜만에 록을 추구했기 때문인지, 이번 공연은 작은 록 페스티벌을 연상케 하는 순간이 많았다. 스팅을 '레옹 OST 부른 가수' 정도로 기억하는 사람이 이번 공연을 봤다면 이 공연의 역동성에 놀랐을 법하다.

단맛, 짠맛, 쓴맛이 모두 있는 공연

처음 접한 스팅의 공연은 단맛과 짠맛, 쓴맛이 모두 공존하는 쇼였다. 스팅의 다채로운 음악 인생처럼,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이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반도네온 소리가 아름다웠던 'Fields Of Gold', 'Seven Days'의 서정부터 'So Lonely', 'Message In A Bottle'의 역동성, 묘한 그루브의 'Desert Rose'까지. 스팅은 쉼 없이 공연의 분위기를 바꾸면서 팬들을 들었다 놓았다 'Roxanne'과 'Ain't No Sunshine'(빌 위더스 원곡)을 멋지게 매시업(mash up)한 것 역시 귀를 황홀하게 했다.

작년 초, 세상을 떠난 친구 데이빗 보위(David Bowie)에 대한 헌사도 잊지 않았다. 보위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스팅의 아들 조 섬너가 보위의 노래 'Ashes To Ashes'를 불렀고, 스팅은 이어 신곡 '50,000'(이 곡은 데이빗 보위와 프린스 등을 기억하며 만들었다)을 부르며 먼저 떠난 동료 뮤지션들을 추억했다.

"Rock stars don't never die, they only fade away. (록스타는 죽지 않아, 그저 사라질 뿐이지)" - 스팅 12집 < 57th & 9th > 수록곡 '50,000' 중에서

한창 공연의 분위기가 달아오른 중반, '스팅의 오른팔' 도미닉 밀러가 어쿠스틱 기타를 들쳐멨다. 'Shape Of My Heart'의 도입부가 시작되자마자 공연장 내에 있던 모든 사람이 탄성을 지르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곡의 비장미가 많은 사람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스팅의 목소리는 20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이보다 더 완벽한 라이브를 구현할 수 있을까?

전설과 팬들의 '상호 작용'

400명 남짓이 들어찬 작은 공연장인만큼, 스팅은 관객과 눈을 많이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스팅뿐 아니라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 역시 관객들 앞으로 가까이 와서 손을 잡아주고 미소를 짓는 등,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Englishman In New York', 'So Lonely' 등 공연 내내 관객들에게 함께 노래할 것을 유도했고, 400명의 함성은 수만 명의 목소리처럼 거대하게 돌아왔다.

ⓒ 이현파


필자가 뽑는 이 날 최고의 순간은 'Message In A Bottle'(폴리스 원곡)이 울려 퍼졌을 때였다. 평소에 가장 좋아하던 곡이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 스팅과 팬들의 상호 작용이 가장 근사했기 때문이다. 밴드가 연주를 멈추고 스팅이 잠시 무반주로 노래하며 팬들을 응시했고, 팬들은 일제히 같은 박자의 박수를 치며 또 다른 리듬 악기의 역할을 했다. 'Sending out an S.O.S'라는 구절을 다 같이 반복해서 부를 때는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던 길, 현대카드 대표이사인 정태영 부회장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는 '스팅이 관객과의 상호 작용에 몹시 만족했고, 신인 시절의 공연을 떠올리며 좋아했다'는 후문을 전했다.

스팅은 앙코르곡으로 'Every Breath You Take', 그리고 'Fragile'을 불렀다. 'Every Breath You Take'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물론 가정에 우환이 있어서는 아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 음악 자체가 몹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행복한 눈물'이란 이런 것이었다. 더 늦기 전에 그와 한 공간에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스팅은 공연을 마치고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아티스트들이 해외 공연에서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소 마을에 살았던 가난한 소년 고든 매튜 섬너는 스스로 '이것이 나의 운명인가'라고 되묻곤 했다. 고든은 쇳조각들이 부대끼는 소리 너머의 것을 꿈꿨다.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좇았고, '더 큰 삶'을 소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년은 '스팅'이 되어 우리 앞에 섰다. '레전드'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는 세상에서, 스팅은 그 이상의 표현으로 수식되어야 마땅한 예술가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수십 년 전 그 소년이 높은 꿈을 품었던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2017년이 절반 이상 남았지만, 올해 최고의 공연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눈물 날 만큼 아름다운 멜로디들이 지금도 귓속에서 춤을 춘다.

스팅 내한공연 콘서트 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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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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