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LP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마장뮤직앤픽처스의 백희성 레코딩 엔지니어 실장. ⓒ 마장뮤직앤픽처스


넌 너무 까다롭고 예민해. 만나기도 힘들어. 상처 입기 쉬워서 언제나 조심히 대해야 해. 그래서 네게 끌려.

마지막 문장이 주는 아이러니, 당신은 이해할 수 있는지?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릴 때를 떠올려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겠다. 하지만 이건 연애 이야기 아니다. 조금만 긁혀도 손상입고, 시중에서 손쉽게 구할 수도 없고, 턴테이블이 있어야만 재생할 수 있는 LP(Long Playing) 레코드판 이야기다.

몇 년 사이 LP 시장은 눈에 띄게 몸집을 키웠다. 전 세계적인 추세다. 왜일까? 왜 사람들은 구시대의 유물이라 여겨져 온 LP에 다시금 끌리는 걸까.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져서? 글쎄, 단지 그렇게 뭉뚱그리기엔 꽤 많은 이유가 있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열린 마장뮤직앤픽처스의 기자간담회에서 그 이유와 배경을 찾을 수 있었다. 마장뮤직앤픽처스는 국내 유일의 LP 제작 브랜드로, 6월 1일 LP 제작 공장인 '바이닐팩토리'를 런칭했다. 이 회사는 1968년 마장동에 설립된 유니버샬 레코드 스튜디오에서 출발했다.

'소비'하는 음악 vs. '소장'하는 음악

 국내 유일의 LP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국내 유일의 LP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마장뮤직앤픽처스


마장뮤직앤픽처스 박종명 마케팅이사는 "소비되는 음악에서 소장하는 음악으로 바뀌고 있다"며 음악 시장의 맥을 짚었다. 간담회를 시작하며 그는 다음처럼 운을 뗐다.

"간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왜 LP 공장을 시작하게 됐느냐고 질문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그렇게 듣는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다고."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음악이라는 추상적 대상을 LP라는 물질로써 소유하는 것, 이게 사람 마음을 설레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는 요지다. 물론 CD를 통해서도 '물성이 주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지만, LP는 큼직한 아트웍 덕분에 그 즐거움이 배가된다. 음향적으로도 어떤 매체보다 자연에 가깝고 귀가 편안한 소리를 내는 게 바로 LP다.

작용-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겠다. 요즘은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손쉽고 가볍게 음악을 '소비'하는 '패스트 뮤직(Fast Music)' 시대다 보니, 이런 주류적 흐름에 역류하는 물결이 바로 LP이다. 음악을 '소장'하여 만지고 먼지를 털어내며 내 방 책장에 곱게 꽂아놓고 바라보는 이 모든 느리고 번거로운 행위가 '음악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인 셈이다.

단순히 옛날로의 회귀 아니야

 국내 유일의 LP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국내 유일의 LP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마장뮤직앤픽처스


 국내 유일의 LP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국내 유일의 LP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마장뮤직앤픽처스


2008년 500만 장, 2015년 3200만 장. 마장뮤직앤픽처스는 7년 동안 600% 성장한 세계 LP 시장의 통계를 제시하며 "이 정도면 다시 LP의 시대가 왔다고 봐도 되는 거 아닐까요?" 하고 되물었다. 국내에서도 LP 시장은 2010년과 2017년 사이를 비교해보면 연평균 15~20% 성장세를 보였다. 국내 생산이 불가능한 환경을 감안했을 때, 높은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메이드 인 코리아 (Made In Korea) LP가 생산된다는 것. 마장뮤직앤픽쳐스 하종욱 대표이사는 이에 큰 의미를 두었다. 이들은 LP 생산기기 개발은 물론, 국내 최고의 오디오 전문가와 공학박사, 제작사와 함께 턴테이블과 스피커 제작도 함께 개발 중이다. 세계시장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기술력을 자부하며 전문가의 평가도 그러하다.

"저희는 프레싱 머신을 국산화하여 3~4주라는 시간 안에 LP 완제품 생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국내 LP 레코드 생산기반이 허약해서 세계적인 LP 열풍을 담아내지 못했고 해외에 의뢰해 5~6개월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런 시간이 크게 단축되었습니다." (박종명 마케팅이사)

"지난 13년 동안 명맥이 끊겼던 LP 생산을 다시 시작하게 돼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대한민국 1세대 레코딩 엔지니어인 이청, 이태경 원로께서 자문 및 기술 전수를 하셨습니다. LP 녹음 마스터들의 명맥을 저희가 이어가고 있습니다." (백희성 레코딩 엔지니어 실장)

트와이스 노래를 LP로 듣는다?

 국내 유일의 LP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박종명 마케팅이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마장뮤직앤픽처스


김광석 4집 중고 LP는 70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현재 활동하는 가수들의 LP도 마찬가지다. 한정반으로 발매하는 경우가 많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품절되고 이를 손에 넣으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아이유의 중고 LP는 온라인 서점에서 현재 22만 원 이상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오픈한 <월간 윤종신 THE VINYL - MONTHLY DRIPS> 판매는 온라인 단독으로 선착순 400장, 1인 1매 구매 가능인데도 몇 시간 만에 동났다.

이런 연장선에서 봤을 때, 만약 '아이돌 굿즈'의 개념으로써 아이돌의 LP가 지금보다 더욱 활발히 생산된다면 어떨까. 이는 음악산업 종사자들에게 매력적인 블루오션이 될 것도 같다. 마장뮤직앤픽처스에 오기 전 EMI뮤직 및 워너 뮤직에서 마케팅부장으로 활약한 박종명 마케팅이사는 '아이돌 음반을 LP로 제작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다음처럼 답했다.

"국내 굴지의 엔터테인먼트로부터 LP 제작에 관한 의뢰를 지속해서 받고 있습니다. 아티스트의 신보가 언제 나온다는 건 비밀로 지켜줘야 하기 때문에 말씀드릴 순 없지만 여러 회사에서 끊임없이 접촉이 오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들은 LP를 두고 "눈에도 좋고 귀에도 좋다"고 표현했다. '굿즈'로써 소장가치가 높은 이유다. 하지만 가격이 비싼 만큼 대중이 즐기기 쉽지 않을 거란 시각도 있다. 박종명 마케팅이사는 "내년 정도엔 제작 설비들이 추가되기 때문에 가격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마장뮤직앤픽처스가 발매한 조동진 6집 <나무가 되어>는 온라인 음반 시장에서 5만 원 초반 가격(2LP)에 판매되고 있다. 1장 구성의 LP인 경우 보통 3만 원대에 판매된다고 보면 된다.

결국 '소리의 가치'를 되찾는 움직임

 국내 유일의 LP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박성수 오디오평론가. ⓒ 마장뮤직앤픽처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오디오평론가이자 음악전문지 <스테레오 사운드>의 편집주간 박성수 평론가와 간담회가 끝난 후 인터뷰를 나눴다. 그는 LP의 고유한 속성을 설명했다. LP보다 CD가, CD보다 MP3가 더 '우수한' 매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는 전문적 설명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기술이 계속 '진화'했다고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음악의 역사를 짚어가며 대답을 꺼내놨다. 

- LP의 장점은.
"소리의 안정감이 굉장히 좋다. LP는 CD와 완전히 다른 물성을 갖는다. 21세기에 LP를 생산한다는 건 옛날 소리를 단순히 복원하는 차원이 아니다. LP판이 튀는 건 분명한 결함이고, 그런 것들이 지금은 보완됐다. 물론 디지털도 좋은 소리를 내지만 전체적으로 가장 균형 있는 소리를 내는 미디어는 예나 지금이나 LP라고 생각한다.

1970년대는 LP사운드가 가장 좋았던 전성기다. 1950~1960년대에는 그 전 50년 동안 이루어진 음향 기술이 총결집한 때였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필요에 의해 라디오, 마이크, 테이프 녹음 등 음향기술의 발전이 급격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때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가 모여서 역량을 쏟아부었다. 왜 아직도 세계적인 스튜디오에서 1950~1960년대의 마이크를 쓰고 있겠나. 현대에 녹음기술이 점점 발달하고 있는 건 맞지만, 1960년대에 이미 큰 틀은 완성이 됐고 녹음기술은 발달이 최고조였다. LP는 CD나 MP3보다 뒤떨어지는 미디어가 아니다."

- 요즘처럼 스트리밍 시대에 LP 붐 현상은 어떤 의미인가.
"요즘은 음악이 너무 많다. 디지털, 스트리밍의 역기능이다. 너무 많은 음악이 쏟아지니까 한 번에 사람을 잡아끌 수 있는 '훅'이 중요해졌다. 귀에 확 안 끌리면 안 듣게 되면서 음악이 홀대받기 시작했다. 음악이 이렇게 덧없이 흘러가고 있으니까 '소유'의 개념을 불러들여서 음악의 가치를 회복시키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 1970년대 LP와 2017년 LP는 어떻게 다른가.
"1980년대 이전 LP 제작은 전 과정이 아날로그다. 1990년대 후반 LP 제작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믹스다. 마스터링까지는 디지털로 이뤄지고 최종적으로 아날로그 신호를 끌어내서 제작되는 방식이다."

- LP의 대중화가 이뤄질까.
"대중화가 쉽진 않겠지만 분명 시장은 넓어질 것이다. LP는 취미성이 매우 크다. 턴테이블, 스피커 등을 어떤 걸 쓰고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주인이 LP를 어떻게 재생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천차만별이다. '제대로' LP의 소리를 즐기려면 여러 조건을 갖추고 많은 신경을 쏟아야 한다. 너무 저렴한 플레이어로 LP를 들을 때 LP의 진가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국내 유일의 LP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 대표이사. ⓒ 마장뮤직앤픽처스


 국내 유일의 LP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국내 기술력으로 만든 마장뮤직앤픽처스의 LP. ⓒ 마장뮤직앤픽처스


1970년대 전성기였던 LP가 2017년 다시 붐이 인 것은 단지 옛것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더없이 가벼워져 덧없이 날아가 버리는 음악을 붙잡아 오래도록 곁에 두고 정을 쌓으려는 인간적인 움직임, 이것이 가장 큰 이유다. 마치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연애의 시대에서 사랑의 진실함을 지키려는 순애보와 같다. 이날 간담회를 끝내며 하종욱 대표이사는 다음의 말로 끝인사를 대신했다.

"아날로그와 LP에서 우리가 헤어나지 못한 이유는 음악에 대한 예의 때문입니다. 음악이 본래 지녔던 아름다움을 복원하는 데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LP 소리 골에 흐르던 긴장감은 모든 음악의 가장 경건한 인트로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감상의 기능을 다시 찾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노력입니다."

마장뮤직앤픽처스 LP 바이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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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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