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붙이던 정호(이학주 분) 오빠가 돌연 사라지며 외톨이가 된 소현(이민지 분). 홀로 된 처지가 두려워 목숨을 끊으려던 그녀 앞에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 분)이 나타난다. 제인이 돌보는 가출팸에 들어간 소현이 행복을 느끼던 것도 잠시 뿐. 얼마 뒤 가족은 무너지자 소현은 병욱(이석형 분)이 이끄는 가출팸에 들어간다. 거기서 소현은 지수(이주영 분)를 만난다.

ⓒ 영화사 서울집


영화 <꿈의 제인>은 가출청소년, 가출팸(가출과 패밀리의 합성어로 가출청소년 몇 명이 모여서 원룸이나 모텔 등에서 가족처럼 함께 생활하는 집단을 지칭), 트랜스젠더란 다루기 어려운, 대상화되기에 십상인 소재를 담는다.

평소 사회적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조현훈 감독은 <꿈의 제인>의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가출청소년들이 처한 환경, 희망을 상실한 시선을 목격하고 이들에게 용기를 가진 조언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가출팸들이 겪는 고통을 단순히 전시하기보다는 사회의 약자인 가출청소년과 트랜스젠더가 연대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씨네21 인터뷰)"라고 밝혔다.

"뉴월드의 어떤 분을 떠올리며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다" <꿈의 제인>은 소현이 과거를 떠올리면서 쓰는 편지 형태를 지녔다. 소현을 화자 삼아 진행되는 영화는 제인이 보살피는 가출팸에 소현이 들어간 이야기, 제인이 사라진 뒤에 병욱이 만든 가출팸에 소현이 들어간 이야기, 정호가 일하는 가게에서 처음 만난 소현과 제인까지 세 가지 사연을 들려준다.

세 개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시간과 인과를 중요시하는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어디까지 소현이 경험했던 현실인지, 어느 부분이 상상하는 영역인지 경계선은 모호하다. 영화는 그렇게 꿈과 현실이 뒤섞인 뉴월드로 관객을 안내한다.

제인팸과 병욱팸은 소현이 통과한 앞뒤 시간으로 읽을 수 있다. 한쪽은 꿈이고, 다른 한쪽은 현실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병욱팸을 사는 소현이 그리는 내일이 제인팸일 수도 있으며 제인팸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소연이 두려워하는 미래가 병욱팸일 수도 있다. 여기엔 소현이 가진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 또는 염원이 스며들었을 가능성도 크다. 이런 구조를 선택한 이유를 "소현의 어떤 욕구, 욕망, 간절함에 대한 이야기로 보였으면 한다(매거진M 인터뷰)"라고 조현훈 감독은 설명한다.

범상치 않은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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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제인>은 흡사 데이빗 린치를 연상케 하는 열린 구조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끌어낸다. 논리적 인과 관계보다 상상적 대응 관계로 조각된 서사 구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영화는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붉은 꽃무늬 담요와 캐리어는 제인팸과 병욱팸의 사연에 모두 나오면서 연결고리로 작동한다. 동시에 다양한 해석을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조명과 촬영 또한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제인이 존재하는 공간은 그녀의 감정과 특별함을 부각해주는 과감한 색채의 조명을 사용하고 고정된 카메라로 제인팸의 안정감을 포착한다, 반대로 병욱팸의 이야기는 자연광과 형광등을 활용해 사실감을 주고 핸드헬드 방식으로 불안함으로 가득한 심리를 반영한다. 이런 방식들로 쓰며 영화는 대비 효과를 높여주었다.

클럽 '뉴월드'에서 노래를 부르는 제인은 소현이 속하고 싶은 가족이나 그리운 어머니 같은 꿈과 동경의 존재에 가깝다. 구교환 배우는 "제인은 소현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지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선동하는 대사가 없다. 제인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태도를 중계하듯이 이야기해주는 부분이 좋았다"라고 인물을 이야기한다.

제인은 "이런 개같이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란 말을 내뱉으며 인물들을 따뜻하게 품는다. "짙게 깔린 어둠 안에서 더 강렬한 빛이 나올 수 있다"라는 감독의 표현처럼 제인은 어둠에서 반짝거리는 등대 같은 존재다. 행복과 불행을 모두 긍정하는 제인은 한국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입체감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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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제인>은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불행을 회피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자고 말한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말이다. 누구나 진심 어린 한 마디를 해주는 제인을 바라듯, 누구든 타인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제인이 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란 제인의 말은 감독이 우리에게 던진 희망의 목소리다.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이룬 <꿈의 제인>. 실로 무시무시한 데뷔작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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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제인 조현훈 이민지 구교환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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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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