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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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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 깨나 말 걱정에 마방에서 자는 게 편하다며 늘 일만 생각하는 자기에게 서운했지만."
"아들이 집에 오면 '썩어빠진 마사회 저희들끼리 다 해쳐먹는다'고 하더니."

열악한 고용체계와 처우에 신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고(故) 박경근(39) 마필관리사가 1주일이 지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유족들이 호소했다. 고인의 부인과 어머니가 편지를 써서 보내왔다.

박경근 마필관리사는 지난 5월 27일 새벽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마굿간 주변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고인의 빈소는 김해 한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부산경남경마공원지부는 '마필관리사의 마사회 직접 고용'과 '마사회의 사과', '노동탄압 중단', '박경근 조합원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3일 오후 부산경남경마공원 앞에서 집회를 열었고, 오는 10일경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족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공공운수노조는 마사회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타결 전망은 불투명하다.

이런 가운데 유족들은 호소하고 나섰다. 박경근 조합원은 부인과 사이에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다. 부인은 "열정적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자기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한 국회의원한테 보낸 글에서 "지금이라도 자식한테로 뒤따라가고 싶은 마음이나, 아들의 명예회복과 마사회란 거대한 공기업으로서 사람을 죽음으로 모는 구조를 변화시켜야 제가 자식 뒤를 따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음은 고 박경근 조합원의 부인과 어머니가 쓴 글 전문이다.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부인 "얼마나 무서웠을까"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했던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부인이 쓴 글.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했던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부인이 쓴 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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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근씨에게.

아침이면 같은 시간 아이들 학교 가기 전 목소리를 듣기 위해 울리는 전화는 이제 오지 않는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

6월 6일 정말 오랜만에 우리 식구 같이 쉴 수 있다고 ◯◯, □□와 셋이 컴퓨터 앞에 앉아 레일바이크 예약을 한 뒤 나에게 재미있게 놀고 맛난 것도 먹자고 이야기까지 해놓고 왜 그랬어. ◯◯, □□가 얼마나 기다리고 기대했는데…. 애들과 약속을 꼭 지키면서 왜 그랬어. 그렇게 힘들면 나랑 의논하지 않고 그만 두고 집에 오지 그랬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만큼 마음이 아퍼.

자기야, 지금에서 이야기하는 게 많이 늦었는지 알지만 자나 깨나 말 걱정에 마방에서 자는 게 편하다며 늘 일만 생각하는 자기에게 서운했지만, 한편으론 열정적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자기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어.

사진 속 흐릿하게 웃고 있는 자기를 보면서 속삭이는 이야기들은 진심이며 살아 있을 때 많이 못해줘서 미안해.

자기는 ◯◯, □□, 나에게는 영웅이야. 스스로 선택한 길이 헛된 일이 되지 않기를 …. 아끼던 동생들만큼은 더 이상 힘들고 외로운 길을 가지 않도록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기 인생을 존경해. 늘 나에게 잘한다고 응원해줘서 고마워. 아이들 열심히 키워서 자랑할 수 있도록 나 정말 열심히 살아갈 거야. 우리 가족 걱정 말고 편안하게 쉬고 있어. 아내 △△야가.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어머니 "아들 명예회복 위해"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햇던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어머니가 쓴 글.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햇던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어머니가 쓴 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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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여 자식을 먼저 보낸 못난 부모가 한 말씀 올립니다.


지금이라도 자식한테로 뒤따라가고 싶은 마음이나 아들의 명예회복과 마사회란 거대한 공기업으로서 사람을 죽음으로 모는 구조를 변화시켜야 제가 자식 뒤를 따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아들은 말에 대하여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 일을 하고 말이 걱정된다고 10살 짜리 쌍둥이 ◯◯, □□이가 보고 싶다고 말을 하면서도, 5일 동안 마사회 안에 있는 마사회에서 퇴근을 하지 않고 생활을 하고, 친동생이 집에 오거나 제사를 지내고 늦은 시간이라도 마사에 들어갔으며, 어느 누구보다 자신에 일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족보다 말을 먼저 생각하는 아들을 마사회가 죽였으면서도 그 책임을 가족사로 넘기는 모습을 보고 저 또한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들이 자주 집에 오면 '썩어빠진 마사회 저희들 끼리 다 해쳐먹는다, 일한 만큼은 줘야 하는데 너무한다, 나는 안 줘도 괜찮은데 밑에 동생들 월급이 너무 들쭉날쭉하고 기준도 없고 생활이 안 된다, 우리 조는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똑같이 일하고 밥도 못 먹는 곳도 있다'고 불평 불만을 하면 '안 힘든 일이 어디 있(느)냐'고 '열심히 하라'고 질책한 제 저자신이 아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다시는 제 아들 같은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람을 죽이는 마사회를 변화시켜 주시고 죽은 우리 아들 명예를 꼭 회복시켜 줄 것을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가 부탁드립니다. ◇◇◇ 올림.


태그:#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마필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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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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