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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충혼탑에서 해마다 열린 현충일 추념식 때 '경남도 대표 위패'로 일본군 출신인 박진경 대령이 사용되어 왔다.
 창원 충혼탑에서 해마다 열린 현충일 추념식 때 '경남도 대표 위패'로 일본군 출신인 박진경 대령이 사용되어 왔다.
ⓒ 한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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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열리는 창원 충혼탑의 현충일 추념식 때는 제주4·3사건 강경진압자인 박진경(1920~1948) 대령이 '경남도 대표 위패'로 사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창원시청 관계자는 "추념식은 경남도청과 전몰군경유족회 경남도지부와 함께 논의해 열어오고 있는데, 앞으로는 '경남도 대표 위패'를 비치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 보도 이후 박진경 대령에 대해 파악해 보았다. 국가보훈처에 유공자로 등록돼 있었다. '경남도 대표 위패'는 오래 전부터 해왔던 것"이라며 "다른 충혼탑의 추념식에는 '대표 위패'를 쓰는 사례가 없는 것 같고, 창원 충혼탑 추념식에도 내년부터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진경 대령이 '경남도 대표 위패'로 창원 충혼탑의 현충일 추념식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6일 <오마이뉴스>가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추념식에 참석했던 한은정 창원시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창원 충혼탑에는 1202명의 유공자 위패가 모셔져 있다. 창원 충혼탑은 1985년에 세워졌고, 경남도와 창원시는 이때부터 현충일 추념식을 열 때마다 박진경의 위패에 '경남도 대표'라 새겨 사용해 왔던 것이다.

경남 남해 출신인 박진경은 일본군 소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본 오사카(대판) 외국어학교와 일본 육군공병학교를 나왔다.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에 따르면, 박진경은 일제 말기 제주도에서 일본군 소위로 근무한 적이 있다. 일본군 장교 출신인 그가 해방 이후 한국군 창설에 가담했다.

박진경은 해방후 국방경비대 사령부 인사과정을 거쳐, 제주 4·3사건이 한창이던 1948년 5월 6일 김익렬 중령에 이어 제9연대장으로 임명되었다.

박진경은 취임사에서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며 강경진압 작전에 나섰다.

이에 부임 한 달여 만에 박진경은 대령으로 승진하게 되었으나, 1948년 6월 18일 새벽 '무자비한 토벌 정책'에 반기를 든 부하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남해 출신 박익주 전 국회의원이 박진경의 아들(양자)이다. 박익주 전 의원 등은 남해 군민동산에 박진경 동상을 세워 놓았고, 한때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동상 이전'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태문 남해군농민회 회장은 "대통령도 애국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는 마당에, 그런 사람을 '경남도 대표 위패'로 사용해 왔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남해 군민동산에 있는 동상을 개인 사유지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방향으로 논의를 해볼 것"이라 말했다.

'적폐청산과 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 김영만 대표는 "황당하다. '경남도 대표 위패'가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고, 더군다나 일본군 출신에다 제주4․3항쟁을 강경진압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에 더 놀라게 된다"며 "1985년부터 사용해 왔다고 하는데도 오랫동안 모르고 지내왔으니, 우리 잘못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도와 창원시가 말도 안 되는 일을 해왔다. 그동안 아무런 역사의식이나 문제의식 없이 편리한 대로 해왔고, 아무런 검증 절차를 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경남도와 창원시는 박진경을 '경남도 대표 위패'로 사용해 온 것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4.3 강경토벌 군인이 현충일 추념식 '경남 대표'라고? (6월 6일자)


태그:#창원 충혼탑, #현충일, #박진경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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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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