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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서울시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민주쟁취'가 써진 흰색 머리띠를 두른 한 남자가 이렇게 외쳤다. 2017년 6월 10일, 유가족으로 발언에 나선 박래군(56)씨다. 그는 1988년 6월4일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있다"며 분신했던 고 박래전씨의 형이다. 박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30년 전 이곳에 우리가 모이기 위해서는 너무 어려운 장벽을 뚫어야 했습니다. 경찰의 벽을 뚫어야 했고, 백골단의 폭력을 물리쳐야 했고, 최루탄의 그 지독한 냄새를 뚫고서야 이곳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6월 항쟁이 가능했고, 6월 항쟁 이후에 민주주의가 이 만큼이라도 전진해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어 박씨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6·29 선언에 속지 않고 우리가 끝까지 책임지고 싸웠다면 그 다음 1988년 6월에 내 동생이 목숨을 버리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울컥했다. 또 그는 "촛불 시민혁명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끌어냈고 새 정부를 만들었지만 이제 다시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모른다"며 "더욱 더 중단하지 말고 함께 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명동성당 앞 계단에 100여 명의 사람들이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앉아 박씨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들은 초록색 페트병에 주황색 천을 꽂아 화염병처럼 꾸며 들고 있었다. 일부는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애국시민 단결하여 군부독재 끝장내자', '노동악법 철폐 비정규직 철폐'라고 써진 깃발을 들었다.

독일인 남편과 명동성당 찾은 시민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 보여 주고파"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출발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사진 없이 빈 영정을 들고 있던 김희정(44)씨는 "당시에는 목숨을 내놓고 행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뭉클해졌다"며 "우리는 지금 화염병 퍼포먼스를 하며 걷고 있지만 당시엔 화염병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반역 세력이 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독일인 남편과 명동성당 앞에 선 임소명(28)씨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한국에선 민주화를 시민의 힘으로 이뤄낸 역사가 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한국 현대사 중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시민단체 '6월민주항쟁 30년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한 '민주시민대동제 6.10민주난장'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서울역, 명동성당 등 도심을 행진하며 당시 저항운동을 재현했다. 동학농민군, 3·1만세군, 4월혁명군, 5월광주군, 6월항쟁군, 촛불시민군 등 6개 대열로 나눠진 이들은 서울광장을 향해 이동했다.

6월 항쟁 당시 '넥타이 부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투쟁에 나섰던 사무금융노조 쪽 인사도 이날 명동성당을 찾았다. 김현정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박근혜 정권을 타도시키는 과정에서 사무금융 노동자들도 30년 전 선배들의 저항정신을 받들어 전경련 해체를 이끌었다"며 "노동해방의 그날까지 힘차게 투쟁하자"고 말했다.

장발에 각목 들고 "비상계엄 해제하라" 5·18광주민주화 운동 재현

10일 오후 5.18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으로 분하고 서울 도심 행진에 나선 이들의 모습. ⓒ 조선혜
10일 오후 5.18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으로 분하고 서울 도심 행진에 나선 이들의 모습. ⓒ 조선혜
같은 시간 용산구 서울역 근처에서는 청재킷을 입고 장발을 한 채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도 있었다. 5·18 광주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사람들이었다. 트럭에 올라 행진을 준비하고 있던 이들은 한 손에 각목을 들고 당시 상황을 충실히 그려냈다.

이어 풍물패의 흥겨운 즉석 공연이 펼쳐졌다. 스피커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당시처럼 트럭에 올라 마이크를 든 한 여성은 "비상계엄 해제하라,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들 옆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가면을 쓴 채 죄수복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곧이어 이들은 서대문을 거쳐 서울광장으로 행진했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서울지부', '5.18기념사업회' 깃발을 든 이들과 풍물패가 뒤를 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었다는 정영철(59)씨는 "이런 행사에 참여하니 새로운 감정이 든다"며 "다시는 이 땅에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전두환 가면을 쓰고 행진에 나선 배우 장계윤(34)씨는 "함께 공연했던 분의 권유로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행진을 지켜보던 60대 시민 김아무개씨는 "올바른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며 "한 쪽에선 아직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오후 7시 시청광장에서 진행된 6월민주항쟁30년기념국민대회 '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석했다. 박 시장은 노래 '그날이 오면'을 가수 윤선애와 함께 불렀다.

박원순 서울시장 "우리 세대에 남북통일 이뤄야"

노래를 끝낸 박 시장은 "제가 노래 좀 잘했죠? 춤은 더 잘 추는데"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박 시장은 "저도 당시 갓 서른이었는데 감옥에 가는 수많은 학생들과 노동자들, 문화예술인을 변론하던 젊은 청년 변호사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시장은 "87년 당시 6월 정신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왔고, 그 정신의 계승자들인 시민들이 지난겨울 이 광장을 가득 메워 마침내 새로운 민주정부를 탄생시켰다"고 촛불정신을 강조했다. 광장의 시민들은 박 시장의 말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어 박 시장은 6월의 정신과 그 정신을 계승한 촛불정신이 일상으로도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대통령을 뽑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었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광장의 민주주의에서 일상의, 삶의 민주주의로 승화하고 계승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박 시장은 남북통일을 우리의 과제로 언급했다. 박시장은 "어영부영하면 분단 상태로 광복 100주년을 맞게 된다"며 "우리가 30년 전에 꿈꾸던 세상은 분단이 아니다. 더 많은, 더 넓은 민주주의와 함께 우리 세대에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그:#6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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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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