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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OOO다' 초등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노동자는 OOO다' 초등학생에게 물었습니다
ⓒ 엄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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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OOO이다. 대답해 볼 사람?"

"저요저요~"하고 아이들이 손을 든다. 첫 번째 아이가 대답한다. "노예요"라고.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으니 "불쌍해서"라고 대답한다. 예상치 못했던 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씁쓸한 기분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아이가 '학부모 참여수업' 신청서를 가져왔을 때, 부모 직업란에 '노동조합 활동가'라고 적었을 때, 그 신청서를 아이 편에 학교로 보냈을 때만 해도 내가 이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며칠 뒤 아이가 상기된 표정으로 "엄마! 우리 학년에 두 명밖에 신청한 사람이 없어서 선생님이 엄마 수업 준비하래"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럴 수가.

처음 드는 생각은 "선생님이 내 직업을 확인은 한 건가?"였다. 그리고 얼마 뒤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임~ 세 반을 합쳐서 수업을 해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선생님. 그건 괜찮은데, 제 직업이... 괜찮으시겠어요?"


'이 중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재밌는 직업이라 좋은 수업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 수업 전 만난 교장선생님이 "초등학생이니 너무 어렵지 않게 해달라"는 우려와 당부 섞인 이야기를 듣고 40분 짧은 시간 동안 드디어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수업이라기보다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백 명쯤 되는 아이들 앞에서 준비한 피켓을 꺼내놓았다.

"자, 여기 있는 직업 중에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 하나를 골라서 스티커를 붙이는 거예요."

선생님, 버스 운전기사, 경비 아저씨, 비행기 조종사, 편의점 사장님, 간호사, 마트 직원, 대기업 과장님. 8개의 직업을 보여주고 아이들은 어디에 가장 스티커를 많이 붙일까 바라봤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생님도 궁금한 듯 아이들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자, 여기 있는 직업 중에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 하나를 골라서 스티커를 붙이는 거예요." 단연 압도적으로 경비아저씨에게 스티커가 몰리자 의외라는 듯 "아!"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자, 여기 있는 직업 중에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 하나를 골라서 스티커를 붙이는 거예요." 단연 압도적으로 경비아저씨에게 스티커가 몰리자 의외라는 듯 "아!"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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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압도적으로 경비아저씨에게 스티커가 몰리자 의외라는 듯 "아!"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경비 아저씨 48
마트 직원 13
편의점 사장 6
대기업 과장 6
버스 운전기사 4
선생님 4
비행기 조종사 3
간호사 2


'선생님, 버스 운전기사, 비행기 조종사, 편의점 사장님, 간호사, 마트 직원 대기업 과장님' 중 어느 직업이 '노동자'라고 생각되는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직업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을까요?
 '선생님, 버스 운전기사, 비행기 조종사, 편의점 사장님, 간호사, 마트 직원 대기업 과장님' 중 어느 직업이 '노동자'라고 생각되는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직업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을까요?
ⓒ 엄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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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 아저씨는 힘들게 일하는데 돈을 조금 버니까 노동자다, 의외의 3위를 차지한 편의점 사장(심지어는 '사장!'이라고 대놓고 얘기하고 있는데도)이 노동자인 이유도 '24시간 힘들게 일하니까', '(사진이)불쌍하게 생겨서'라고 답했다. 비행기 조종사가 노동자라고 답한 아이는 '가장 위험한 자리에서 조종을 하니까'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도 가르치지 않는 한국의 교육

유럽의 노동권 교육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는 노동권 교육에 있어서는 후진국이다. 초·중·고등학교 동안 정규 교과 과정에서 '노동'을 배우지 않는다.

거리를 지나다 청소노동자를 본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커서 저렇게 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흔한 '가정교육'이고, 알바가 생활인 아이들에게 최저시급과 근로기준법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 학교 교육이라면 우리는 분명 후진국이다.

끝으로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러면 부모님이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짧은 시간 교육의 효과였을까.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들지 않은 아이 한 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시지?"
"저희 아빠는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다른 나라의 자동차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세요."


노동권 수업은 초등학교 때부터 필요하다. 이 아이들의 대부분은 노동자의 자녀들이고, 자라서 노동자가 될 테니까.
 노동권 수업은 초등학교 때부터 필요하다. 이 아이들의 대부분은 노동자의 자녀들이고, 자라서 노동자가 될 테니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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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아이는 말했다.

"저희 아빠는 돈을 많이 버세요. 그리고 저희 할아버지는 회장이세요."

자기 부모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는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노동자는 '돈이 없고, 가난한,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다행히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좋은 수업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해줬다.

짧은 수업을 마치고 나서려니 아쉽다. 이게 한 번에 해결되는 수업이 아닌데. 초등학교 때부터 필요하다. 특히 노동권 수업은 더욱 그렇다. 이 아이들의 대부분은 노동자의 자녀들이고, 자라서 노동자가 될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언론 '민중의 소리'에 중복게재 됩니다



태그:#초등수업, #초등노동권수업, #노동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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