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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과 비자 이야기

이란 가는 길
 이란 가는 길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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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노르웨이 전 총리 셸 망네 본데비크가 미국에 입국하려다 워싱턴 D.C. 공항에서 1시간 억류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이유는 그의 여권에서 지난 2014년 이란을 방문한 기록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내린 반이민 행정명령이 문제였다. 이 명령으로 이란 등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이 일시 금지된 것이다.

지금은 그 조치가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이슬람 세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 카타르 단교 조치도 미국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가까운 카타르를 벌줌으로써 이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더 나빠지면 미국에 못 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이맘 호메이니공항 내부
 이맘 호메이니공항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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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여행을 하기 전에도 걱정이 하나 있었다. 이스라엘을 방문한 기록이 있으면 이란 비자가 안 나온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나는 지난 2013년 1월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권으로 이란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했다. 그런데 다행히 이란 비자가 나왔다. 그렇지만 테헤란공항 입국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비자를 받았어도 네덜란드 전 총리처럼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되거나 지연될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테헤란에 도착한 것이 2월 16일 저녁 7시 30분이었다. 이란인이 아닌 외국인 입국심사를 하는 곳이 세 곳이었다. 그 중 한 곳이 여자 직원이라는 게 특이했다. 이란에서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약받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란의 여성 승무원
 이란의 여성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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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은 두 줄로 서서 입국심사를 받았다. 한 줄은 남자 직원 쪽, 한 줄은 여자 직원 쪽이었다. 나는 남자 쪽 아내는 여자 쪽에 줄을 섰다. 내가 먼저 입국심사를 받았다. 직원이 여권을 받아 사진을 대조한다. 그리고 여권을 넘겨 이란 비자를 찾아낸다. 마지막에 입국도장을 찍는다.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아내도 바로 통과다.

그런데 입국도장의 연월일을 읽을 수 없다. 페르시아 숫자가 찍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란 여행 내내 페르시아어와 숫자 때문에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도로 표지판이고 간판이고 모두 페르시아어로 적혀 있고, 전화번호도 페르시아식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공항은 영어가 좀 있는데, 국내선 운행이 많은 메흐라바드 공항은 행선지도 페르시아어로 쓰여 있었다. 주체적인 건지 아니면 시대에 뒤떨어진 건지 알 수가 없다.

11일이라는 짧은 여행 동안 페르시아어를 익힐 수는 없었지만, 숫자는 공부와 반복을 통해 어느 정도 깨칠 수 있었다. 0,1,9,10은 아라비아 숫자와 비슷하다. 2,3,4는 1 오른쪽에 고리를 하나씩 더해 가면 된다. 5는 하트를 거꾸로 세운 모양이다. 6은 1 왼쪽에 고리 모양을 하나 더하면 된다. 7은 V로 표기하고 8은 V를 거꾸로 세운 모양이다. 한 나라를 알아가는 일이 이처럼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  

우리 취향에도 잘 맞는 페르시아 음식

가장 기본적인 이란음식 케밥
 가장 기본적인 이란음식 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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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음식은 세상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신병철 선생이 한 말이다. 그 만큼 페르시아 음식이 맛있고 영양가 있다는 말일 거다. 어떤 근거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먹는 음식들 모두 맛이 있고, 내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음식도 우리와 다르지 않게 쌀밥, 채소, 고기, 과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뷔페식으로 제공될 경우에는 빵과 국, 치즈와 소시지, 꿀과 잼, 달걀 등이 더해진다. 케밥으로 시킬 경우에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생선 중 하나를 선택하면, 부가해서 밥, 소스, 야채, 감자, 토마토, 레몬 등이 나온다. 밥은 그때 그때 다른데, 견과류, 당근, 허브 등을 넣어 볶음밥 형태로 제공된다. 밥을 고기나 야채와 함께 먹을 수도 있지만, 밥에다 소스를 넣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가정식 상차림
 가정식 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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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는 특식으로 테헤란과 야즈드에서 양고기로 만든 곰탕인 압구시트를 먹을 수 있었다. 양고기, 감자, 토마토, 콩을 작은 항아리에 넣어 끓이는 음식으로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우리는 이번에 두 번 가정식 이란음식을 먹었는데, 상당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밥, 빵, 케밥, 야채, 소스, 올리브, 과일, 음료수가 제공되었고, 원하는 만큼 갖다 먹는 방식이었다.

식사가 나오기 전 사람들은 음료수나 둑을 먹는다. 둑은 이란식 요구르트로 시큼하면서도 걸쭉하다. 디저트로는 견과류나 과일이 제공된다. 커피와 차도 마실 수 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주문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 이란은 세계 7위의 차 생산국으로 설탕을 넣은 홍차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커피는 이란에서 그렇게 선호되는 음료는 아니었다.

공연을 보면서 먹는 좌식 상차림
 공연을 보면서 먹는 좌식 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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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을 하면서 이란 사람들의 식사시간이 상당히 늦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점심은 대개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먹는다. 저녁도 오후 7시부터 12시 사이에 먹는다. 우리는 이번 답사에서 이동시간이 길다보니까 저녁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경우가 있었다. 10시 전후에 식당에 들어가는 일이 서너 번 있었는데, 그 시간에 저녁을 먹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던 기억이 난다.

카라반사라이를 활용한 호텔

카라반사라이호텔 정원
▲ 카라반사라이호텔 정원 카라반사라이호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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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스파한에서 묵은 압바스 호텔은 원래 차하르박(Chahar Bagh) 신학교에 속한 카라반사라이였다. 이 건물은 1700년대 초 신학교, 바자르, 카라반사리이로 완성되었다. 카라반사라이는 순례자들이 묵는 숙소로, 사합원 양식의 건물 안쪽으로 정원이 있는 형태다. 정원 가운데로 수로가 나 있고, 분수시설이 되어 있다. 전형적인 페르시아 양식이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밖을 내다보니 정원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 때문에 우리는 아침식사 후 이 정원을 산책했다. 겨울인데도 나무들이 잘 자라고, 꽃까지 피어 있다. 수로에는 물이 흐르고 분수도 뿜어져 나온다. 거의 왕궁 수준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차하르박의 건축비용을 댄 사람이 황제인 술탄 후세인(Sultan Hossein)의 어머니였다.

카라반사라이 형식의 압바스 호텔
 카라반사라이 형식의 압바스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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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은 이틀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차하르박 신학교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이스파한에 볼거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하르박 신학교 역시 사각형으로 그 안에 정원이 있는 양식이라고 한다. 건물 한쪽에 미나레트와 돔으로 이루어진 마스지드가 있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마드라사는 현재 신학대학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야즈드에서 묵은 다드(Dad) 호텔도 카라반사라이 양식으로 지은 호텔이다. 거의 90년 전인 1928년 사업가인 다드(Haj Abdolkhalegh Dad)에 의해 시내 중심부 교통의 요지에 지어졌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하 1층에 정원과 레스토랑, 커피샵, 수영장과 사우나 등이 있다. 방도 거실, 방, 욕실이 분리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07년 리모델링되었고, 현재는 그의 손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페르시아 시인 모두 페르두시 영향을 받았다

페르두시 동상
 페르두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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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쉬라즈에서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인 허페즈와 사디를 만나보았다. 그러나 페르시아 문학사에서 언급되는 위대한 시인이 3명 더 있다. 그들이 페르두시(Ferdosi: 940-1020), 오마르 하얌(Omar Khayyam: 1047-1123), 루미(Rumi: 1207-1273)다. 이들은 페르시아 언어와 문화가 외세(아라비아, 몽골)에 위협받던 시대상황 속에서, 페르시아 역사를 기록하고 또 시를 통해 노래하려고 애썼다.

그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왕들의 서』다. 이 책은 페르두시가 페르시아의 과거사를 기록한 대 서사시다. 거의 6만 개에 가까운 2행 연구(Couplet)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서사시는 신화시대, 영웅시대, 역사시대로 나눠 페르시아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신화시대의 주인공은 70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끄는 잠시드(Jamshid)다. 그는 페르시아의 황금기를 이끈 왕으로, 그가 통치하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병들고 늙고 죽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하얀 악마를 물리치는 로스탐
 하얀 악마를 물리치는 로스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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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대의 주인공은 로스탐이다. 그는 한 평생 왕들을 도와 페르시아를 위기로부터 구해낸다. 젊은 시절 장군이 된 그는 타타르(Tartary)의 왕 아프라시압(Afrasiyab)이 페르시아를 침공하자, 그들을 격퇴하고 평화를 가져다준다. 카이 카부스 왕이 마잔다란 원정에 실패해 포로가 되었을 때, 로스탐은 지체 없이 출동해 하얀 악마를 물리치고 왕을 구해온다. 이때의 이야기가 7번의 모험으로 이루어진 로스탐의 영웅담으로 나타난다.

페르시아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자 로스탐은 동부 호라산지방의 작은 왕국에 살면서 그 나라 공주 타미네(Tahmineh)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못돼 몇 달 만에 떠난다. 열 달이 지나 타미네는 아들을 낳았고, 그에게 소흐랍(Sohrab)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역시 대단한 영웅으로 자라 아프라시압이 지배하는 나라의 젊은 장군이 되었다.

결국 페르시아군과 타타르군의 대표로 두 사람은 운명의 결전을 벌였고, 로스탐이 소흐랍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힌다. 로스탐은 소흐랍의 팔에 있는 호신 표식을 보고,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로스탐은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자살하려 한다. 그러나 소흐랍은 죽어가면서도 아버지 로스탐이 페르시아를 지켜줄 것을 부탁한다.

아들을 죽인 죄 때문인지 로스탐에게도 불행이 닥친다. 그는 결국 배반한 동생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로스탐의 죽음과 함께 영웅시대는 끝난다. 이후 『왕들의 서』는 역사시대를 다룬다. 파르티아왕국, 사산제국 이야기가 나온다. 역사적인 사실과 허구를 섞어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신화시대나 영웅시대만큼 흥미진진하지 않다. 이야기는 아랍사람들이 세운 우마이야왕조에 의해 페르시아가 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영미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하얌도 있고, 루미도 있다

피츠제럴드가 번역한 오마르 하얌 시집
 피츠제럴드가 번역한 오마르 하얌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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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르 하얌은 자신의 나라에서 보다 서방에 잘 알려진 페르시아 시인이다. 그는 19세기 말까지 페르시아에서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신비주의적 쾌락주의자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볼 때 그는 이단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1859년부터 영국의 유명한 작가 피츠제럴드(Edward Fitzgerald: 1809-1883)에 의해  번역되기 시작해 『오마르 카얌의 4행시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오게 되었다.

1878년에는 이 책이 미국에서도 발간되어 그 후 한 세기 동안 영미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의 시 일부가 책의 제목으로 쓰이는가 하면, 시와 산문 속에 인용되기도 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움직이는 손가락(The Moving Finger)』은 '손가락이 움직이며 글을 쓴다'는 그의 시 구절에서 따왔다. 그리고 유진 오닐의 『아 황야 (Ah Wilderness)』는 '오, 황야도 충분히 천국일 수 있지'라는 시 구절에서 따 왔다.

그 때문에 하얌은 20세기 들어 이란에 역수입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의 4행시가 재평가된 것이다. 오닐이 인용한 4행시는 다음과 같다.

나뭇가지 아래 시집 한 권                  A Book of Verses underneath the Bough,
포도주 한 잔, 빵 한 덩이                   A Jug of Wine, a Loaf of Bread—and Thou,
그리고 네가 내 옆에서 노래한다면      Beside me singing in the Wilderness,
오, 황야도 충분히 천국일 수 있지.    And oh, Wilderness is Paradise enow.   

터키 지폐 속의 루미
 터키 지폐 속의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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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역시 신비주의자로 2행 연구를 토대로 한 시 루바이(Rubai)와 가잘(Ghazal)을 즐겨 썼다. 그의 대표작은 6권으로 된 『마스나비와 마나비(Mathnavi-ye Manavi』다. 이 책은 신비주의자들에게 페르시아어로 된 꾸란이라 불릴 정도로 종교적이고 교훈적이다. 그리고 스승인 샴스(Shams)를 추모하는 『위대한 시집(Diwan-e Kabir)』이라는 책을 냈다. 이 시집에는 페르시아어뿐 아니라, 아랍어, 터키어로 쓴 시도 들어 있다.

이것은 그의 삶과 관련이 있다. 그는 현재 아프카니스탄의 발흐(Balkh)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몽골족의 침입으로 서방으로 이주해 현재 터키의 콘야(Konya)에 정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수피즘을 공부했고, 이후 신비주의적인 삶과 문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1244년 다마스쿠스로 여행해 그곳에서 샴스를 만나 4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는 철저한 금욕주의자로 다시 태어난다.

루미는 1273년 콘야에서 죽어 지금의 메블라나(Mevlana) 박물관에 묻혔다. 그의 무덤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우리가 죽을 때, 무덤을             When we are dead,
땅에서 찾지 말고                     seek not our tomb in the earth,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찾아라.     but find it in the hearts of men 


태그:#이란 비자, #이란 음식, #카라반사라이 호텔, #페르두시, #하얌과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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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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