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포스터. 실제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재미있는 사극 영화가 나왔다.

<박열> 포스터. 실제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재미있는 사극 영화가 나왔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사회 속 인간이란 속박, 식민지 백성이란 속박. 이런 것들에 하등 구애됨 없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박열. 그를 다룬 이제훈 주연의 영화 <박열>은 시작 전에, 사극치고는 좀 특이한 안내문을 내보냈다. 이 영화가 철저히 역사 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오로지 실존 인물들로만 채워졌다는 취지의 두 문장이다.

'이 작품은 역사를 모티브로 했지만, 실제 역사와는 무관하다'(속뜻은 '역사책 들고 시비 걸지 말라')는 식의 문구는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온다. <박열>처럼 줄거리와 등장인물이 철저히 사실에 근거한다고 안내하는 작품은 매우 드물다.

역사기록에 충실한 사극은 백이면 백, 재미가 없다. 실제 역사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전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실제 사실에 충실한 사극은 재미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박열>의 그 안내문을 보면서 '이 영화 재미없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은근히 재미있었다. 흡입력도 은근히 있었다. 사실과 거의 일치하는 사극인데도, 재미없는 영화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다는 말이 된다. 이야기의 구성도 좋았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 더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주인공 박열(1902~1974년)의 삶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굳이 픽션을 가미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흡입력 있는 인생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재미없지 않은 영화'가 된 것 같다.

철저한 역사고증, 은근히 재밌는 <박열>

영화 속의 박열은 자기는 배고프면 밥 먹고 하고 싶으면 한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의 박열은 영화에서보다도 한술 더 떴다. 그런 말을 입으로 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책에다가 썼을 정도다.

아내, 법적으론 동거녀인 가네코 후미코랑 함께 만든 <흑도> 창간호의 '선언문'에서 박열은 "우리는 모두 자유롭다"며 "배고플 때면 밥 먹고, 하고 싶을 때면 한다"고 외쳤다. 사적인 데서 해도 부끄러울 수 있는 말을 아예 활자화시킨 것이다. 사회를 지배하는 가식과 허위와 부조리를 깨부수는 그 같은 방식으로 인간해방운동과 민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영화 <박열> 속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두 사람은 동지적 관계이기도 했다.

영화 <박열> 속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두 사람은 동지적 관계이기도 했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박열의 인물됨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용감하고 대담무쌍했다. 3·1운동 직후인 1910년 10월 열여덟 살 나이로 '적지' 도쿄로 뛰어든 그는, 거기서 무정부주의 조직을 만들고 친일파들을 두들겨 패주었다. 해방되고도 70년 넘도록 못 하고 있는 친일파 처단작업을 그는 '적지' 도쿄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수행했다.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았다.

박열은 심지어 히로히토 왕세자(지금 일왕의 아버지) 처단을 목적으로 폭탄입수 작업까지 추진했다. 성사시키지 못한 채 1923년 9월 경찰에 붙들렸지만, 그는 보기 드물게 과감한 독립투사이자 보기 드물게 용감한 자유인이었다.

박열은 22년 2개월간 투옥됐다가 1945년 일본 패망으로 석방된 뒤 재일조선인거류민단을 만들었다. 그 후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했다. 분단체제를 지지한 점은 인생의 흠이 되겠지만, 그는 인간에 대한 속박과 식민지 백성에 대한 속박에 맞서 싸우며 육신은 괴로울지라도 영혼은 자유롭게 살았다.

박열은 식민지 체제와 인간 억압 체제에 맞서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조롱하고 비웃어주기도 했다. 영화에도 잠깐 나왔지만, 재판정에서도 피고인으로 처신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으로 행동했다.

1926년 2월 27일 자 <아사히신문> 보도처럼, 박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 사신들을 접견하는 식으로 대심원 재판부를 대했다. 길게 기른 머리에 조선식 관모를 얹고, 몸에는 푸른 도포를 걸치고, 손에는 막대기를 든 상태로 그는 재판관석을 바라봤다. 아내 후미코는 흰색 한복을 입고 출석했다. 일본 법원, 아니 인간 억압체제 아래의 모든 법원의 권위를 무시하고 깔아뭉개는 연출이었다.

물론 그런 행위를 색안경 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마음속으로만 하는 것과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온몸과 온 정신이 용기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다면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퍼포먼스를 통해 박열은 조선인의 독립심과 인간의 자유 정신을 고취하고자 했다. 막힌 속을 뻥 뚫어주고자 했다. 그래서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적인 독립운동이자 인간해방운동이었다. 이처럼 그의 인생은 픽션을 가미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한 편의 영화였다. 철저히 사실에 기초했으면서도 이 작품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범생 박열은 왜 갑자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나

영화 속 박열은 주로 주먹 쓰는 사람으로만 묘사됐지만, 독립운동 이전의 박열은 오로지 공부밖에 모르는 모범생이었다. 학교에서 집에 잠자러 간다고 해도 될 정도로 공부에 미친 학생이었다.

경북 문경 출신인 그는 함창보통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916년 열다섯 살 나이로 수재들만 모인다는 경성고등보통학교(중학교)에 입학했다. 지금의 경기고등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의 중학교는 해방 후에 고등학교로 변했다. 경기고도 해방 전에는 중학교였다.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의 중학교는 지금의 고등학교 이상의 위상을 갖고 있었다. 박열의 경성고등보통 입학은 지금 같으면 동네 현수막으로 광고할 만한 일이었다.

경성고등보통에서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조선인 학생들의 사상을 통제할 목적이었다. 그래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영어 공부를 박열은 스스로 열심히 했다. 와세다대학의 영어 강의록을 따로 구해서 독학했을 정도였다.

 <박열> 포스터 뒷면의 실제 박열 사진.

<박열> 포스터 뒷면의 실제 박열 사진.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그런 박열이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열혈 독립투사, 열혈 인간 투사로 변신했다. 그렇게 된 데에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1916년 함창보통학교 졸업식 며칠 전이었다. 이때 받은 충격이 그의 심장에 숨어 있다가 3·1운동과 함께 폭발음을 냈다. 그래서 그런 투사가 된 것이다. 역사학자 김인덕의 <극일에서 분단을 넘은 박애주의자 박열> 제2장에 초등학교 졸업식 며칠 전의 그 일이 소개되어 있다.

박열의 담임선생님은 이순의 교사였다. 졸업식 며칠 전, 이순의 교사는 졸업반 학생들을 학교 뒷동산 숲속으로 은밀히 소집했다. 그러고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인덕의 책에 소개된 내용이다.

"나를 용서해라. 나는 일본이 우수하고 일본이 조선을 하나로 묶어 다스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너희들에게 불어 넣어주려고 애써왔다. 반면에 조선은 못나고 힘없는 나라로 일본에 합쳐져야 마땅하다고 가르쳐 왔다. 그런 것들은 모두 거짓이었다. 내 목숨을 지키려고 비겁한 마음에서 거짓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가르쳐야 했다. 나를 용서해라."

전교조 선생님 같은 자기 고백이었다. 일제 치하 학교 교육의 허위와 기만성을 졸업식 직전에 은밀한 양심선언으로 고발했다. 이순의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가담하는 '운동권 교사'였다.

박열은 공부밖에 모르는 학생이었다. '전교조 선생님'의 양심선언은 그런 박열을 흔들어놓았다. 그의 세계관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그것은 박열이 세상과 식민체제의 본질을 똑바로 보고 정면 대항하도록 만드는 결정적 계기였다. 그런 훌륭한 교사들이 학생들의 가슴에 진리와 진실을 불어넣어 줬기에, 박열 같은 학생들이 배출되어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되었을 것이다.

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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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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