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북 구미시 구미4공단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 내걸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걸개그림.
 경북 구미시 구미4공단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 내걸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걸개그림.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내가 일하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실에는 사람 얼굴만 빼곡히 담긴 액자가 걸려있다. 한국통신계약직 노조의 517일간의 파업에 함께했던 이들의 사진이다. 그 사진을 가끔 들여다본다. "2001년, 비정규직 7000명이 해고되었고 격렬하게 싸웠으나 패배하여 노조 깃발을 내렸다"는 한 줄로 요약될 그 싸움 한가운데 있던 '사람들'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썹에 서리가 내리던 그 추웠던 분당 본사 농성, 특공대에 밀려올라간 옥상에서 울부짖으며 한명씩 끌려내려오던 목동전화국 점거, 지금은 기름이 칠해진 한강다리 위의 농성을 함께한 얼굴들이다. 따뜻한 사람, 냉소적인 사람, 거친 사람, 울고 웃던 사람, 애닯아하고 분노했던 사람. 지금은 일상으로 돌아가 소소한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 액자는 '투쟁'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본다. 세월호에서 숨진 이들도 그냥 304명이 아니라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어 하나하나의 얼굴과 이름을 자주 들여다본다. 그리고 일생에 한 두번 거치기 어려울 갈등이 집약된 순간을 살아내는 사람들, 즉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노동자의 얼굴도 가만히 본다.

직업적 데모꾼이거나 거친 싸움꾼, 뭔가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되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참으로 소박하다.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고, 경찰과 기업의 폭력과 맞닥뜨리며, 생계를 늘 고민하는 삶이 평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불같은 시간 곁에는 이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삶이 있다. 함께 이 시간을 견디는 동지라는 이름의 '사람'도 있다.

실수한 사람에게 징벌용 조끼를 한 달 입히는 회사

나는 <들꽃, 공단에 피다>를 읽으며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에서 해고된 22명의 얼굴을 본다. 그저 소박하지만 때로는 깊은 성찰과 의지를 보여주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조용히 듣는다. 책을 편 순간 중간에 닫을 수 없었다. 그저 그 목소리를 따라 마지막 장까지 흘러갈 수밖에.

이곳 아사히글라스로 온 사정은 모두가 다르다. 현장실습으로 구미공단에 처음 발을 디뎌서 군대 다녀온 이후 자연스럽게 이곳 구미공단으로 취업을 한 사람, 사업 실패로 다시는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안정적인 수입을 찾아온 사람, 대기업에 다니가다 비인간적인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서 퇴사하고 이리로 온 사람,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회사가 폐업하고 난 이후 공단을 전전하다 이곳으로 온 사람, 하청업체에서 일했지만 금방 업체가 폐업하거나 다른 좋은 일자리를 찾아다니다 결국 이곳으로 온 사람. 모두 사정은 달랐다.

그러나 이들은 동일한 노동조건을 감내해야 했다. 아사히글라스는 실수를 한 사람에게 징벌용 조끼를 한달 이상 입히는 회사였다. 수치심을 느낄 만큼 체벌을 당해 공장을 떠난 동료도 있었다. 조별로 물량 경쟁을 시켜 '네가 얼만큼 견뎌내는가' 테스트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심한 노동강도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점심시간도 없어서 쉬는 시간 20분 동안 허겁지겁 밥을 먹어야 했다. 정규직들이 라인 순회를 하면서 '복장불량' 단속을 하고 심하면 시말서를 써야 하는 회사였다. 이런 현실에 불만을 갖고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노조를 만들었다가 문자로 해고통보를 당했다.

해고를 당하고 천막을 치며 긴 싸움을 시작하게 된 이후, 똑같은 라인에서 똑같은 일을 하며 지쳐가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노래방 가기를 좋아했다는 조합원은 노래패가 되어 떨리는 마음을 안고 연대공연을 하고, 어떤 이는 낯가림 심해서 몸짓패 하자는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이제는 초청공연도 다닌다.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지 자신있던 조합원은 농성장을 짓고 정비하는 일을 맡았다. 같은 라인 동료들과 족구할 때 발휘했던 음식솜씨를 발휘해서 이제는 농성장 주방장이 된 조합원은 머릿속에 늘 점심메뉴가 가득하다 말한다. 전직 이발사였던 조합원은 이제 농성장의 이발사이기도 하고, 다른 투쟁사업장의 이발사이기도 하다.

이 조합원들은 투쟁을 시작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말한다. 천막농성장 강제 철거를 맨몸으로 버티면서 옆에 있는 동료를 느끼게 되고, 아사히글라스 본사가 있는 일본으로 원정투쟁을 가서 국경을 넘는 연대의 감동을 느끼고, 힘들 때마다 곁에서 힘을 보태주는 KEC조합원들과도 가족이 되었다.

생계비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에서 연대의 손길을 느끼며 마음이 차오르고, 정부 종합청사 앞에서 공동투쟁을 했던 다른 투쟁사업장 이들과 깊은 마음을 나눈다. 그 과정에서 가족에 대한 생각도 깊어진다. 아내의 눈물을 보고 힘들다가도 다시 가족의 지지 속에 힘을 얻는다. 괜찮은 남편이 되고 싶고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내 자식에게는 비정규직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다시 싸움에 나선다.

공단에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 이렇게 평범하지만 자신의 삶을 쉽게 두려움과 체념에 내버려두지 않는 비범한 사람들, 한해 100만명 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다. 900만명이 비정규직이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헤매며 체념의 쳇바퀴를 돌리지만, 그 중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은 노조를 만들고 이것은 부당하다고 외친다.

이렇게 보면 이들은 너무나 특별한 사람들인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 속으로는 이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서고 싶은 용기와 그렇게 하다가 다칠 수 있다고 체념하는 마음 속에서 갈등하지 않는가. 이 조합원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용기를 조금 더 일으킨 사람들이고, 그 싸움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공단에 들어서면 출퇴근시간이나 점심시간 외에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나무도 많지 않은 황량한 공단, 담벼락과 굉음들 사이에서 숨 쉴 곳 찾기도 어렵다. 마치 기계와 담벼락이 사람을 먹어버린 듯한 그 공간에도 우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피곤에 지쳐 공장문을 나서지만 여전히 삶을 지속하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구미공단에는 고용불안과 피곤함과 저임금으로 찌드는 얼굴들이 늘어간다. 비정규직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은 이 공단의 노동자들에게 '싸움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연장'일 뿐이라고. '용기를 내어 이 싸움을 거칠 때 우리는 더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을 건네고 있다.

<들꽃, 공단에 피다>
 <들꽃, 공단에 피다>
ⓒ 한티재

관련사진보기


이 책에는 이 책을 함께 펴낸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들과 지역사회노동자운동 지지모임, 뉴스민, 노무법인 참터의 글도 함께 실려있다. 정규직 대공장 중심이었던 구미공단이 지금은 비정규직 공단이 되어버렸다.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은 부당해고를 당했지만 법과 제도는 노동자에게 늘 유리하지 않다. 경북도와 구미시는 아사히글라스에 온갖 특혜를 주면서도 차별과 착취에는 눈감고 있다.

공권력은 기업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의 천막을 뜯어낸다. 전범 기업인 아사히글라스는 악마 로펌 김앤장과 더불어 악의적인 법률해석을 남발한다.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의 상황이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노동자라면 누구라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이 싸움은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을 고립시키지 않고, 자신의 투쟁을 거창한 것으로 내세우지 않고, 침묵으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말걸기를 하며 '함께하자'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는다. 이들은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고, 구미공단을 바꾸는 마중물이고, 체념으로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는 이들이고,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이들이며, 지금 순간을 살아내는 평범한 노동자이다.

<들꽃, 공단에 피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들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태그:#들꽃, 공단에 피다, #김혜진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이 정도면 마약, 한국은 잠잠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