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봉춘 세탁소 패러디

MBC 상황을 패러디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페이스북 페이지 '마봉춘 세탁소' ⓒ 마봉춘세탁소


"지저분한 뉴스는 세탁기에 돌려줘야 제맛! 담그고 쥐어짜고 털어보자."

MBC 구성원들의 유쾌발랄한 투쟁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6월 30일 오픈한 페이스북 페이지 '마봉춘 세탁소(@mbclaundryproject)'가 오픈 일주일 만에 '좋아요' 2200을 돌파했고, 동영상 6개 조회수가 19만을 넘었다. (7월 8일 오전 10시 기준) 첫 게시물이 올라온 게 지난 3일이니, 단 5일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현재 MBC 방영 드라마 중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군주-가면의 주인>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가 919, 평균 동영상 조회수가 1천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단기간에 달성한 놀라운 기록이다.

'마봉춘 세탁소' 게시물들은 직접 제작한 콘텐츠도 있고,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된 패러디물도 있다. 공통점은 네티즌들에게 이미 익숙한 '합성 필수 요소'라든지, 유행어 등을 이용한다는 점인데, 딱딱하고 답답한 현 MBC 상황을 발랄하고 유쾌하게 전달하는 창구인 셈이다.

웃긴 패러디에 담긴 웃지 못할 MBC 상황



"말 안 듣는 놈들 좌천시키고 나니 충성스러운 멍청이들만 남았어."
"지금 상암 MBC 앞에서는 똥 맛 뉴스인지, 뉴스 맛 똥인지 모르겠다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지만... 어차피 그게 그거 아니겠습니까?"

일본 개그 애니메이션 <개그 만화 보기 좋은 날>을 이용한 패러디 영상에는 씁쓸한 현 MBC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012년 파업 패배 이후, 사측은 '인사 학살'이라고까지 불릴 만큼 노조를 탄압했다. 보도국과 시사교양국 소속 기자·PD들은 비제작부서로 좌천됐고, 그 자리는 대체 인력으로 채워졌다. '비 오는 날엔 소시지빵', '진보 보수를 결정짓는 알통의 굵기', '김정은이 눈썹 민 이유', '윷놀이 모 나오는 비법' 등 참신하게 황당한 아이템은 물론, 특정 정치 세력에 치우친 보도도 많다. 시청자들은 <뉴스데스크>의 몰락을 지켜보며 한참 비웃었고, 다시 한참 분노했다. 그리고 지금은 무관심 상태. 싸움이 길어지자 MBC에 대한 기대도, 미련도 모두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성명을 내고, 1인 시위를 하고, 경영진에 맞섰다. 여러 동료들이 징계받고 쫓겨나고 업무에서 배제됐지만,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도 언론노조 MBC본부의 블로그에는 매일 여러 성명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은 김태호 권해봄 김민식 등 스타 PD들이 참여한 성명에만 반짝 쏠릴 뿐이다. 현 MBC의 상황은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관심 없는 상태. 마봉춘 세탁소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MBC에 대해 잘 모르는, 혹은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현재 MBC의 상황과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만행을 더 널리 알려야 한다는 고민에서 나온 나름의 자구책인 셈이다.

마봉춘 세탁소 "노조가 정규군이라면, 우리는 게릴라"

 마봉춘 세탁소 패러디

<쇼미더머니>를 <쇼미더겨미>로 패러디한 게시물. 김장겸 사장은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승승장구해 사장 자리에 올랐고, 박상후 전국 부장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모욕하는 발언으로 MBC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 마봉춘세탁소


<오마이뉴스>는 마봉춘 세탁소 운영자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MBC 구성원 대부분은 누가 이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고 한다.

운영자에 따르면 마봉춘 세탁소는 소속 부서나 직군을 초월해 모인 4~5명의 구성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세상에 봄이 왔지만, MBC만 겨울인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마봉춘 세탁소를 열게 됐다면서 "노조 중심의 진지한 정규전 외에도 게릴라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코믹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저희 나름대로는 계속 싸워왔어요. 하지만 최근 구성원들 사이에서 똘똘 뭉쳐 다시 한 번 싸워보자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죠. 막내 기자들의 반성문 영상이라든지, 선배 기자, 전국 MBC의 연대 경위서, 최근 이어지는 구성원들의 성명 발표라든지요. 하지만 MBC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언제부턴가 우리가 우리를 향해서만 목소리를 내는 것 같더라고요. 왜 김장겸이 나가야 하는지, 왜 MBC가 이렇게 망가졌는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낄낄대고 웃을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4일 발표된 전국 MBC 기자회 성명에는 서울MBC의 지역MBC 담당 부서인 전국부에서 유명 관광지와 숨은 명소, 새로운 간식거리 등을 뉴스를 통해 소개해 시청률을 높여보자고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뉴스의 신뢰도 추락으로 떨어진 시청률을 먹거리와 볼거리로 만회하려는 사측의 안이한 생각을 비판한 것이다.

이튿날인 5일, 마봉춘 세탁소는 "(김상중 톤) 여기서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습니다. 도대체 MBC 김장겸 사장은 소시지빵이나 알통 뉴스에 왜 그토록 집착했던 걸까요"라는 글과 함께 20년 전 <뉴스데스크>의 한 리포팅이 게재됐다. 혈액형에 따라 고기를 많이 먹어도 살찌지 않고, 어떤 사람은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도 괜찮다는 연구 결과인데, 이 보도를 전한 기자는 김장겸. 현 MBC 사장이다. "생생정보통에 환장하는 20년 전 한 기자의 집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상"이라는 설명에는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이렇게 마봉춘 세탁소의 콘텐츠를 보고 웃음이 터진 누군가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전국MBC 노조의 성명을 찾아보고, 관련 기사를 찾아보는 것. 그게 '마봉춘 세탁소'가 바라는 방식의 영업이다.

"저희는 일종의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거예요. 마봉춘 세탁소를 통해 김장겸이 누군지, 지금 MBC가 왜 이런지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거죠.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만 검색하면 여러 보도 등을 통해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MBC 사정을 모두 알고 있지 않아도 웃을 수 있고, 공분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해요."

 마봉춘 세탁소 패러디

<뉴스데스크>의 웃지못할 보도들. ⓒ 마봉춘세탁소




인터넷 패러디물이기는 하지만, 언론인이 운영하는 페이지이기에 이런저런 지적이 들어오기도 한다. '엠빙신' 등의 표현에 "장애인 비하 표현을 굳이 써야만 했느냐"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운영자는 "제일 고민 많이 하는 부분"이라면서, "따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만 "우리가 쓰는 표현이 아니라, 국민들이 우리를 부르는 말이다. 외부의 비난을 외면하거나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알고 있고 달라지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세탁소 문을 열며, 가장 고민한 것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오픈하자마자 쏟아지는 관심과 댓글이나 공유, 메시지를 통한 응원에 힘이 난다고. 혹시 MBC 내부에서, 진지한 이슈를 너무 가볍게 다루는 거 아니냐는 비판은 없는지 묻자, "우려보다 걱정들을 많이 하더라"고 했다. 타 매체와 인터뷰를 하거나, 온라인에서 사장 퇴진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징계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혹시 또 다른 동료가 탄압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동료들이 마봉춘 세탁소 계정을 통해 이런저런 조언들을 많이 해주세요. 업무 특성상 사내에 명예훼손, 모욕죄 등에 대한 전문가들이 많거든요.(웃음)"

폐업을 꿈꾸는 세탁소

'세탁소'라는 이름은, 아직은 MBC를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바람을 담아 지었단다. 폐기물은 버려야 하지만, 더러워진 빨래는 깨끗하게 삶고 방망이로 두들기고 쥐어짜면 다시 깨끗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담그고, 쥐어짜고, 털어보자'는 마봉춘 세탁소의 구호에는 "같이 욕하고 두들기고 비난해 달라. 다만 포기하고 버리지는 말아 달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저희의 궁극적 목표는 '폐업'이에요. 사실 언론사인 MBC가 사회의 세탁소 기능을 해야하잖아요. 뉴스는 사회의 더러운 걸 두들겨 깨끗하게 씻어내고, 예능은 웃음으로 국민의 주름살을 펴 드려야 맞는 건데, 지금은 MBC 내부의 빨래감이 너무 많은 상태예요. 저를 포함한 MBC 구성원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폐업해야죠.

언론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많이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모든 걸 잃어봤어요. 아무리 사랑받던 언론사라도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면 바닥을 칠 수 있다는 것도 알죠. 지금 국민의 질타를 잘 기억하고 있다가, MBC가 정상화 된 이후에도 잊지 않고, 더 겸손하고 신중하게 열심히 빨래하겠습니다." 

마봉춘세탁소 마봉춘 MBC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