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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된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경성의 건축가들> 표지
 <경성의 건축가들> 표지
ⓒ 루아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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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일 오전, <오마이뉴스>에 내가 쓴 '경성의 건축가들' 2회 원고가 올라갔다. 자정쯤 '오마이뉴스 내방'으로 쪽지 하나가 왔다. 루아크 출판사의 천경호 대표라며, 내 글을 출간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겨우 2회 만에 출간이라니, 도대체 뭘 보고? 혹시 누군가의 장난?

그러다 몇 번의 이메일이 오갔고, 며칠 후 천경호 대표는 비행기로 부산에 왔다. 출판 계약서를 들고서. 바로 다음 날엔 내 통장에 계약금이 들어왔다. 그리고 열 달이 흐른 2017년 3월, 나의 첫 책 <경성의 건축가들>(식민지 경성을 누빈 'B급' 건축가들의 삶과 유산)이 세상에 나왔다. 발 빠르게 움직이고 끈기 있게 기다려준 출판사 덕에 나는 참으로 운 좋게, 참으로 편하게 책 한 권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보내준 증정본을 받은 날, 새 책의 빳빳한 표지를 만지는 순간, 내가 전율했던 감격은 참으로 운 좋은 기회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그 전에 겪었던 참으로 운 없고 씁쓸한 경험 탓도 있었다.

'경제성이 없다'던 내 첫 투고

2013년 초 중국에서 귀국한 나는 짐을 풀면서 울컥했다. 칭다오이공대학에서 내가 가르쳤던 중국 학생들이 준 작별 선물들을 꺼내자 "우리를 잊지 마세요" 서툰 한국말이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맴돌았다. 온갖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찍은 사진과 편지, 행운을 비는 기념품을 만지작거리는 내내 나는 그저 '아이구, 이 웬수들...이 웬수들...'만 했다.

한동안 헛헛한 마음에 멍해지곤 하던 나는 그들과 보낸 일상을 잊기 전에 기록해둬야지 싶었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이 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그들에게 선물을 해볼까, 한글을 읽든 못 읽든 세월이 흐른 후에 들춰보면 괜찮은 추억 거리가 되겠지?

책 한 권 분량이 되었을 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무턱대고 여러 출판사에 투고했다. 결론은 역시, 주변 사람들의 말대로 미친 짓이었다. 친절한 건지, 짓궂은 건지 아리송한 사람 덕에 이유도 알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내 원고는 경제성이 없었다.

내가 처음 쓴 '중국 칭다오 신세대 견문록'은 이렇게 하면 중국 사업이 성공한다, 저렇게 하면 중국 명문대학에 입학한다, 그런 욕구를 채워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칭다오는 중국의 정치나 경제를 대표하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곳이 아니었다. 더더구나 칭다오이공대학은 중국 실세를 배출하는 칭화대학이나 베이징대학 같은 학교도 아니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한낱 중국 지방의 지방대학생 이야기, 흔해빠진 보통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누가 읽겠냐는 것이다!

결국 나는 출간 욕심을 접었다. 그래도 이왕 썼으니 묻어두기엔 또 아까웠다. 블로그나 SNS조차 하지 않던 내가 드디어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렸다. 뭐, 종이 책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합리화를 하면서. 그런데 만일 <오마이뉴스>도 출판사와 같은 반응이라면? 그럼 까짓것, 내가 직접 PDF 파일로 만들어 이메일로 아이들에게 보내지, 그런 배짱도 부려가며.

그래도 막상 첫 글을 등록하고 나니 조마조마해졌다. 다행히 그날 퇴근길에 <오마이뉴스>에서 전화가 왔다. 뜻밖에도 편집기자는 내 글이 재미있다며 연재하자고 했다. 세. 상. 에. 나! 그런데 왜 재미있다는 거지? 놀랍게도 <오마이뉴스> 편집기자가 재미있다는 이유는 바로 출판사가 누가 이런 글을 읽겠느냐는 이유와 같았다.

그동안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니 지역 이야기가 필요하다, 대단한 인물의 거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으니 지역민의 소소한 이야기도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때 나를 감동시킨 것은, 드디어 내 글이 인정받았다!, 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었다. 이래서 대안교육이나 대안언론이 필요하구나, 제대로 느꼈다.  

그 후로 낯설지만 신선한 감동은 계속되었다. 온라인 기사가 되자, 그동안 흩어져 사느라 소식이 끊겼던 옛 친구들이 내 글을 보고 <오마이뉴스>로 쪽지를 보내왔다. 어느 고등학생이 보낸 쪽지에는 윤리숙제를 하느라 내 기사를 보았다며 자신의 의견도 적어놓았다. 캐나다 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는 그곳에 유학 온 중국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낀 감회를 전해주기도 했다. 물론 맵고 쓴 댓글도 많았지만 때로는 역지사지의 계기가 되었다.

애당초 내 글의 대상으로 제한했던 중국 학생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넓은 지역에서 읽게 되었다. 애당초 내가 생각했던 책의 형태는 아니지만, 표현과 정보 교류라는 책의 기능도 충족되었다. <오마이뉴스>라는 열린 공간에 내가 직접 디지털 가상 출판사를 짓고 독자들과 어울려 노는 기분이었다. 나로서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서 나중에 어느 출판사가 내 기사를 보고 출간 제의를 했을 때, 나는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리고 싶지 않았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꾸준히 올리면서 기회의 물꼬가 트였다

출간 계약을 하게 된 결정적인 기사, <경성의 건축가들> 2회
 출간 계약을 하게 된 결정적인 기사, <경성의 건축가들> 2회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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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놓쳐버린 출간 기회는 내가 <오마이뉴스>에 '경성의 건축가들'을 쓰면서 다시 왔다. 예상치도 못한 제안이 반갑고 고마우면서도 '아니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경성의 건축가들>도 <중국 칭다오 신세대 견문록> 못지않게 건축사에서는 주변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건축 전공자들도 별로 쳐주지 않는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 일제강점기의 특수한 건축 환경에서 친일파로 싸잡아 해석될 만한, 그다지 아름답지도 당당하지도 않으면서도 분명히 존재했던, 그래서 대놓고 말하기가 더 껄끄러운 그런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경성의 건축가들>은 <중국 칭다오 신세대 견문록>보다 독자 반응이 덜했다. 

그런데 루아크 출판사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 자신이 근대건축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또 근대건축에 관한 책을 냈던 최예선 작가가 내 기사를 보고 주목할 만한 글이라고 해서 출간을 결심하게 됐다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루아크와 계약하고 난 후 다른 출판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어떤 출판사는 예전에 내가 썼던 논문들까지 찾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보태 출간을 의뢰했다. 또 어떤 출판사는 (너무나 솔직하게) 내 글이 '잘 팔릴 것 같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라서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더 재미있는 경우도 있었다. 내 책이 나온 후에 어쩌다 <오마이뉴스>에서 1년 전의 기사를 처음 읽고 출간할 생각에 잠시 흥분했던 편집자가 있었다. 이미 때를 놓친 것을 알게 된 그 편집자는 새로운 출간 기획만큼은 누구보다 빨리 만들어 내게 제안하였다.

이런 에피소드 때문에 나는 이전에 내가 경험했던 출판사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 모든 출판사가 똑같은 논리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편집자의 안목과 고집도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제 겨우 달랑 책 한 권을 냈을 뿐인데도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은 많았다. 내가 애써 두드렸던 출판사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지만, 알지도 못했던 출판사의 문이 열렸고, 그 이면에는 고맙게도 역시 알지도 못했던 최예선 작가의 덕이 있었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듯이, 책이나 출판사도 의외의 인연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인연이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직접 출판사를 찾아 투고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안 통하면, 출판사가 나를 찾게 만들어 인연의 방향을 돌릴 수도 있다. 블로그, SNS, 팟캐스트와 거리가 먼 나는 딱 하나, <오마이뉴스>에 글을 꾸준히 올리면서 막혔던 기회의 물꼬가 서서히 트였다.

매일경제 지면기사에 소개된 <경성의 건축가들>
 매일경제 지면기사에 소개된 <경성의 건축가들>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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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내게 연락해온 출판사들은 모두 거대 자본을 굴리는 대형 출판사가 아니었다. 1인 출판사도 있고 중소형 출판사도 있었다. 불경기에 힘든 상황이지만 자신의 색깔을 지키려고 애쓰는 출판사들이었다. 인기나 경제성만 따졌다면 내게 연락할 출판사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출판사보다 내가 모르는 출판사가 훨씬 많고, 글쓴이가 출판사를 애타게 찾듯이 출판사도 새로운 작가를 찾기 위해 무진장 노력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출간에 대해 좀 덜 상처받고 좀 더 느긋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어떤 상황이든 꼭 지켜야 할 것은 있다. 테니스선수로 만년 2인자였던 앤디 머레이가 2016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한 말, "최선의 전략은 포기하지 않는 것". 또 한 가지 더, 글을 쓸 때는 진인사(盡人事)하고 다 쓴 후에는 대천명(待天命)할 것.

책으로 나온 후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은 시간낭비고 정신건강에 해롭다. 이것은 출간 후 나 자신을 보면서 깨달은 교훈이다.


경성의 건축가들 - 식민지 경성을 누빈 ‘B급’ 건축가들의 삶과 유산

김소연 지음, 루아크(2017)


태그:#경성의 건축가들, #루아크출판사,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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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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