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쪼개듣기'는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화제작 리뷰, 업계 동향 등 다채로운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편집자말]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동아기획은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의 산실로 불렸던 기획사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달라진 음악계의 흐름 + 신인 발굴 실패 등이 겹치면서 이젠 추억 속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비록 레이블은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들국화,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철, 신촌블루스, 푸른하늘 등 쟁쟁한 음악인들이 남긴 음반 및 노래들은 지금도 팬들의 추억 속에 자리 잡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대중적인 인기곡들은 아니지만 무더운 여름에 잘 어울릴만한 숨은 명곡들을 통해 동아기획의 발자취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32℃ 여름' 김현철(1992년)

 김현철 정규 2집 < 32C 여름> 표지

김현철 정규 2집 < 32C 여름> 표지 ⓒ 케이앤씨뮤직


요즘 젊은 시청자들에게 김현철은 그저 <복면가왕>의 패널, 라디오 DJ 정도로만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1989년 나온 그의 1집 음반은 스무살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고 향후 한국대중음악의 미래를 이끌 기대주로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갑작스런 뇌경색 투병으로 무려 3년이 지나서야 발매된 그의 2집 < 32℃ 여름>(1992년)은 손진태(기타), 조동익(베이스), 배수연(드럼), 박영용(퍼커션), 조규찬(코러스) 등 쟁쟁한 음악인들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1집 만큼의 반향은 이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같은해 공개된 영화 <그대안의 블루> 사운드트랙의 동명 머릿곡(이소라와의 듀엣)이 더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지금 소개하는 2집 음반의 동명곡인 '32℃ 여름'은 조규찬 특유의 현란한 테크닉이 가미된 스캣 형태 코러스+경쾌한 펑키 리듬의 반주로 구성된 곡으로  요즘 국내 대중음악에선 접하기 힘든 라틴 스타일 퓨젼 재즈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세월이 흘러 뒤늦게 또 다른 수록곡 '까만치마를 입고', 당시로선 최첨단 프로그래밍 사운드를 들려준 '그런대로' 등은 재평가를 받았고 지금은 "천재 음악인" 김현철의 그 시절을 상징하는 명작으로 자리매김한다.

'여름을 지나는 바람' 박학기(1989년)

 박학기 1집 표지

박학기 1집 표지 ⓒ 케이앤씨뮤직


1989년 발매된 박학기의 첫 솔로 음반은 좀 유별나다. 주로 록, 블루스의 영향을 받은 음악인들이 중심을 이룬 동아기획 속에서 맑은 미성을 앞세운 섬세한 발라드 곡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대중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던 보사노바 풍의 편곡을 적극 활용했던 가요 음반들(오석준, 조덕배 등)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이는 앞에서 소개한 김현철이다, 전체 9곡 중 '이미 그댄'을 비롯 무려 5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면서 새로운 천재 탄생의 서막을 알려준 작품이 <박학기 1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작/편곡 및 베이스 연주로 참여한 조동익 역시 명곡 '향기로운 추억'을 통해 한국형 보사노바의 가능성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김현철이 만든 '여름을 지나는 바람'은 팝 발라드 성향의 곡으로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전조(조바꿈)를 적극적으로 활용, 상당히 세련된 형태의 노래로 완성되었다. 

이 곡에선 조동익과 그룹 어떤날 활동을 함께 했던 이병우의 군더더기 없는 일렉트릭 기타 솔로 연주가 단연 볻보인다. 한편으론 역시 그 무렵 같은 회사 소속이던 푸른하늘(유영석)의 작품 분위기와도 맥을 함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 여름의 마지막' 빛과 소금(1994년)

 빛과 소금 4집 음반 표지

빛과 소금 4집 음반 표지 ⓒ 케이앤씨뮤직


김현식의 백업밴드였던 1986년 무렵의 봄여름가을겨울은 당시로선 최강의 연주실력을 지닌 젊은 음악인들로 구성되었다.

비록 김현식의 대마초 구속 등으로 인해 팀은 와해되었고 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은 잠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거친 후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반면 장기호(베이스), 박성식(키보드)은 사랑과 평화의 4집 음반에서 대부분의 곡을 작사/작곡을 도맡으며 만만찮은 실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1990년 명곡 '샴푸의 요정'이 담긴 빛과 소금 1집을 내놓으면서 당시 국내 시장에선 생소했던 세련된 감각의 재즈 팝+ 퓨젼 사운드의 곡들을 만들면서 같은 회사의 동료 봄여름가을겨울과는 닮은 듯 다른 음악을 들려줬다.

1994년, '오래된 친구'를 히트시켰던 4집 수록곡인 '그 여름의 마지막'은 기존 보컬을 담당한 장기호 대신 이례적으로 박성식이 노래한 작품이다. 빗소리 효과음을 곡의 마지막에 사용, 늦여름의 분위기를 연출한 아이디어가 제법 신선했다.

사실 마이클 프랭크(Michael Frank)의 영향을 받은 장기호의 부드럽고 물 흐르듯 수려함을 자아내는 목소리에 비해, 박성식은 좋은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보컬리스트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어설프지만 투박한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퓨젼 재즈 스타일의 이 곡과 좋은 조화를 이뤄낸다. 음반 말미에는 보컬 트랙이 제외된 인스트루멘탈 버전으로 한번 더 담겨져 있는데 독립된 연주곡으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거리의 악사' 봄여름가을겨울(1988년)

 봄여름가을겨울 1집 음반 표지

봄여름가을겨울 1집 음반 표지 ⓒ 봄여름가을겨울엔터테인먼트


다소 생뚱맞은 선곡으로 볼 수 있겠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의 데뷔 음반(1988년)에 담긴 '거리의 악사'는 사계절로 구분한 음반 구성(LP 기준) 중 또다른 노래 '혼자 걷는 너의 뒷모습'과 함께 "여름"에 해당되는 작품이기에 과감하게 여름 노래로 선택해봤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앞서 언급한 빛과 소금과 더불어 퓨젼 재즈 성향의 곡들을 다수 발표하면서 한국 록 음악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안타깝게도 최근 전태관의 투병으로 밴드로서의 활동은 중단된 상태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거리의 악사'는 1980년대 얼 클루(Earl Klugh)같은 기타리스트들이 선보였던 미국 본토의 팝-퓨젼 재즈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 완성도를 지닌 연주곡이다. 송홍섭의 박진감 넘치는 베이스 소리를 밑바탕에 두고 펼쳐지는 김종진의 화려한 나일론 줄 어쿠스틱 기타 솔로 연주, 그리고 한충완의 피아노 솔로 연주를 통해 제목에 걸맞은 자유분방함을 잘 살려냈다.

(주)동아기획이 사라지면서 대부분의 음반 판권이 모 음반 유통업체로 넘어간 반면, 봄여름가을겨울의 작품들은 김종진과 전태관이 직접 설립한 동명의 회사를 통해 인수되었고 작품 리메이크 역시 두 사람의 동의를 거쳐야만 이용이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동아기획 여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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