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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전직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양심선언을 했다. 미국이 그동안 '빅브라더'로서 세계 곳곳을 감시했으며 불법적으로 시민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화, 이메일, 채팅할 것 없이 광범위한 감시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그 수집 건수가 통화기록만 하루에 30억 통이라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부시 정권만이 아니라 오바마 정권에서도 그런 일은 벌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없다고 단정짓지 말아야 할 일이다. 스파이는 세상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양심선언한 스파이는 거의 없고, 절대 다수는 '국가 안보'라든가 '세계경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 잇속을 챙기며 세계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그들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모르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봐야 한다.

산업 스파이의 세계를 보여주는 책

'스파이'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 같은 첩보영화? 최첨단 기기로 무장하고 악당들과 싸우는 정의의 사도? 가족들도 그의 진짜 직업을 알 수 없고, 비밀을 간직할 수밖에 없어서 고독한 존재?

미국의 저명한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의 이언 제이버스 기자가 쓴 <브로커, 업자, 변호사, 그리고 스파이>는 그동안 실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산업 스파이 그리고 스파이 산업'의 참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낸다. 스파이는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조종하는 자들의 눈이자 손이다. 저자는 '베테랑 저널리스트'이지만 시사적인 관심만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스파이 산업을 살펴보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브로커 업자 변호사 그리고 스파이> 표지
 <브로커 업자 변호사 그리고 스파이> 표지
ⓒ 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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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이 책의 2장이다. 2장에서 우리는 기업형 스파이의 선구자인 앨런 핑커턴을 만나볼 수 있다. 미국 탐정사에 탐정 1호로 기록되어 있는 핑커턴의 약력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성석제의 초기 소설에 나오는 희극적 인물처럼 핑커턴은 그저 평범한 스코틀랜드 이민자에서 보안산업의 거물로 성장한다.

1846년경 핑커턴은 평범한 '통 제조업자'였다. 그는 통 제조업자로서도 성공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정직하고 성실한 직업인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재능이 다른 곳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통 제조에 쓰일 나무를 구하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이다. 인적이 드문 섬에 누군가 불을 피웠던 흔적이 있었다. 핑커턴은 그 불을 피운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해졌고 그는 '잠복수사'를 해서 그들이 위조주화범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핑커턴은 지역 보안관과 치안대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위조주화범을 일망타진한다. 이 우연적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는 성실한 통 제조업자에서 아직 전국적인 치안이 구축되지 않은 미국 사회의 사설 보안업자, 즉 탐정이 된다.

사설 보안업의 탄생

그는 기차를 이용하여 보내는 소포가 상당 수 분실되거나 도난당하는 현실에서 귀중품을 도착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하는 작업을 한다. 중간에 분실되거나 도난된 물품은 핑커턴 회사의 직원들, 그러니까 직업적 탐정들에 의해 회수된다. 핑커턴 회사는 이 당시 첨단의 미디어라 할 수 있는 전신을 이용하여 이뤄지는 범죄를 차단하고 범인을 색출하는 작업도 한다. 미국의 특성상 주 경계를 넘어서면 수사가 잘 이뤄지지 않았던 관행이 있었는데 핑커턴 회사는 이러한 관행 덕택에 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기차를 이용해서 미국 어느 곳에나 다녔고 전신을 이용해서 서로 통신했으며 범죄자들의 파일을 만들어 정리했다. 아직 FBI가 나오려면 시간이 한참 더 흘러야 했다. FBI의 파일 시스템은 핑커턴의 그것을 모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놀라운 점도 있는데 당시에는 사회적 참여가 극히 미미했던 여성들을 핑커턴 회사에서는 탐정으로 고용했다는 것이다. 남성 탐정이 드나들기 힘든 곳에 여성의 투입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당시로 보아선 대단히 '진보적인 인사 조치'였다.

핑커턴 회사의 흥망을 보면 미국 사회를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지금도 미국의 부자들은 공적인 보안 서비스를 이용하기보다는 사적으로 탐정과 경호원을 고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거나 획득한다. 더 나아가 미국의 기업들은 스파이를 고용하여 경쟁 회사를 약점을 노린다.

스파이 산업은 가장 자본주의적이다

스파이들의 밤은 세상의 낮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게 역사에 개입한다. 전직 CIA요원들은 국가안보를 위해 배웠던 기술을 헤지펀드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위성분석가들은 기업의 활동을 감시한다. 스파이들은 시장을 조정하고, 기업의 결정에 영향력을 미친다. 소련의 군 첩보요원들은 미국 기업을 위해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파이계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다. 돈을 더 많이 주는 쪽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이 업계의 불문율이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스파이 산업은 가장 자본주의적이다.

이 책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독자로서는 한국의 스파이 산업이 어떤가 하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한국에서도 산업 스파이에 대한 보도는 가물에 콩 나듯 하긴 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 제대로 조사해본다면 한국의 대기업들도 경쟁기업의 정보를 획득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을 것이다.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바로 스파이다. 순진하게 그런 생각은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할 게 아니라 이먼 제이버스처럼 달라붙어서 세상에 그 이면을 드러내야 한다.

세계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암투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특히 보안산업에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는 작가와 감독들은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 영화에 나오는 상투적인 장면들을 반복할 게 뻔하니까.

덧붙이는 글 | 이먼 제이버스 지음, 이유경 옮김, <브로커, 업자, 변호사, 그리고 스파이>, 더숲, 2010년. 값 16,900원.



브로커, 업자, 변호사, 그리고 스파이 -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조종하는 은밀한 촉수, 산업 스파이 그리고 스파이 산업의 실체

이먼 제이버스 지음, 이유경 옮김, 더숲(2010)


태그:#이먼 제이버스, #브로커, #업자, #변호사,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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