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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가서 뭐 먹고 살지'라는 걱정 때문에 귀촌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난 2015년 2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로 귀촌한 서른여덟 살 동갑내기 부부 박지용, 유혜선 씨의 얘기를 들어 보면 용기가 생길 수도 있다.

박씨 부부는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의 두 남아를 키우고 있다. 부부는 최근 집을 짓느라 8천만원의 빚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박씨 부부는 "살면서 차차 갚으면 된다"고 말했다. 

박씨 부부는 "우리가 귀촌에 성공한 것도 아닌데, 인터뷰 대상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귀촌을 통해 삶의 다른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기꺼이 누릴 수 있는 용기 자체가 소중한 것 아닐까.

박지용(38)씨는 지난 2012년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핀란드로 유학을 떠났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박 씨는 핀란드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다. 하지만 유학생활을 접고, 박씨 부부가 선택한 곳은 서울이 아닌 시골이었다.

박 씨 부부는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었다. 애초부터 귀농이 아닌 귀촌생활을 염두하고 시골로 온 것이다. 물론 부모님 소유의 땅에 심은 밤나무에서 밤을 수확해 팔고는 있지만 본업은 아니다. 박씨 부부의 '용감한 귀촌 생활기'를 들어 봤다.   

박지용 유혜선 씨 부부는 지난 2015년 충남 예산으로 귀촌했다. 부부는 아직 아직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고 했다.
 박지용 유혜선 씨 부부는 지난 2015년 충남 예산으로 귀촌했다. 부부는 아직 아직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고 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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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귀촌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박지용 : 건축사무소에 다닐 때 너무 힘들었다. 공개입찰과 비슷한 현상설계 일을 하다 보니 주당 90시간에서 100시간까지 일할 때도 많았다. 물론 중간에 10일 정도 쉬는 날도 있었다. 건축일은 야근이 많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핀란드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핀란드에서 공부하는 동안 과연 내가 한국에 돌아가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유혜선 : 서울에 살 때는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남편의 핀란드 유학시절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꽤 많았다. 서울로 돌아가 맞벌이를 하며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회의가 들었다. 마치 내가 사회의 부속품처럼 소모되는 것 같은 느낌도 싫었다.  

유학을 떠나면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정리했다. 유학생활로 모아 놓은 돈도 거의 다 썼다. 솔직히 다시 서울로 돌아가 사는 것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다. 시골에 살 수 있는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집은 시부모님의 소유이다.

-남편 지용씨의 경우 시골 생활을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서울의 강남 출신으로 알고 있다.
박지용 : 태어난 것은 강북에 있는 북가좌동이고, 다섯 살 때부터 강남에서 살았다. 시골에 대한 애틋함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재래식 화장실에서 똥을 푸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막상 닥치니까 다 하게 되더라. (웃음)    
 
-아직은 힘든 것이 많아 보인다. 귀촌 생활은 만족 스러운가.
박지용 : 사실 나는 100% 만족한다. 건축을 전공하고 지금은 가구 디자인 쪽 일을 하고 있다. 가구 디자인은 혼자 일을 해도 무리가 없다. 서울에서 디자인을 하나 여기서 하나 큰 차이가 없다. 장소의 제약이 없는 것이다. 시골에서 디자인을 하는 게 심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그래도 불편한 점은 있을 것 같다.
박지용 : 사실 시골에서는 돈을 쓰기 위해서는 멀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돈을 쓸 일이 없다. 하지만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상당히 바빠지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지기 시작했다. 물론 손수 집을 짓고 있기 때문에 인건비는 아끼고 있다.

"귀촌을 배려하지 않는 귀농 중심의 지원 정책 아쉬워"

-귀농인을 지원하는 정책은 많은데, 귀촌 가구를 지원하는 정책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박지용 : 관청에서 일정한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춰 지원을 받고 싶으면 받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라는 식의 정책이 많다. 귀촌을 한 사람들도 무언가 지원을 받으려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지원을 받아 농가 주택 개량사업을 하려고 했는데, 200시간의 강의를 수강할 것을 요구했다.

유혜선 : 귀농이 아닌 귀촌 가정에게 관청에서 요구하는 교육은 실효성이 없다. 고추와 같은 농작물을 키우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식이다. 물론 이런 교육은 귀농인 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농업이 아닌 타 업종에 종사하는 귀촌인 들에게 그런 교육은 시간 낭비일 수밖에 없다.   

- 귀촌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선배로서 조언하고 싶은 것은 없나. 
박지용 : 한 달에 100만원씩 쓸 것을 생각하고, 적어도 2년 정도는 먹고 살 돈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오자마자 직장을 잡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 2년 정도 버티다 보면 길이 보이기도 한다.

유혜선 : 귀촌을 해서 놀랐던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은 뜻이 맞는 분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귀농과 귀촌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과 연계해 체험도 하게 하고,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일종의 코디네이터 관련 일을 준비 중이다. 

- 농사를 주업으로 할 생각 없는 것 같다.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박지용:  지금 현재 공방을 차리고, 밤농사도 짓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 할 수 있는 디자인 회사를 만들고 싶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에서 독립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유혜선 : 사실 최근에는 남편과 함께 회사도 하나 차렸다. 월급생활을 할 때는 나라에 세금도 꼬박 꼬박 냈는데, 지금은 세금을 낼 루트가 없어졌다. 본격적인 경제생활도 하고 세금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금 내고 싶어 회사 차린 특이한 부부, 왜?

-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금을 조금이라도 덜 내려고 기를 쓰는데, 특이한 것 같다.
유혜선 : 우리는 아이들도 키우고 있다. 해야 할 의무는 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지용 : 핀란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세금을 많이 내지만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다. 세금을 많이 내는 만큼 혜택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기존의 가치관이나, 생활 습관 등 시골에 와서 특별히 버린 것이 있나? 
박지용 : 버려할 것이 너무 많다. 우선 백옥 같은 피부도 버려야 하고 (웃음).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유혜선 : 시간에 대한 강박을 버렸다. 도시에 살 때는 뭔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제 시간 내에 끝내야겠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밥도 두끼만 먹는다. 우리 가족에 맞는 사이클에 맞춰 살고 있다. 유행을 쫓는 삶도 버렸다.  

무엇을 누리며 사느냐 보다는 내가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벌레나 곤충은 적응이 안 된다. 하지만 삶의 소중한 부분을 깨닫게 되면서 점차 적응하고 있다.


태그:#유혜선 , #박지용 , #귀촌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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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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