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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열린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열린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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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쓴 신용인님은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촛불시민혁명 이후 '내가 나를 대표한다'는 욕구가 폭발하고 있다. 국민은 더 이상 자신을 대신하여 통치권을 행사할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국민 스스로 직접 대표자가 되어 통치권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


민주주의를 영어로는 'democracy(데모크라시)'라 부른다. democracy의 어원은 헬라어의 demokratia에서 유래한다. demokratia는 '인민ㆍ시민'을 의미하는 데모스(demos)와 '통치'를 의미하는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시민의 통치'를 뜻한다.

이상적인 시민의 통치는 시민이 직접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대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가 시민을 대신하여 통치하는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광범위한 영토와 수많은 인구를 지닌 현대국가에서 시민이 직접 통치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든다.

대의제의 채택으로 주권의 소재와 통치권의 담당자가 분리되었다. 시민은 주권을 가지나 통치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그 대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가 통치권을 행사한다. 민주주의가 '시민의 통치'에서 '대표자의 통치'로 변질된 것이다. 이를 두고 루소는 "시민은 선거 때만 주권자 노릇하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가 된다"라고 비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이란 통치에 참여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법을 제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며 재판을 하는 일 중 어느 하나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시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준에 의하면 선거 때만 주권자 노릇하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다. 통치권을 행사하거나 적어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때 비로소 시민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대표한다'는 말은 국민이 제대로 된 시민 노릇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시민의 통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직접 나서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소위 직접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구현하기는 난망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를 두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런 민주적인 제도를 둘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통치권을 행사할 대표자의 선출방법으로 선거 외에 추첨을 추가하면 된다. 즉, 선거제 의회 외에 별도로 추첨제 민회를 두는 것이다.

필자는 작년 말 " 못할 것 없다, 추첨으로 의원 뽑자"라는 제목으로 추첨을 통해 선출된 민회의원 3600명(지역대표 1800명, 직능대표 1800명)으로 구성된 추첨민회를 제안한 적이 있다. 그 후 나름의 연구를 통해 필자의 제안을 보다 실현가능한 방안으로 가다듬어 보았다. 그 방안은 다음과 같은 4단계를 거쳐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단계,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 도입

둘째 단계, 읍ㆍ면ㆍ동 준자치권 확보와 주민자치회 등의 주민의회 전환

셋째 단계, 시ㆍ군ㆍ구 및 시ㆍ도 단위 지역 민회 설치

넷째 단계, 헌법 개정을 통한 대한민국 민회 설치

먼저, 첫째 단계인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 도입에 대해 살펴본다. 우리나라는 주민자치 활성화 차원에서 1998년 이래 읍ㆍ면ㆍ동 별로 주민자치위원회를 두고 있다. 한편, 정부는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이하 '분권특별법'이라 한다)에 근거하여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개편하기로 결정하고, 현재 전국적으로 49개 읍ㆍ면ㆍ동에서 주민자치회를 시범실시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 내지 주민자치회(이하 '주민자치회 등'이라 한다)는 읍ㆍ면ㆍ동의 해당 행정구역 주민 중 선발된 20~30명의 주민자치위원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조직이다. 주민자치회 등은 풀뿌리자치조직으로서 주민의회와 유사한 위상을 갖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주민자치회 등은 대표성 결여, 권한의 미흡 등으로 주민자치 실현에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 중 주민자치위원 선정의 민주성ㆍ투명성ㆍ공정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해 주민대표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그 결과 마을의 유지나 관변단체 인사가 위원직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대다수의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도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주민자치위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작년 7월 8일 조례 개정을 통해 전국 최초로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를 도입했다. 제주지역 43개 읍ㆍ면ㆍ동의 주민자치위원을 주민자치학교 수료자 중에서 신청을 받고 신청자가 정원을 초과할 경우에는 추첨에 의해 선발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서울특별시는 올해 들어 주민자치회 시범실시지역으로 선정된 금천구, 도봉구, 성동구, 성북구 4개 자치구에게 주민자치학교 이수를 조건으로 주민자치위원 정원의 60%는 공개모집 후 추첨으로, 나머지 40%는 단체추천 후 추첨으로 선발하는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를 권유했다. 이에 성동구는 2017년 7월 13일 조례 개정을 통해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를 도입했고, 금천구, 도봉구, 성북구는 현재 도입을 추진 중이다.

제주와 서울의 사례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제주에서 시작된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를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읍ㆍ면ㆍ동의 해당 행정구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주민자치위원으로 선발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일반 주민도 자유롭고 평등하게 주민의 대표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한편, 추첨선발제는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사람도 선출될 수 있다는 점, 유능하고 적합한 사람이 배제될 수 있다는 점 등의 단점이 있다. 전자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가 주민자치학교 수료이고, 후자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가 단체추천 후 추첨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주민자치학교 수료를 전제로 주민자치위원 정원의 80%는 공개모집 후 추첨으로, 나머지 20%는 단체추천 후 추첨으로 선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보다 많은 주민의 참여를 꾀한다는 점에서 주민자치위원의 임기는 1년, 정원은 360~600명으로 하되 주민자치위원 12명이 한 조를 이루고 1년 임기를 12회로 구분하여 30~50명씩 한 달간 업무를 보게 한다. 이렇게 되면 한 조 12명 중에서 매달 1명이 업무를 보고, 나머지 11명은 다음 순번은 기다리면 된다. 이 경우 업무를 보지 않는 나머지 11명의 주민자치의원은 업무담당 주민자치의원의 자문, 중요사항 공동결정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둘째 단계인 읍ㆍ면ㆍ동 준자치권 확보와 주민자치회 등의 주민의회 전환을 살펴본다. 현행 읍ㆍ면ㆍ동은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ㆍ군ㆍ구의 하부행정기관에 불과하여 아무런 자치권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를 도입하더라도 읍ㆍ면ㆍ동 소속기관인 주민자치회 등 역시 자치권을 누릴 수가 없다.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읍ㆍ면ㆍ동이 최소한 준자치권은 가져야 한다. 그래야 주민자치회 등이 주민의회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와 관련하여 읍ㆍ면ㆍ동장 직선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읍ㆍ면ㆍ동장을 주민 직접선거로 선출했던 역사가 있다. 제1공화국 시절인 1955년에는 동장을, 1956년에는 읍ㆍ면장을 주민 직접선거로 선출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독재체제를 강화하면서 모두 임명제로 전환시켰다. 4ㆍ19혁명 이후 읍ㆍ면ㆍ동장 직선제가 부활했으나, 5ㆍ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또다시 임명제로 전환시켰다. 따라서 읍ㆍ면ㆍ동장 직선제는 독재체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풀뿌리자치를 회복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읍ㆍ면ㆍ동이 준자치권을 갖고, 읍ㆍ면ㆍ동장 직선제가 실시된다면 주민자치회 등은 당연히 주민의회로 격상ㆍ전환되어야 한다. 물론 그때도 주민의회 의원은 추첨으로 선출한다.

셋째 단계인 시ㆍ군ㆍ구(기초지방자치단체) 및 시ㆍ도(광역지방자치단체) 단위 지역 민회 설치에 대해 살펴본다. 시ㆍ군ㆍ구 민회는 해당 시ㆍ군ㆍ구 관할의 읍ㆍ면ㆍ동 주민의회 의원 중에서 추첨으로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한다. 시ㆍ도 민회 역시 해당 시ㆍ도 관할의 읍ㆍ면ㆍ동 주민의회 의원 중에서 추첨으로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한다. 이 경우 전국적으로 226개의 시ㆍ군ㆍ구 민회와 17개의 시ㆍ도 민회가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방자치 차원에서는 양원제가 실시되는 꼴이 된다. 즉, 시ㆍ군ㆍ구 단위에서는 시ㆍ군ㆍ구 의회와 시ㆍ군ㆍ구 민회가, 시ㆍ도 단위에서는 시ㆍ도 의회와 시ㆍ도 민회가 각각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읍ㆍ면ㆍ동 주민의회 의원은 시ㆍ군ㆍ구 민회의원과 시ㆍ도 민회의원 중 하나를 선택적으로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가 해당 민회의 정원을 초과하면 추첨으로 선출한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차원에서 시ㆍ군ㆍ구 민회의원과 시ㆍ도 민회의원은 겸직할 수 없도록 하고, 주민자치위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회의원 12명이 한 조를 이루고 1년 임기를 12회로 구분하여 정원의 12분의 1 씩 한 달간 업무를 보게 한다. 민회의원의 임기는 1년으로 한다.

넷째 단계인 헌법 개정을 통한 대한민국 민회 설치에 대해 살펴보자. 대한민국 민회가 설치되면 우리나라에는 대한민국 국회와 대한민국 민회가 각각 있게 된다. 이때 대한민국 국회는 하원의 역할을, 대한민국 민회는 상원의 역할을 맡는다. 우리나라가 단원제 국가에서 양원제 국가로 변모하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민회는 지역대표형 상원의 기능을 담당한다.

대한민국 민회는 전국의 읍ㆍ면ㆍ동 주민의회 의원 중에서 추첨으로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한다. 물론 대한민국 민회의원은 시ㆍ군ㆍ구 민회의원 또는 시ㆍ도 민회의원과 겸직할 수 없다. 또한 주민자치위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회의원 12명이 한 조를 이루어 정원의 12분의 1 씩 한 달간 업무를 본다. 임기는 1년으로 한다. 이렇게 되면 추첨으로 선출된 읍ㆍ면ㆍ동 주민의회 의원은 동시에 시ㆍ군ㆍ구 민회의원, 시ㆍ도 민회의원 또는 대한민국 민회의원 노릇도 할 수 있게 된다. 통치권을 행사하는 대표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국민 누구에게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보장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회는 어떤 권한을 갖는 것이 좋을까? 양원제의 형태로는 균등양원제와 불균등양원제가 있다. 균등양원제는 양원이 대등한 권한을 갖는 제도를 말하고, 불균등양원제는 양원 중 어느 한원이 우월한 권한을 갖는 제도를 말한다. 만일 균등양원제에 따라 선거제 의회와 대등한 권한을 갖는 추첨제 민회가 설치되는 경우 양자가 대립ㆍ충돌하면 조정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전자의 후자에 대한 우월성을 인정하는 불균등양원제가 바람직하다. 불균등양원제를 전제로 대한민국 민회를 예를 들어 그 권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역 민회도 이에 준하여 보면 될 것이다.

첫째, 입법에 관하여는 우선, 민회에게 법률의 제정·개정 및 폐지를 국회에 발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민회가 법률안을 발의하는 경우 국회는 정부에게 그 법률안을 이송하여 의견서를 제출받은 후 통상의 입법절차에 따라 처리하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가 지방자치에 영향을 미치는 법률안을 발의하는 경우에는 지방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민회의 의견을 구하는 절차를 밟은 다음 국회에 제출하도록 한다. 나아가, 국회에서 의결한 법률안에 대해 이의가 있는 경우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민회가 재의를 요구하는 경우 국회가 재의에 부쳐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되는 것으로 한다. 한편, 국회와 민회 대표 각 7인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를 두어 재의 요구된 안에 대해 타협을 시도하고 타협에 실패하면 정부의 요구에 의해 재의에 부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예산에 관하여는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1차적으로는 민회에서 심의ㆍ의결하고, 2차적으로는 국회에서 심의ㆍ의결하여 확정하도록 한다. 이 경우에도 민회에게 국회에서 의결한 예산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부여하고, 국회와 민회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조정위원회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그 밖의 민회 권한으로는 국회의회의원 선거구 획정권, 정부에 대한 감시ㆍ통제권, 민회 조직과 운영에 관한 자율권, 민회 의원의 자격심사ㆍ징계권, 청원의 심사ㆍ처리권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일, 위에서 본 바와 같은 ⅰ)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 도입, ⅱ) 읍ㆍ면ㆍ동 준자치권 확보와 주민자치회 등의 주민의회 전환, ⅲ) 시ㆍ군ㆍ구 및 시ㆍ도 단위 지역 민회 설치, ⅳ) 헌법 개정을 통한 대한민국 민회 설치가 단계적으로 이뤄진다면 시민의 통치가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민주적인 제도가 마련된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 국민이 제대로 된 시민 노릇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태그:#시민, #통치, #민주주의, #추첨민회,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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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헌법가치가 온전히 구현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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