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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입법을 하는 곳이지 법을 따르는 곳은 아니다." 이 모순적인 말은 국회 인턴을 취재하며 들은 자조 섞인 얘기입니다. 정부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한 법을 만드는 공간인 동시에 비정규직인 인턴을 못 본 척 하던 곳이 바로 국회입니다. 많은 인턴들이 보좌관이 되고 싶어 3년이고 4년이고 국회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내년 1월 1일이면 2년 이상 근무한 인턴은 국회를 강제로 떠나야 합니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요. <오마이뉴스>는 총 4편의 기사를 통해 ‘국회의 그늘’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편집자말]
국회인턴들에게 국회는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일 수 있다. 사진은 미세 먼지로 뿌옇게 보이는 국회의사당 모습.
 국회인턴들에게 국회는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일 수 있다. 사진은 미세 먼지로 뿌옇게 보이는 국회의사당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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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째 비정규직으로 최저임금도 못 받는 제가 인천공항 비정규직 1만 명 정규직 전환 보도자료를 주말 새벽에 씁니다. 정말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실."

국회를 직장으로 둔 이들이 익명으로 일상을 털어 놓는 곳, '여의도 옆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다. 이 숲 속에서 눈에 자주 띄는 이름이 있다. 바로 '인턴'이다. 직급도 없이 월 158만원 정도(수당 포함) 박봉을 받는 국회의원 보좌직 최말단. 국정감사 때면 밤샘이 일상인 이들.

"11개월 마다 쪼개서 계약을 반복하다 보니 계속 계약서를 갱신하고, 서류를 내야 한다. 그러다보니 이 조직의 일원이 되지 않는 느낌이랄까. 인턴이라고 하면 일단 무시부터 하는 사람들도 있고."

국회인턴 A씨는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소속감'의 부재를 토로했다. 이들에게 11개월 쪼개기 계약은 일상이다. 재직 1년이 넘으면 퇴직금을 지급해야하기 때문에, 국회 안에서는 이 같은 '꼼수' 계약이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회인턴들에게 고용불안은 만성 질병 같은 것이었다.

국회인턴의 총 재직기간은 2년을 초과할 수 없음. 2018. 1. 1.부터 적용.

불안은 현실이 됐다. A씨는 지난 1월 인턴 재계약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던 중 이 문구를 발견했다. 그는 당시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7월로 1년 6개월가량 일했으니, 내년이면 '자동 해고'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지침 후 증폭된 고용 불안, "미래가 막혀 버렸다"

2013년 당시 한 의원실의 비서가 <오마이뉴스>에 공개한 인턴 월급 명세서. 그때나 지금이나 국회인턴의 '박봉' 문제 역시 큰 변화가 없다.
 2013년 당시 한 의원실의 비서가 <오마이뉴스>에 공개한 인턴 월급 명세서. 그때나 지금이나 국회인턴의 '박봉' 문제 역시 큰 변화가 없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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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사무처는 지난 1월, 국회 인턴의 총 재직기간을 2년으로 못박는 내용을 포함한 '2017년도 국회 인턴제 시행 안내'를 발표했다.

국회 사무처는 당시 국회 의정 활동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원활한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단기간 근무를 위한 제도로 시행하는 것이 국회인턴제의 취지임을 강조하면서 "2년 이상 장기 재직 인턴의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 논란이 발생할 수 있고,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경우 국회 인턴 본연의 제도적 취지에 부합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보좌진협의회(민보협)'에 따르면 내년 1월 1일 A씨처럼 일자리를 잃을 인턴은 100여 명에 이른다. 게다가 일방적인 통보, 자연히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전보다 더 불안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다."

취재에 응한 국회 인턴 대부분은 국회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다. 정식 보좌진이 되겠다는 목표로 인턴 생활을 이어온 이들. A씨는 "2년을 넘어 3, 4년차까지 국회에 남은 것은 (정식 보좌직원이 돼) 급수를 달기 위해서였다"면서 "가능하다면 계속 국회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그게 막혀버렸으니, 그 동안의 시간들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면서 "지금도 (미래가 보장이) 안 되는 상황인데 지금보다도 더 보장이 안 된다면..."이라고 우려했다.

3년차 인턴인 B씨도 "지침대로면 당장 몇 개월 뒤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라면서 "사실 막막하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인턴 생활이 길어지면, 국회 밖에서는 이쪽 상황을 잘 몰라 취업이 쉽지 않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인턴은 "보좌관이라는 직업 자체가 (임기제인 국회의원와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인데, 인턴은 그 비정규직 안에서도 비정규직"이라고 자조 했다.

등잔 밑 국회 "입법만 하면 뭐하나... 법을 안 지키는데"

국회는 국회 바깥의 다양한 요구가 직접 분출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국회 안 '목소리'는 바깥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진은 2015년 9월 16일, 국회 본청 뒤쪽 출입구에서 벌어졌던 노동개악 규탄 기습 시위 모습.
 국회는 국회 바깥의 다양한 요구가 직접 분출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국회 안 '목소리'는 바깥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진은 2015년 9월 16일, 국회 본청 뒤쪽 출입구에서 벌어졌던 노동개악 규탄 기습 시위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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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만드는 공간에서조차 정당한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이 답답하다."

입법 기관인 국회가, 정작 내부 문제에는 관심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2년차 인턴인 C씨는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의 노동에는 제대로 발언하지 못한다"면서 "그러면서도 (국회가 처리하는) 사회 문제에는 관여하고 간섭하고 있다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지 지키는 곳이 아니라는 농담도 돌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한 현직 보좌관도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들은 자기들 관련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근로기준법 입법은 하면서 수법(守法, 법을 지킴)은 하지 않는데, 그 중 하나가 비정규직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사람이 참 웃긴 것 같다. 나가라는 지침이 없었을 땐 주말에 쉬었으면 좋겠다, 처우 개선 됐으면 좋겠다고 얘기 했었는데... 지금 바라는 건 딱 하나다. 3, 4년 해도 좋으니까 많지도 않은 기회나마 더 빼앗아가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

국회 사무처 지침 적용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 국회 인턴들은 그럼에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상 국회의원의 손에 인사 평가와 채용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보좌하는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턴 D씨는  "만나서 (관련 문제를) 이야기하거나, 익명으로 설문조사를 돌리려고 해도 윗분들 눈치가 보여서 (말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상급) 보좌진도 그렇고 이런 행동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 얘기 자체를 꺼려하는 인턴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인턴은 "국회 안은 너무 좁다"며 "인사 평가가 특히 중요한데, 예를 들어 어떤 의원실이 (다른 방에서 일하던) 인턴을 채용하면, 그 의원실을 찾아 '이 사람 어떠냐'고 물어보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나서지는 못하지만 사석에서는 다들 답답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취재를 위해 접촉한 다수의 인턴은 같은 이유로 인터뷰에 응하길 꺼리거나, 취재에 응한 이들도 익명을 재차 당부했다.

* '국회의 그늘' 2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인턴, #국회인턴, #청년, #국회의그늘,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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