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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입법을 하는 곳이지 법을 따르는 곳은 아니다." 이 모순적인 말은 국회 인턴을 취재하며 들은 자조 섞인 얘기입니다. 정부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한 법을 만드는 공간인 동시에 비정규직인 인턴을 못 본 척 하던 곳이 바로 국회입니다. 많은 인턴들이 보좌관이 되고 싶어 3년이고 4년이고 국회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내년 1월 1일이면 2년 이상 근무한 인턴은 국회를 강제로 떠나야 합니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요. <오마이뉴스>는 총 4편의 기사를 통해 '국회의 그늘'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편집자말]
[국회의 그늘①] 해고 날벼락 떨어진 국회인턴 "국회는 법 지키는 곳 아니다"

"인턴 최상위에는 금턴이 있다. 금수저 출신만 갈 수 있어 붙여진 용어다. (중략) 아는 사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국회의원실 인턴 등이 대표적인 금턴으로 꼽힌다. 금턴은 근무 강도가 약할 뿐만 아니라 근무 시간의 일부를 자기계발에 활용할 수 있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꿈의 인턴'으로 불린다."

지난 6월 한 경제지에 올라온 이 기사에 따르면 국회 인턴은 '금턴'이다. 국회에는 300개 국회의원실마다 각 2인, 총 600명의 인턴들이 있다. 이들은 정말 모두가 부러워 할 만한 꿈의 직장에 다니고 있을까. <오마이뉴스>가 들춰본 그들의 일상에는 진한 '짠내'만 있었다.

▲ 수저 계급론 수저별 계급을 한 눈에 보여주는 사진이다. 왼쪽부터 차례로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오른 쪽으로 갈 수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식을 비유한다.
ⓒ @STEFANO_JANG

국회의원실에는 의원을 제외하면 최대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9급 비서 각 1명, 인턴 2명이 활동한다. 인턴은 의원실의 최말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의 강도는 일반 국회의원 보좌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년이면 3년차가 되는 한 국회인턴은 "농도 차이일 뿐, (일의) 수행량은 똑같다"면서 "국정 감사철에는 밤샘도 잦다"고 전했다. 취재에 응한 보좌진과 인턴들에 따르면, 국회 인턴에게는 잡무뿐 아니라 홈페이지 관리, 성명서·보도자료 작성, 세미나 준비도 종종 맡겨진다.

자유한국당의 한 보좌진에 따르면 "국회인턴의 기본취지는 정책전문가로 직업을 선택하고 싶은 대학생이나 젊은 친구들에게 오리엔테이션 식의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면서 "(그런 인턴 중) 능력과 자질이 인정되면 계속 근무하도록 해왔는데, 정규직 전환을 못해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턴은 입법부의 일을 관할하지만 정식 직원이 아니다. 그럼에도 선거 때에는 선거 운동에 뛰어들고, 국감 때는 다른 보좌 직원들처럼 밤을 새가며 일을 한다. 월급은 수당 포함 150만 원 남짓. 무엇보다 이들에겐 '미래'가 없다. 2년 이상 일하면 나가야 한다.

국회 직원들이 익명으로 글을 남기는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 숲'에는 국회 인턴 생활 잔혹기가 절절히 녹아있다.

"선거도 같이 치르고 국감도 주말 할 것 없이 같이 일하는데, 일할 때는 같은 직원이니 똑같이 일하자더니 대우는 인턴이니 인턴답게? 일할 때만 '의원실 식구'라는 명목 하에 희생을 강요하네요." (대나무 숲 134번째 외침)

"인턴의 주말출근, 밤 10시가 넘는 야근은 지극히 정상. 홍보에, 정책에, 국정감사, 인사청문회 준비까지 업무폭탄을 던져놓고 왜 속도가 느리냐고 고성.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면 열정 없는, 나약한, 충성심이 없는, 국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존재로 치부하기 일쑤. 소위 '하급 보좌진'은 노예가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세요." (대나무 숲 361번째 외침)

"비서님 인턴한테 일 떠넘기고 칼퇴... 그럴 거면 그만두세요"

<오마이뉴스>와 만난 이아무개 인턴은 '인격 모독'을 가장 힘든 일로 꼽았다. 그는 "모욕적인 언행, 강압적인 지시가 많다"라며 "인격 존중이 없다, 나를 같은 노동자로 보는 게 아니라 하급자 계약직으로 보는 시선이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김아무개 인턴은 다른 인턴이 겪은 일이라며 "여성 의원이 인턴에게 '너 옷이 왜 그러니, 매니큐어는 왜 바르니, 무슨 남자 만나고 다니니' 이러면서 복장 지적에 갑질을 했다고 한다, 정말 충격 받았다"라고 전했다.

고민하는 직장인.
 고민하는 직장인.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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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내 나는 일상의 또 다른 대표주자는 '잡무 처리'다. 의원실의 최말단이다 보니 온갓 잡무가 인턴에게 쏠리는 것이다.

"반 년째 인턴인 저 혼자서 설거지를 하고 있습니다. 컵을 싱크대에 놓을 때 헹궈서 놓지도 않고 안에 담긴 쓰레기까지 그대로 놓아요." (대나무 숲 336번째 외침)

"인턴분들, 다들 저처럼 방 선배 손님들 왔을 때 차 내가고 설거지하나요? 다 같이 간식 먹을 때 왜 다 먹은 그릇은 제 앞에 두고 가시나요? 본인들 택배는 집으로 배송하지 왜 의원실로 전화 오게 해서 하루에 몇 번씩 택배 찾으러 가야 하죠?" (대나무 숲 211번째 외침)

"인턴한테 자기 논문 시키는 인간이 있다. 자기네 집 애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라는 인간이 있다. 개인적 심부름 상습적으로 시키는 인간이 있다. 자기 처먹을 특정 간식 여자 비서한테 사놓으라는 인간이 있다." (대나무 숲 408번째 외침)

<오마이뉴스>와 만난 박아무개 인턴의 설명도 다르지 않다. 그는 "짐 나르기, 은행 업무 등 보좌관의 사적인 일도 대신해줘야 한다"라며 "공적인 일로도 시간이 빠듯한데 잡무까지 해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특히 인턴들은 보좌관의 부당한 업무 지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인턴은 자기 일 보좌관님 시킨 일 다하고 있는데 비서님, 자기가 해야 할 일 다 인턴한테 떠넘기고 옆에서 엎드려 자고 사적인 일 하고 쇼핑하고 있으면 그게 뭡니까. 인턴은 퇴근도 못하는데 일 떠넘기고 칼퇴하고. 그렇게 일 하기 싫으면 그만두세요." (대나무 숲 307번째 외침)

권아무개 인턴은 "이거 연습해보는 셈 치고 해봐요"라는 말이 참 싫었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1년 동안 연습만 하고 있는 거거든요. 온갖 자료 요구나 보고서는 내가 다 쓰는데 마치 아랫사람 부리는 것처럼...연습만 할 거면 저는 여기 왜 있나요."

대나무 숲 334번째 외침도 같은 맥락이다.

"130만 원 받고는 할 수 없는 양의 일을 시키면서 미안해하기는커녕 '처음 해보는 일이니 배우게 해준다는 차원' 내지는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표현하는 상사들도 종종 있다. (중략) 임금도 자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미약한 위치임에도 입법기관의 업무를 대리할 수 있는 자리. 모순적이지만 국회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사각지대가 있다면 바로 국회 인턴이 앉아있는 자리일 것이다."


태그:#국회 인턴, #그늘, #여의도 옆 대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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