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 쇼박스


택시엔 사람의 숨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억지로 못내 돌아가는 고철 기계가 아니었다. 방향을 짚는 사람의 의지에 감응한 택시는 상승 작용을 일으켜 감동과 진기함을 낳았다.

지난 7월말 개봉한 영화 <군함도>와 더불어 쌍끌이 흥행이 점쳐진 <택시운전사>가 2일 공개됐다.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증명하듯, 서울의 한 멀티플렉스 256석 상영관엔 밤 11시 5분이 상영 시각임에도 앞줄을 제외하고 관객이 빼곡히 들어있었다. 137분의 러닝타임이 지나면 새벽 1시가 훌쩍 넘는데다 상영 다음날이 목요일인 평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화에 쏠린 관객의 관심이 옅지 않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택시운전사>가 짚는 배경은 1980년 5월 18일 광주. 영화는 이전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1996년 영화 <꽃잎>과 2007년 <화려한 휴가>와 결이 다르다. 전작들이 군인의 살육 가운데 광주 시민이 심리·정신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택시운전사>는 서울 시민인 택시기사가 관객의 시선을 광주로 인도하고, 같이 탑승한 기자와 광주의 참상을 주시해 나간다.

이는 참상의 객관성을 담보하여 광주를 둘러싼 왜곡에 반기를 드는 동시에 광주 시민은 물론, 서울 시민과 기자의 시선을 더해 공감의 보폭을 넓히는 시도다. 광주 내부와 외부, 해외로 나눠진 시선은 통합의 길로 나아가고, 그 힘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 묵직함이 거창한 영웅이 빚어낸 게 아니라는 게 이 영화의 차별점이다.

소시민이자 서울 시민, 김만섭의 시선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 쇼박스


택시기사 김만섭(송강호 분)은 하루 벌어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소시민이다. 부인과 사별하고 딸아이를 둔 채, 사글세가 밀려버린 택시기사의 시선은 당장 밥벌이에 쏠린다. 서울의 봄이 피고 질 무렵이던 80년 5월, 집회 소식이 집 라디오에 전해지자 김만섭은 "손님 뚝 끊기는 거 아니야"라며 생업 걱정부터 한다.

김만섭은 광주까지 태워주면 10만원을 준다는 외국인이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고, 밀린 사글세 10만원을 벌기 위해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워 광주로 간다. 영화 속 힌츠페터는 동경에서의 편안함을 뿌리치고 광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광주행을 택한 기자.

영화 초반, 김만섭의 모습을 보다보면 남사 어떻게 돌아가든 먹고 살 걱정에 사로잡힌 우리네 자화상이 떠올려진다. 그러나 광주라는 단절된 울타리를 지난 김만섭은 변곡점에 선다. 그렇다고 그 지점을 급격하고 가파르게 지나려고 하진 않는다. 이것은 가장이던 김만섭 나름의 방책이자 본인에게 죄책감을 낳는 원인이기도 하다. 역사의 굴레 가운데 개별적인 삶에 고뇌와 자책을 안기는 1980년 당시 현실이 김만섭을 필두로 묘사된다.

김만섭이 국수를 입안에 밀어넣는 장면은 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국수를 앞에 둔 김만섭의 표정엔 왜곡된 뉴스보도를 보고도 침묵을 택해야 하는 죄책, 광주에 미완의 과제를 남긴 데 대한 찝찝함,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두고 벌이는 번민, 이 세 가지가 섞였다.

김만섭은 시장기를 해소하려 허겁지겁 국수를 먹은 걸까, 아니면 마음에 섞인 불편한 것들을 잠깐이라도 잊어보려 그랬던 걸까. 국수를 바라보다 입안으로 넣는 송강호의 연기는 김만섭의 고뇌를 잘 녹여낸 장면이다. 김만섭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택시가 여러 방면에서 숨결이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을 내보이는 것도 볼거리다.

함께 할 대상을 알았던 힌츠페터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 쇼박스


영화는 뉴스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던진다. 진실을 발굴하려면 사실 너머의 이면까지 살펴봐야 하는 시대, 1980년 신군부가 통제하던 언론은 기초적 사실조차 제대로 다루는 곳이 아니었다. 언론이 말하는 사실이란 결국 신군부의 입이었고 진실은 감춰졌다. 이 와중에 힌츠페터는 광주 청년 구재식(류준열 분)에게 "뉴스를 내보내면 혼자가 아니게 될 거다"라는 말을 남긴다.

뉴스는 조명할 대상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확연히 달라진다. 사실을 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면 언론의 사명을 다했다 말할 수 있는 걸까. 힌츠페터는 함께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았고 이에 맞춰 뉴스를 만들어나갔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진실을 밝히는 건 고독의 여정이다. 그로 인한 치유는 어쩌면 진실이 비로소 드러날 때 이뤄진다. 그러기에 힌츠페터에게 광주로 인도한 김만섭은 단지 회상의 공유자로 남을 수 없었을 테다.

영화는 일상의 대사가 이어지면서 감정을 서서히 직조하다가 뭉클함을 번져나가게 한다. 다만 으레 등장하는 부녀관계와 감정을 일으키기 위해 넣은 클리셰는 영화의 참신성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공중에서 살펴본 1980년 광주 시내의 재현된 모습은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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