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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0년의 서울살이와 직장생활을 내려놓고 제주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서른일곱 살 늦은 나이에 '육아'의 세상에 갑자기 던져져 온갖 추태를 보이며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육아 중인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웃기고도 모자라게 육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드리기 위해 좌충우돌 육아일기를 연재해보려 합니다. -기자 말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인간이다. 나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특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잘 먹고(관련 기사 : 소똥,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어디서나 잘 자고, 매일 아침 쾌변을 한다.

그중에서도 잠은 최고다. 지구 반대편인 남미 여행을 할 때도 시차 적응 따위는 필요 없었다. 해가 지면 잠이 왔고, 날이 환해지면 눈을 떴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이 세 가지는 모두 힘을 잃었다. 먹는 것, 자는 것, 싸는 걸 하고 싶을 때 하지 못한다는 건 육아를 하며 처음 맞는, 충격적이고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100일 동안 이어지던 '가부좌'의 나날들

조리원에 있을 땐 분명 바구니 속에서 자기만 하던 아이였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아기는 순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집에 데리고 온 그 순간부터 아들은 도통 누워서 자질 않았다. 팔이 빠지도록 아이를 안아 재운 뒤, 조용조용 눕혀놓고, 차라도 한 잔 마시려 까치발로 조심조심 정수기 앞에 뜨거운 물을 컵에 받는 순간 아이는 '반짝' 하고 눈을 떴다.

눕히고 돌아서면 눈을 떴다. 오늘만 실수했다 싶었는데, 내일도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그랬다.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아이 재우고 초코파이라도 하나 먹어야지, 미역국이라도 들이켜야지, 바랐던 사소한 소망들은 100일이 가까워올 때까지 도무지 이뤄지지 않았다.

30분, 아니 한 시간을 안고 내려놔도, 아이는 귀신 같이 눈을 반짝 떴다.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반짝이는 눈망울에다 욕은 할 수 없고. 그저 아이에게 울먹이며 "왜 또 깼어~ 그냥 자지~ 누워서 자는 게 얼마나 편한데 그러니... 그걸 왜 모르니..."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다.

저 자세로 하루에도 몇 시간을 견뎌야 했다. 엉덩이는 직육면체가 되었다
▲ 하루에도 몇 시간 저 자세로 하루에도 몇 시간을 견뎌야 했다. 엉덩이는 직육면체가 되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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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이는 깰 때까지 품에 안겨서 잤다. 내 무릎 위에 수유 쿠션을 얹고 그 위에 아이를 눕힌 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수유 쿠션에 눕힌 채로 바닥에 뉘여봤는데, 귀신같은 아이는 또 눈을 반짝 떴다. 아이는 그렇게 꿀잠을 자고, 일어나면 배고프다고 나 죽는다고 짐승 새끼처럼 울부짖었다. 그러면 나는 그 가부좌 자세로 연달아 한 시간씩 수유했다.

하루에 절반은 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내 엉덩이는 직육면체가 되고, 내 무릎의 연골은 사라져 삐걱거렸다. 가부좌의 나날이 석 달째 이어졌다. 사람이 되려고 100일 동안 동굴에서 마늘만 먹고 살았던 곰도 나처럼 이렇게 힘이 들었을까.

퇴근해 남편이 올 때까지 졸졸 굶고 있을 때도 많았다. 나에겐 멀쩡한 두 팔과 다리가 있었으나 쓸모가 없었다. 두어 발자국만 가면 그곳에 초코파이가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는 그 두어 발자국을 걸을 기회를 내게 주지 않았다. 태블릿 PC를 곁에 챙기지 못한 날엔 일분 일초가 너무나 더디 흘렀다.

어머니, 저 쌀 것 같아요!

그런 나를 구원해주실 분은 오직 한 분, 나의 시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현재까지는, 하지만 앞으로도 어쩌면) 단 하나뿐인 손주를 위해서 작년부터 아이돌보미 교육을 받고 실습도 몇 달간 하셨다. 사랑과 의욕이 완벽하게 충전되어 나와 아이를 돌봐주셨다. 제주에 있어서 친정어머니 찬스를 쓰지 못하는 내가 행여 불편하고 힘들까봐 정말 최선을 다해주셨다. 내가 이 육아일기를 그나마 웃으며 쓸 수 있는 건 시어머니 덕분이다.

씻지도 먹지도 싸지도 못한 나를 수유쿠션 족쇄에서 풀어주실 분, 어머니가 출근하셔서 신줏단지 모시듯 수유쿠션 바통을 이어받으면 나는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해 몇 시간 전부터 세상 밖으로 나오려 애쓰던 것들을 모두 내보냈다. 아이 낳기 전까진 내 쌩얼 한번 안 보여드렸는데, 아이를 낳고선 눈꼽을 달고 반라의 몸으로 화장실로 달려가는 것이 어머니께 하는 인사가 되어버렸다.  

육아에 최선을 다해 동참해주신 어머니, 아이와 함께 쪽잠을 주무셨다
▲ 바톤 터치한 시어머니 육아에 최선을 다해 동참해주신 어머니, 아이와 함께 쪽잠을 주무셨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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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집으로 오셔야 먹고 싸는 일이 정상화되었다. 처음엔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무던히 헤맸다.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고, 회사 다닐 때도 늘 혼자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이 많아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곧 내가 무능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어머니가 집에 오시기 전에 집이라도 청소해야지, 빨래라도 널어야지, 조급해질 때가 많았다. 그런 마음 때문에 오히려 더 아이를 울리고, 실수하기도 했다.

남편아, 너의 일상은 왜 그토록 견고한 거니

신생아를 키울 때 힘든 일 중 하나는 밤중 수유와 트림시키기이다. (지금도 나는 밤수를 끊지 못했다) 아기는 위장이 작아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한다. 초반엔 2시간에 한 번꼴로 맘마를 먹여야 했다. 빠는 힘도 세질 못해서 오래 먹여야 했고, 행여 토해서 기도가 막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트림은 반드시 시켜야 했다.

이토록 사소한 트림이 나오질 않아서 정말 죽을 맛일 때가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아침밥을 먹다 남편에게 트림의 고충을 토로했다. 남편은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더니 말했다.

"한 30분 정도 세워 안고 있으면 트림 안 해도 괜찮대."
"응, 그럼 다음엔 그래봐야겠다."

아침에 좋은 조언으로 받았던 이 말은, 한밤중에 엄청난 화를 불러왔다. 새벽 두 시고, 네 시고, 대중없이 깨서 젖 달라 우는 아이를 안고 또 가부좌를 틀고 무릎 마비 상태로 있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 남편의 이 말이 생각난 것이다.

'뭐 30분? 나는 지금 한밤중에도 두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는데, 아이에게 한 시간 젖 주고 30분 또 안고 있으면 나더러 지금 아예 자지 말라는 거야? 안 되겠다. 의중을 확실히 알아야겠어. 지금 당장 깨워 물어봐야겠어.'

미친 호르몬은 특히 한밤중에 발동했다. 아무리 아이의 등을 쓸고 두드려도 나오지 않는 이 죽일놈의 트림은 결국 '내가 이러려고 (아이를 위해 생략) ...' 하는 자괴감마저 들게 했다. 세수도 못하고 윗도리는 대체 언제 입었나 기억도 안 나는데, 나는 이렇게 일상이 와르르 무너졌는데, 남편은 피곤해 보여도 그 일상이 너무나 견고한 것이다. 회사를 가고, 담배를 피고, 뉴스도 보고... 나는 그런 모습이 너무나 부럽고 화가 났다. 또 머리로는 안 그래야지 해놓곤 이미 눈엔 눈물이 차올라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나는 요즘 화장실도 제때 못 가고, 잠도 못 자는데, 엉엉, 왜 자기는 담배 피울 시간도 있고, 똥 마려우면 바로 화장실도 가는 거야? 자기 지난 주 일요일에 때목욕하러 사우나 갔지? 엉엉엉."

사실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싸워본 적이 없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진 싸울 일이 없었고, 아이가 태어나고나선 이런 나의 말에도 남편이 짜증을 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작게 한숨을 쉬고선 아이를 안고 나를 달랬다. 그렇게 전쟁 같은 밤을 보내고 잠깐이라도 잠들었다 일어나면, 남편에게 미안했다. 82년생 김지영도 너무나 힘들듯, 대부분의 우리네 남편들도 참 안쓰럽다.

행여 감기 옮을까 마스크를 끼고 다리를 주물러주는 남편. 아이를 낳고 나는 남편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완벽할 순 없어도 서로 배려하고 노력하고 애쓰는 모습만 보여줘도 세상의 부부싸움은 절반으로 줄지 않을까
▲ 노력하는 남편 행여 감기 옮을까 마스크를 끼고 다리를 주물러주는 남편. 아이를 낳고 나는 남편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완벽할 순 없어도 서로 배려하고 노력하고 애쓰는 모습만 보여줘도 세상의 부부싸움은 절반으로 줄지 않을까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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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어젯밤 성질 부려 미안해."
"요즘 자길 보면 지킬 앤 하이드를 보는 것 같아. 꼭 밤에 그렇게 야수가 되더라."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잠을 못 자서 그래."

반년 동안, 3시간 이상 연달아 밤잠을 자본 적이 없다면, 누구라도 야수가 될 것이다. 지금은 적응이 되었지만(그렇다고 안 힘든 건 아니다), 신생아 시절의 아이를 재우고 나면, 정작 나는 다시 잠들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도사린다. 그렇다고 낮에 쉴 수 있나. 아, 이 퇴근 없는 육아는 정말 힘들다.

아무리 날 고달프게 해도, 저렇게 한 번 방긋 웃어주면 게임 끝이지.
▲ 게임 끝 아무리 날 고달프게 해도, 저렇게 한 번 방긋 웃어주면 게임 끝이지.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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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공동육아'가 얼마나 소중한지, 여러 사람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꽁꽁 숨겨놓았던 본성의 민낯과 마주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참 힘든데, 그걸 이해해주는 이가 곁에 없다면 정말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가까운 이들의 육아 동참은 아이의 정서는 두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나, 엄마를 살리는 일이다.


태그:#육아, #수유, #밤중수유, #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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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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