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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말고 나를 보라
▲ 책방에 들어온 고양이 책을 읽지 말고 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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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고양이가 있었으니 그들은 한 단어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 단어는 '냐~옹'(미세하게 야~옹, 애옹~, 이야~오옹, 네옹~, 이야오옹~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냐~옹'에서 변주된 단어들이다).

인간의 모든 언어는 '냐~옹' 앞에서 한낱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았으니, 일찍이 그것을 비웃으며 그들은 인간의 주인으로 군림한다. 특히 온갖 말들이 기록된 책을 가장 하찮게 여겨 책방은 고양이들의 봉, 책방지기는 고양이들의 호구, 라는 사실이 표본오차 +-3 내외의 통계학적 분석으로 입증된 바(는 없지만 시간이 많다면 분석해보시라).

다섯 고양이를 키우는 독립출판물 작가 진고로호님이 쓴 책 <달을 쫓다>를 베고 잠들었다. 진고로호 님이 무척 좋아했다.
▲ 책 위서 잔다옹 다섯 고양이를 키우는 독립출판물 작가 진고로호님이 쓴 책 <달을 쫓다>를 베고 잠들었다. 진고로호 님이 무척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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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도 책을 읽는다. 아니 뭐하는 거야? 자는 거야?
▲ 고양이책 고양이도 책을 읽는다. 아니 뭐하는 거야? 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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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책방 슈뢰딩거, 헬로인디북스, 사슴책방, 노말에이, 프루스트의 서재 등등의 책방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집에서 키우는 이들까지 더하면 '책방지기=집사' 공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고양이 사료값을 벌기 위해 책방을 운영한다는 사실에 슬퍼할 필요는 없겠다. 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날도 난 무더위 속에서 인간의 언어가 난무하는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진 지 오래고 골목길엔 사람도 드물었다. '언제 집에 가지?' 생각하던 찰나, 그 또렷하고도 명확하고도 적확하고도 간결한 소리가 들려왔다.

"냐~옹"
"냐~~옹"
"냐~~~옹"

아, 그 아름다운 한마디에 난 모든 책을 내려놓았다. 책 속의 이 거추장스러운 단어들은 다 무엇이냔 말이다. 밖을 내다보니 웬 고양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책방 앞에 있었다. 3, 4개월로 추정되는 아기 고양이.

 문을 열었더니 고양이가 들어온다
▲ 책방에 들어오는 고양이 문을 열었더니 고양이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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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의 반을 가르는 검은 턱시도를 입고 분홍색 코를 들이대는 고양이 앞에서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내 엄지손가락만 한 발바닥으로 철옹성 같(을 리가 없지만)은 책방의 출입문을 보기 좋게 걷어차고선, 이제 여긴 자신이 접수하겠다며 누구보다 위풍당당하게 아장아장 걸어들어왔다. "냐~옹" 거리며.

과연 저 "냐~옹"은 무슨 의미인가? 하등 인간일 뿐인 나는 "냐~옹"에 함축된 다양한 의미를 의도적으로 해석해내려고 애썼다. "더우니까 문 열어!", "밥 내놔", "물 줘", "다리 아파", "넌 꺼져. 여긴 내 구역이야"???

그 어떤 것으로도 "냐~옹"을 해석할 수 있지만 과연 무엇으로도 답변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느꼈다. 결국,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신성시 여겨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피해 갈 수 없었던, 고양이 간식 주기를 행할 수밖에

간식을 다 먹고 나서도 "냐~옹"은 그치지 않았다. 이때의 "냐~옹"은 또 달랐는데 과연 배가 부르니 시라도 한 수 짓고 있는 것인가? 노래라도 한 곡조 뽑고 있는 것인가? 시종 "냐~옹"을 외치는 아기 고양이에게 에스파냐의 시인 '로르카'의 이름을 붙였다.

로르카의 시 <어떤 영혼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떤 영혼들은 푸른 별을 갖고 있다 /시간의 갈피에 / 끼워 놓은 아침들을 / 그리고 꿈과 / 노스탤지어의 옛 도란거림이 있는 /정결한 구석들을 (이하 생략)' - 정현종 역

과연 녀석이 시를 읊조렸는지 아닌지 누구도 확답할 수는 없다. 인간이 고양이의 정신세계를 감히 판단할 수 없으니. 문을 열면 먼지도 들어오고 뜨거운 공기도 들어오고 오토바이 소음도 들어오고 담배 연기도 들어오고 물론 손님도 들어오지만 제 발로 고양이가 들어오기는 처음이다.

이후북스가 '냥덕명문'이라고 떠벌리면서 정작 책방에서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것에 대한 질타인가? 어쨌거나 정결한 구석을 찾아 고양이 로르카는 그루밍(고양이 몸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와 책은 잘 어울린다. 팥빙수에 들어가는 찰떡처럼 없으면 아쉽다. 고양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책 읽으면 잠도 잘 와서 불면증 해소에 도움도 된다. 아니 틀렸다. 아예 팥과 빙수 사이라고 해야겠다.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존재. 정신이 산만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삶이 지칠 때 안정적인 책의 무게와 고양이의 부드러움은 만병통치약이다. 여름에 팥빙수가 그러한 것처럼.

사적인 서점 대표님이 로르카를 안고 있다
▲ 책방지기는 고양이들의 호구 사적인 서점 대표님이 로르카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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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카는 들어오는 모든 손님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누구의 시선도 피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고양이 서적 위에 걸터앉아, 자고 뒹굴고 똥꼬 핥고 '야~옹' 거리며 태평하게 지내고 있다. 이미 집에는 세 마리의 고양이가 있어 데려갈 수 없었는데 다행이다.

종이를 물어뜯는 우리 집 막내 고양이 루팡이와 다르게 책방에 있어도 평온하니 책방에서 지내는 데 전혀 문제가 없지만, 하늘 아래 군림하는 건물주께서 동물 들이는 것에 반대하니, 로르카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냐~옹'에 강력한 뜻을 담아 건물주에게 외치렴. '냐옹~'(니가 꺼져!) '냐~~~~~옹'(니가 꺼져!!!)

사족(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메시지) - 로르카는 어디까지나 임시 보호 중이며 좋은 집사를 찾고 있습니다. 사적인 서점 대표님이 로르카를 무척 이뻐하는데 사적인 서점에서 데려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고 하면 부담스러우니까, 그냥 부담스럽게 말해버려야지.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이후북스 책방지기입니다. 책방과 고양이. 훌륭한 조합이죠. 둘 다 온화하지 않나요?



태그:#책방과고양이, #이후북스, #고양이, #냥덕명문, #고양이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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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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