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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일상을 담은 다큐에 세상이 반응했다. 20여 년간 시설에서 살던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씨와 비장애인 언니 혜영씨가 함께 자립하는 과정을 담은 '생존'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가 제작비 모금을 위한 5천만 원 펀딩에 성공한 것.
 발달장애인의 일상을 담은 다큐에 세상이 반응했다. 20여 년간 시설에서 살던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씨와 비장애인 언니 혜영씨가 함께 자립하는 과정을 담은 '생존'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가 제작비 모금을 위한 5천만 원 펀딩에 성공한 것.
ⓒ 텀블벅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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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일상을 담은 다큐에 세상이 반응했다. 20여 년간 시설에서 살던 발달장애인 동생 장혜정(30)씨와 비장애인 언니 장혜영(31)씨가 함께 자립하는 과정을 담은 '생존'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관련 링크)가 제작비 모금을 위한 5천만 원 펀딩에 성공한 것. 지난 6월 말부터 시작한 펀딩은 당초 8월 1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었지만 일주일 앞당겨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소액부터 통큰 후원까지, 총 1100여 명이 마음을 보탰다. (관련 기사 : "발달장애인 동생과 유튜브, 다큐... 신파 찍고 싶진 않아요")

펀딩 성공이 확정된 9일 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혜정씨의 목소리는 잔뜩 상기돼 있었다. 오후까지만 해도 "마음이 혼란하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며 걱정을 내비치던 그였다. 혜영씨는 "친구를 통해 펀딩 성공을 들었는데, '아니 이게 뭐지' 싶었다. 비현실적인 느낌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큐 제작에 참여하는 스태프들도 예상보다 빠르게 펀딩에 성공해 모두 놀랐단다.

혜영씨가 펀딩 성공 소식을 들은 건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기획한 라이브 방송 첫 편을 막 마치고 난 직후였다. 방송을 마무리할 때까지만 해도 펀딩은 98%에 그쳤다. 약 1시간 동안 나머지 2%가 채워졌다.

지난 1일 공개한 다큐 티저 영상이 펀딩 성공을 앞당기는 데 한몫했지만, 그보다 사람의 힘이 컸다. 조심스레 고액 후원을 문의하는 이도 있었고, 해외에 있어 펀딩 참여가 쉽지 않은 이들은 개인적으로 연락해왔단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이 다른 이들에게도 절실했던 것이다. 



실제 펀딩에 참여해준 이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장애인 가족으로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도 있었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소수자로서 공감과 지지의 의사를 표하는 이들도 많았다.

"거칠게 생각하면 제작비 5천만 원이라는 금액은 5천 명이 만 원씩 후원하면 채워지는 금액이잖아요. 그런데 저와 동생이 살아갈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5천 명이 아니라 5천만 명이거든요. 그 중의 5천 명조차 이 프로젝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비슷한 환경에 있는 수많은 분들의 메시지를 받았어요. 또, 완전히 같은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저희를 통해 본인이 지닌 사회적 약자성을 다시 확인하는 분들도 있었죠. 그분들이 정말, 진심으로, 프로젝트가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셨어요. 어느새 이 프로젝트가 '지금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걸 우리 사회가 알고 있고, 다큐를 통해 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게 됐더라고요."

그래서일까. 혜영씨는 펀딩 성공을 위해 기획했던 '7일 연속 유튜브 라이브 - 세상엔 우리의 이야기도 필요해' 행사에 다양한 이들을 초대했다. 장애 인권 활동가, 페미니스트·성소수자 유튜버 등이 그녀와 함께 방송에 나선다. 다들 장애인의 탈시설화 이슈처럼 그간 한국 사회에서 '말하기 껄끄러운 것'으로 치부됐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활동하는 이들이다.

펀딩이 성공한 지금, 기획의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당사자'들끼리 모였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겠다는 계획은 변함 없다.

"소수자 이슈가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결국엔 '인간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인간다움'이라는 게, 뭔가 하나를 넣어서 풀리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A부터 Z까지 각 항을 다 넣어야 풀리는 거죠. 서로 다른 약한 부분들을 지닌 이들이, 연대하고 힘을 나눈 거 아닌가 싶어요."

<어른이 되면> 다큐멘터리 제작자 장혜영(31)씨와 동생 장혜정(30)씨.
 <어른이 되면> 다큐멘터리 제작자 장혜영(31)씨와 동생 장혜정(30)씨.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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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라 정해진 촬영 분량은 없지만, 현재 <어른이 되면>은 3분의 1정도 촬영을 마친 상태다. 계획대로 제작이 진행된다면 완성된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건 내년 2월이다. 혜영씨는 "이제는 정말 오롯이 저와 동생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펀딩이 끝났지만,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는 이제 배를 타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봐요. 이 배가 어디로 나아갈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셨으면 해요.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

동생 혜정씨는 펀딩 성공에 대한 소감을 묻자 대뜸 "내일 보자"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묘히 연결되는 듯하다. 이 자매에게 남은 내일이, 그 수많은 하루'들'이 모인 일상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태그:#발달장애인, #소셜펀딩, #어른이 되면, #장혜영, #장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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