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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의정부역 앞에 조성 중인 근린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 동상 전면 하단에는 '대한의사 안중근'이라고 적혀 있다. 현재 포장된 상태로 대중에 공개되진 않은 상태다.
 8일 의정부역 앞에 조성 중인 근린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 동상 전면 하단에는 '대한의사 안중근'이라고 적혀 있다. 현재 포장된 상태로 대중에 공개되진 않은 상태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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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용 의정부시장은 시장 자격이 없습니다. 지난 8일 의정부역 앞에 안중근 의사 동상이 설치됐지만, 이 동상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작 지시를 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거짓말하는 정치인은 퇴출돼야죠. 중국 민간단체 차하얼학회 눈치는 보면서 권력의 근간인 시민들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는 겁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안중근 의사 동상은 아무런 의미도 살리지 못하고 폐기될 수 있습니다." - 구진영 버드나무포럼 이사

지난 8일 의정부시가 의정부역 앞에 '기습 설치'한 안중근 동상이 여전히 논란이다. 이 동상의 탄생 배경과 존재 유무에 대한 의혹을 <오마이뉴스>가 처음으로 보도한 이후, <주간조선> <노컷뉴스> <한국일보> <한겨레> 등의 매체가 이 의혹을 조명했다(관련 기사 : "안중근 동상 없다던 건 '선의의 거짓말', 시진핑 지시는 확인불가").

의혹의 핵심은 '시진핑 주석이 안중근 동상을 제작 지시한 것이 사실인가'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2014년부터 "시 주석이 동상 제작 지시를 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던 안병용 시장은 지난 7일 "나도 전해들은 이야기"라고 말을 바꿨다. 이후 의정부시 공보담당관실은 동상 제작 배경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에 지난 9일 "(차하얼학회와 의정부시 간에) 구두상으로 진행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관련 서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정리하면 '전해들은, 근거 없는 이야기'가 된 셈이다.

시진핑 주석이 제작 지시했다는 안중근 동상. 이 동상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안중근 동상 제작 배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구진영 버드나무포럼 이사를 17일 만나봤다. 의정부 시민단체인 버드나무포럼은 안중근 동상이 기습 설치된 다음날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시진핑 내세워 '미확인 정보' 공표 안병용... 파국 예상 못하나"

구진영 버드나무포럼 이사. 안중근 의사 공판 기록을 펼쳐 보이고 있다.
 구진영 버드나무포럼 이사. 안중근 의사 공판 기록을 펼쳐 보이고 있다.
ⓒ 버드나무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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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은 버드나무포럼이 안중근 동상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의정부시가 중국의 한 민간단체와 협약을 맺어 동상을 들이는 과정의 문제, 지방자치단체장이 '시진핑 주석'이라는 타국 국가원수를 거론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공표한 문제, 의정부시청이 시민을 대상으로 '동상이 없다'고 했다가 '한중 관계 때문에 비밀에 부쳤다, 사실은 있다'라고 거짓말한 문제가 있습니다. 저희는 이 문제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구진영 이사는 안중근 동상이 설치된 배경과 과정상의 문제가 제대로 규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 이사는 그동안 '시진핑 제작 지시'를 설파한 안병용 시장이 시민을 기만했다고 본다.

"안중근 동상을 시진핑 주석이 제작 지시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입니다. 그런데 안병용 시장은 이 정보를 수년간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왔어요.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전면에 내세워 사칭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안 시장은 이런 행위가 불러올 파국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이런 '미확인 정보'를 시민들에게도 알려왔습니다. 또한 동상 제작 배경에 대한 의문점이 이는 상황에서도 안 시장은 명확한 해명 없이 동상 건립 현장을 방문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건 시민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지난해 12월 5일 오후 의정부 장암동 인근에서 열린 동부간선도로 개설 준공식에서 안병용 의정부시장이 축사하고 있는 모습.
 지난해 12월 5일 오후 의정부 장암동 인근에서 열린 동부간선도로 개설 준공식에서 안병용 의정부시장이 축사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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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동상 설치 직전인 지난 7일 안병용 시장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차하얼학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참석 여부를 타진해왔다"라면서 "차하얼학회도 중국 내 서열 3위 이상의 인사를 제막식에 참석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 서열 2위는 리커창 총리, 3위는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다. 이것이 실현 가능한 일일까.

"제작 배경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동상 제막식에 어떻게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겠습니까. 지자체장의 허언·과장이 도를 넘었습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습니다. 일전에도 안 시장이 미2사단 이전 행사를 계획하면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결국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죠."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안중근 얼굴, 고증에 문제 있다"

안중근 동상 존재 유무에 관련한 의정부시청의 거짓말도 문제다. 의정부시청 공보담당관실은 7월 초 "안중근 동상을 차하얼학회로부터 받은 적이 없고, 의정부시 모처에 보관 중이라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다 지난 8일 동상이 설치되자 "한중관계 경색 우려 때문에 차하얼학회가 일종의 함구령을 내렸다, '동상이 없다'고 말한 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말을 바꿨다. 구진영 이사는 이런 의정부시청의 태도 역시 문제라고 본다.

"공무원의 청렴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의정부시청 공무원들은 시장의 부하가 아니잖아요.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무원이 시민과 언론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한 사례입니다. 이는 국가공무원법의 정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좋은 의도라고 해도 거짓말로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8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역 광장 근린공원에서 시 관계자들이 중국 측이 기증한 안중근 동상을 설치했다. 사진은 동상의 모습.
 지난 8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역 광장 근린공원에서 시 관계자들이 중국 측이 기증한 안중근 동상을 설치했다. 사진은 동상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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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의정부역 안중근 동상은 검은 천막으로 포장돼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의정부시는 동상 설치 전 언론에 잠깐 공개했는데, 여기서 또 다른 논란이 발생했다. '안중근 의사의 얼굴과 동작 등에 대한 고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이에 의정부시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제작할 당시 실제 안중근 의사를 모델로 제작된 게 맞다"라면서도 "예술품이다 보니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른 점이 있을 수 있다"라고 해명했다.

"안중근 의사는 근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고증에 참고할 수 있는 근거 사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의정부역에 설치된 안중근 동상의 얼굴은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사진과는 다른 표정으로 표현됐어요. 총을 꺼내면서 앞으로 뛰어가는 모양으로 만들어졌고요.

일반적으로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고증에는 상상력 등 예술적 요소를 가미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용모를 이렇게 묘사한 동상은 이전까지 없었습니다. 만약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동상을 세우는 데 얼굴이 다른 동상을 만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거센 비판여론이 일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똑같은 문제예요."

"과장·허언 위에 세워진 동상은 생명력이 짧다"

8일 의정부역 앞에 조성 중인 근린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 동상 전면 하단에는 '대한의사 안중근'이라고 적혀 있다. 현재 포장된 상태로 대중에 공개되진 않은 상태다.
 8일 의정부역 앞에 조성 중인 근린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 동상 전면 하단에는 '대한의사 안중근'이라고 적혀 있다. 현재 포장된 상태로 대중에 공개되진 않은 상태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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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역 안중근 동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몇몇 사람들은 '시진핑 지시 여부와는 관계 없이 안중근 의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인데, 왜 동상 건립에 반대하느냐'라는 반론을 펴기도 한다. 구진영 이사는 "동상 건립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설치를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안중근 동상이 의정부에 오기까지의 과정상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그 문제를 지적하는 겁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안병용 시장의 허언·과장, 의정부시청의 거짓 해명, 고증의 허술함 등이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1968년 덕수궁 안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은 2004년 덕수궁 원형 복원 사업이 추진되면서 이전의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세종대왕과 덕수궁 사이의 연관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어요. 결국 2012년 이 동상은 세종대왕기념관 앞뜰로 옮겨졌습니다. 역사적인 인식 없이, 고증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엉뚱한 곳에 세워진 동상의 생명은 길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면 제작 동기도 불분명하고, 의사 결정 과정도 불투명한 의정부역 안중근 동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로 옮겨질 수도 있습니다. 사상누각이죠. 안중근 동상은 과장과 허언 위에 세워진 동상이 돼버렸습니다."

2012년 5월 14일 덕수궁 내 세종대왕 동상이 동대문구 청량리동 세종대왕기념관 앞뜰로 옮겨지기 위해 관계자들이 크레인을 이용해 동상을 들어올리고 있다.
 2012년 5월 14일 덕수궁 내 세종대왕 동상이 동대문구 청량리동 세종대왕기념관 앞뜰로 옮겨지기 위해 관계자들이 크레인을 이용해 동상을 들어올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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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포럼은 9월 초 중국 북경과 하얼빈역을 방문할 예정이다. 안중근 의사 동상을 둘러싼 의혹 때문이다. 의정부시는 안중근 동상을 들이면서 '안중근 동상을 2개 제작해 하나는 하얼빈역에, 다른 하나는 의정부역에 설치하기로 차하얼학회와 약속했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버드나무포럼은 하얼빈역에 실제 안중근 동상이 설치됐는지 확인하고, 중국 외교부와 이 문제를 두고 면담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조만간 법원에 '동상제작 중지 가처분 신청'도 할 예정이다. 구 이사는 "지금까지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동상 제막식 등의 행사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
사라진 '안중근 동상' 미스터리... 시진핑 지시 여부도 논란


태그:#안중근, #안병용, #시진핑, #동상, #의정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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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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