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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노동인권 공강밥상'은 '우리집에 오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행사다. 7월에는 가사관리사와 산후관리사들의 노동을 살폈다.
 '우리동네 노동인권 공강밥상'은 '우리집에 오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행사다. 7월에는 가사관리사와 산후관리사들의 노동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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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우렁각시들이 참 많다. 밖에만 나갔다 오면 집 청소가 돼 있고, 맛있는 식사가 준비돼 있다. 누군가에 의해 보이지 않는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하지만 그에 걸맞은 대우는 아직 멀었다. 가정주부들은 "집에서 하는 일도 없으면서…"라고 업신여김 당하기 일쑤고, 집안일을 대신해주는 가사관리사들은 '노동자'로 인정도 못받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 '가사(家事) 사용인에 대하여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제11조 적용범위)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러하지만 엄연히 노동은 이루어지고 있다. 바로 우리집에서! '그림자 노동'은 빛을 비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법. 지난 5월부터 '우리동네 노동인권 공감밥상'을 통해 '우리집에 오는 노동자'들의 노동을 살피고 있는 '건강한 일터 안전한 영등포를 위한 노동인권사업단'이 7월에는 가사노동에 빛을 비추었다. 가사관리사와 산후관리사라는 우렁각시들이 우리 몰래 해내고 있는 노동의 결을 들여다보았다.

엉덩이 붙일 새 없이 일하는 4시간

가사관리사도 경력단절 여성들의 중요한 직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가사관리사도 경력단절 여성들의 중요한 직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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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옥(66)씨는 베테랑 가사관리사다. 5년째 일하고 있다. 하루 4시간씩 오전, 오후 타임으로 일한다. 4시간 동안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청소, 빨래, 음식 준비, 정리정돈 등등. 그러하니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서는 안 된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어지러운 것들을 정리하면서 청소기를 민다. 걸레질을 하다가 빨래가 다 됐다는 신호음이 울리면 뛰어가서 빨래를 넌다. 1주일에 한두 번 가니 세탁기도 기본 두 번은 돌린다. 빨래가 마르면 걷어서 개고 다림질도 한다. 틈틈이 음식 재료 손질도 한다. 화장실 청소 같은 큰 일이 끝나면 그제야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다.

4시간 내내 쉴 틈이 없다. 요즘 같은 여름이면 한 손에는 청소기를 들고 다른 손에는 손수건을 든 채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으면서 일한다. 고객 집이기에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튼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최고의 선물로 여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전 일을 끝내면 바쁘게 다음집으로 향한다. 거리가 가까우면 근처 식당에 가서 밥 먹을 시간이라도 있지만 멀면 이동하는 지하철역 등지에서 김밥이나 떡 등으로 점심을 때운다. 1시간 밖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후 2시, 다음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오후 타임 일이 시작된다. 다시 4시간 동안 엉덩이 붙일 새 없이 종종 걸음으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노동이 도돌이표처럼 이루어진다. 일을 마치고 두 번째 집을 나설 때쯤 백씨는 녹초가 돼 있다.

"우리가 슈퍼우먼이 아닌데도 고객들은 이것저것 시켜요. 4시간 안에 다 할 수 없는 일들을요. 김치를 해달라는 분도 있죠. 하는 데까지 해주긴 하는데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해요."

힘든 점을 말하면서도 백씨는 웃었다. 그만큼 일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27년 동안 운영했던 지물포를 갑자기 닫게 되면서 막막해진 살 길을 열어준 것이 바로 '일'이었다. 처음엔 산후관리일을 했다. 산모와 신생아를 돌보면서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특히 7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찾아온 우울증을 떨쳐내는 데도 일이 큰 역할을 했다. 산모와 아기가 잘 때도 백씨는 우두커니 있지 못하고 계속 집안을 쓸고 닦았다. 잡생각이 들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어느새 마음의 병도 날아갔다. 무엇보다도 그에겐 건사해야 할 식구가 있었다. 올해 98세인 시어머니다. 엄연한 가장이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산후관리일은 불안했다. 보통 2주 일하고 다음 집과 연결되는 산후일은 바로바로 연결되지 못해 1, 2주씩 공백이 생기기 일쑤다. 한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선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다. 5년 전 현재 일하는 업체로 옮겨 오면서 직종도 좀더 안정된 가사일로 바꿨다.

물론 가사일도 마냥 안정적이지만은 않다.

"고객이 교사가 많은데 방학이 되니까 주2회 가던 집에서 한 번만 오라고 하고, 한 집은 그만두게 됐네요."

하루 두 타임씩 1주를 꽉 채우면 열 타임이지만 다 채우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백씨는 거기에 더해 수요일 하루를 더 비워뒀다.

"가사관리일은 내 시간을 내가 조절할 수 있어서 좋아요. 가난해서 많이 못 배웠거든요. 지금 복지회관에 가서 영어도 배우고 오카리나도 배우고 있는데 너무 좋아요."

가사관리사도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어

가사관리일은 4시간 안에 청소, 빨래, 요리 등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번에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가사관리일은 4시간 안에 청소, 빨래, 요리 등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번에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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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돈도 벌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다고 백씨는 좋아했다. 그렇다고 바라는 바가 없지는 않다. 특히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이 크다.

"일을 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에요. 그래서 4대보험이나 산재 같은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있지요. 그런 부분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백씨를 비롯해 많은 가사노동자들이 여러 해 동안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펼쳐 왔고 결실을 맺을 날이 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 26일, '가사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가사도우미 특별법)을 입법예고했다. 정부의 인정을 받은 서비스 기관이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4대 보험 등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뼈대를 갖췄다. 현재 30만명이 넘는 가사노동자들이 혜택을 받게 된다.

하지만 미흡한 점도 있다. 정부안은 휴게·휴일 규정이 빠져 있어 현재 기업 소속 가사노동자들이 누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조건에도 미치지 못한다. 단시간 노동자가 초과근무를 할 때 받는 초과근로가산임금 적용도 배제됐다. 서비스 기관과 이용자들의 의무사항도 별로 제시돼 있지 않다.

이에 관련 단체들은 "가사노동자 보호보다 가사서비스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법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부안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이 법안들이 통과된다면 가사관리사로 일하는 것이 즐겁다는 백씨의 웃음이 더 커질 듯하다.
 
산모와 신생아의 든든한 버팀목, 산후관리사

산후관리사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한국에서 더 중요해지고 있는 직업이다.
 산후관리사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한국에서 더 중요해지고 있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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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씨가 불안정해서 오래 할 수 없었다는 일을 공미애(56)씨는 11년째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공감밥상을 하던 7월 24일 당시 공씨는 3주째 일을 못하고 있었다. 그는 "올해 들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느낀다"고 걱정하면서 산후관리사가 하는 일을 들려줬다.

산후관리사는 신생아에 관한 일은 다 한다.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거나 산모가 모유수유하고 유축하는 걸 돕는다. 아기 빨래를 하고 매일 목욕도 시킨다. 산모의 배나 가슴 마사지도 한다. 자연분만일 경우 산모의 좌욕도 챙긴다. 공씨는 족욕도 할 수 있게 한단다. 아이들 병원에 갈 때 같이 가고 산모에게 아기 키우기와 관련된 교육도 한다. 미역국과 반찬 2~3가지를 담은 산후 음식도 해준다. 그러면서 거실과 아기방 중심으로 집안 청소도 한다. 산후관리일 역시 하루 8시간이 빠듯하다.

"중간에 휴식시간이 1시간 있는데 제대로 쉬지는 못해요. 아기가 우는데 휴식시간이라고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요. 휴식시간은 그렇더라도 밥 먹을 시간은 줘야 하는데 산모가 자기 밥만 먹고 방에 들어가 버리는 경우는 난감해요."

'우리집에 온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공씨는 산후관리사가 갈 때는 천기저귀를 자제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천기저귀는 욕실에 쪼그리고 앉아서 손빨래를 해야 하는데 그 때문에 손목과 무릎이 많이 망가진단다. 아기들을 계속 안고 있는 것도 산후관리사들의 팔과 어깨에 많은 무리를 준다.

"애들이 굉장히 무거워요. 어떤 애들은 하루종일 안아줘야 하고요. 손목이 끊어지는 것 같고 집에 와서 앓아누워도 산모 앞에서는 내색을 안 해요. 산모가 불안하면 안 되니까요."

불안정한 생활이 힘들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아가들의 웃음을 보면 모든 근심걱정이 다 날아간다"는 산후관리사 공미애 씨는 "관리사님이 곁에 있어서 산후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아가들의 웃음을 보면 모든 근심걱정이 다 날아간다"는 산후관리사 공미애 씨는 "관리사님이 곁에 있어서 산후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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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공씨는 자신을 '산모와 신생아를 도와주는 엄마 같은 산후관리사'라고 소개했는데 그 속깊음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어려움이 있다. 공씨는 '불규칙한 소득'을 첫손으로 꼽았다. 1달 내내 일해야 135만 원 정도를 받는데 아기가 태어나야 연결이 되는 일의 특성상 그렇게 벌기 쉽지 않다.

공씨처럼 1달에 3주를 쉬면 4대 보험도 자신이 내야 한다. 돈은 돈 대로 못 벌고 나가는 건 더 많은 우울한 달을 맞이해야 하는 셈이다. 그는 "저는 애들이 다 커서 좀 낫지만 한창 아이들 교육비가 들어가는 관리사들은 타격이 클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불안정한 일임에도 산후관리일을 하는 까닭으로 공씨는 "아기들"을 들었다.

"우리 직업은 아기가 예뻐야 하지, 아기를 예뻐하지 않으면 절대 못해요. 산모가 까다롭고 힘들게 굴어도 저는 애기가 미워지지 않아요. 아기는 죄가 없으니까요. 집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가서 아기들 배냇짓을 보고 있으면 힘든 일이 생각 안 나요. 애가 웃으면 같이 웃게 되고요. 그게 이 일의 가장 큰 보람 같아요."

산모들과의 정서교감도 산후관리사의 큰 일이다. 공씨는 일을 끝낸 뒤 "산후 우울증이 심했는데 관리사님이 옆에서 계셔서 그 시간을 넘길 수 있었다", "아기 돌보는 걸 도와주셔서 아기 키우기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편지를 받거나 말을 들을 때 산모들에게 "오히려 더 고마웠다"고 말했다.

산모들은 이런 베테랑 산후관리사를 만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공씨는 3주째 일을 쉬고 있었다. 출산율은 떨어지는데 공급업체는 난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만 100여 개의 산후관리업체가 등록돼 있다. 산후관리사 10명과 사무실만 있으면 업체 등록이 가능하다고 한다.

함께 자리했던 행복한돌봄협동조합의 이순덕 팀장은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업이 시작된 이래 7년여 동안 정부지원금은 큰 차이가 없어서 본인부담금 확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산후관리사를 5주까지 쓸 수 있게 됐지만 그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선뜻 못 쓰는 산모들도 많다"면서 정부지원금의 확대를 주문했다.

그는 "요즘은 돌봄서비스를 하는 분들 중에 대졸도 많고, 경력단절 여성들의 중요한 일자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면서 "그분들이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좋은 일자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와 함께 이 팀장은 가사노동자들의 고객들에게도 '배려'를 요청했다.

"요즘은 면접을 가서 서비스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동행면접을 가면 지금처럼 더운 여름에 물 한 잔을 안 주세요. 우리집에 오는 사람에 대한 배려로 물 한잔은 줄 수 있지 않나요?"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일이 하나의 노동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사노동에 우리는 얼마나 가치를 두고 있는지, 그 일을 대신하는 가사노동자의 노동엔 또 얼마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한편 8월의 '우리동네 노동인권 공감밥상'은 8월 28일 오후 7시, 영등포에 위치한 '카페 봄봄'에서 이루어진다. '우리집에 오는' 배달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전해질 예정이다.

☞ [우리 집에 온 노동자①] "우리를 파출부처럼 대해요" 요양보호사의 서러움


태그:#우리집에 온 노동자, #우리동네 노동인권 공감밥상 , #가사관리사, #산후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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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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