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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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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화성공장 북문 퇴근장에서 피켓을 든 사내하청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최정명씨와 한규협씨. ⓒ 권우성
지난 18일 금요일 오후 3시 10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북문 퇴근장.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100대가 넘는 퇴근버스에 올라탔다. 그곳에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최정명(47)씨와 한규협(44)씨가 섰다. 자신의 복직을 요구하고 회사의 불법파견을 고발하는 팻말을 펼쳤다.

최정명씨의 눈에, 함께 일했던 형님의 모습이 보였다. 작업복 차림이 아니었다. 양복을 입고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최근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특별채용에 합격해, 정규직 연수생 신분으로 공장을 찾은 것이다.

곧 또 다른 형님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함께 일했던 그다. 표정이 어두웠다. 십수 년 동안 일했던 생산라인에서 쫓겨나 짐을 들고 떠나는 길이었다. 그 자리는 정규직으로 특별채용된 이들이 맡는다. 한때 동료였지만, 이젠 정규직, 쫓겨나는 비정규직, 해고자가 된 그들이 그날 한 자리에 있었다.

"정규직 연수생이 된 형님은 제 눈을 못 맞추더라고요. 저희는 1년 동안 고공농성을 하다가 해고됐고 그 이후 특별채용 인원이 늘었으니, 저희한테 미안한 감정이 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형님이 원망스럽진 않아요. 모두 행복하게 10년 이상 일하던 곳에서 정규직으로 일할 수도 있을 텐데, 이런 상황을 만든 회사가 밉더라고요."

최정명씨는 씁쓸하게 말했다. 최정명·한규협씨는 2015년 6월 서울 을지로 당시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판에 올랐다. 스스로를 하늘 감옥에 가뒀고, 363일 만에 땅을 밟았다. 기아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한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땅으로 내려온 지 1년 2개월이 지났다. 불법파견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산 라인에서도, 기아차 노조(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에서도 쫓겨났다. 해고자 최정명·한규협씨는 형사재판을 받고 있고, 6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금을 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하늘 감옥에서 내려온 두 사람의 삶은 오히려 스산해졌다. 21일 기아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노조(금속노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사무실에서 최정명씨를 만났다. 한규협씨가 함께했다.

남은 건 6억 원의 빚
363일 고공농성 마지막 날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서울 중구의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여온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한규협 씨가 농성시작 363일만인 2016년 6월 8일 오후 농성을 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두사람이 농성을 풀고 내려오기에 앞서서 사진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최윤석
최정명씨가 지내고 있는 곳은 공장 인근 월세 30만 원짜리 원룸이다. 가족은 경기도 고양시에 살고 있지만, 매일 오전 6시 출근 선전전으로 시작하는 노조 활동 때문에 주말에만 잠시 집에 들른다. 이날 집을 떠나 공장에 닿은 것은 오전 3시였다.

두 사람과 마주 앉자마자, 조심스럽게 손해배상금 얘기를 꺼냈다. 두 사람이 땅을 밟기 하루 전인 2016년 6월 7일 법원은 최정명·한규협씨와 땅에서 그들을 돕던 당시 사내하청분회장 양경수씨가 광고판 업자에게 물어야할 손해배상금을 확정했다. 원금은 5억4000만여 원이고, 돈을 모두 갚을 때까지 이자를 내야 한다. 이자가 계속 불어나, 손해배상금은 현재 6억 원을 넘었다.

세 사람은 손해배상금으로 내놓을 만한 재산이 없다. 해고자인 터라 마땅한 수입도 없다. 결국 법원 집행관은 세간살이에 압류 딱지를 붙였다.

그해 8월 경매가 진행됐다. 경매장은 각자의 집이었다. 최정명씨의 집으로는 법원 직원 2명과 경매 브로커 1명이 찾아왔다.

"아이들 방학 때였는데, 아이들한테 차마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겠더라고요. '우리 집이 어떻게 되나 보다', '엄마 아빠가 어떻게 되나 보다' 하는 공포가 생길 수 있잖아요. 집사람만 경매에 참여하고, 저는 애들을 데리고 나가서 놀이터에서 놀았죠."

세탁기, 냉장고, 김치냉장고, 식탁, 전자레인지, 컴퓨터, 프린터, TV, 오디오 등 세간살이가 하나씩 경매에 나왔다. 그의 아내가 배우자 우선매수권 제도를 이용해, 128만 원을 내고 모두 낙찰받았다.

"우리가 안 사면, 갖고 가잖아요. 냉장고에 김치랑 반찬이 다 있잖아요. 그게 없으면 당장 애들 밥도 못해주니까 어쩔 수 없이 사게 되죠. 결혼할 때 산 거라, 지금은 버려야 될 중고 수준이에요. 경매가가 얼마 안 나왔어요. 

TV에서 보던 일을 실제로 겪은 거죠. (경매가 끝난 후 아내는) 특별한 얘기를 안 하더라고요. 고공농성 기간에도 뒷바라지를 했으니까, 거기에 따라오는 문제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고공농성이 워낙 세니까 그 뒤로는 많이 덤덤해진 거죠. 근데 기분이 좋지는 않았겠죠."

다행히 전세보증금은 아내 명의라, 압류 대상에서 빠졌다. 이때 한규협씨가 입을 열었다.

"저는 임대아파트 살고 있는데, 보증금이 3000만 원이에요. 그 중에 대출이 2000만 원이나 되기 때문에, (법원이) 내버려둔 것 같아요. 하하."

하늘감옥에서의 1년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최정명씨와 한규협씨. ⓒ 권우성
두 사람은 어려운 생활을 전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하늘 감옥에서 보낸 시간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에어컨 없는 여름을 상상하기 힘든 요즘, 두 사람이 하늘 감옥에서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졌다. 최정명씨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 고공농성하면서 여름은 어떻게 보냈어요?
"광고판은 철판으로 돼있어요. 열을 받으면 순식간에 확 달아올라요. 그래서 손을 대면, 1초도 못 견뎌요. 화상을 입죠. 매트를 깔아도 그 열기를 못 막아요. 몸 한쪽으로 누웠다가, 뜨거우면 몸 다른 쪽으로 눕고."

- '철판 뒤집기'가 그런 뜻이군요.
"사람 몸이 프라이팬 위에 있는 것처럼, 이쪽으로 한번 저쪽으로 한번 뒤집어야죠. 하하. 그늘막 아래에 있어도 손발이 타요. 뜨겁다기보다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어요. 선크림으로는 안 되고, 화상연고를 발라야 했죠."

여름에는 모기도 많다. 최씨는 "여기에선 바퀴벌레도 못 살아요. 그런데 모기가 엄청 많아요. 날아서 오니까. 엄청 힘들었죠"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겨울은 어땠을까. 두 사람은 광고판 내부로 들어가서 견뎠다. 최씨는 "영하 19.6도였던 날이 가장 추운 때였어요. 광고판을 만지면 손이 들러붙죠. 떨어지지 않아요. 저는 그래도 겨울을 잘 나는 편인데, 한규협 동지는 그렇지 않았죠"라고 말했다. 한씨가 말을 받았다.

"요새는 세월이 좋아져서 동상 연고가 없대요. 동상 걸리는 사람이 없으니까. 가끔씩 의사 선생님들이 올라오셨는데, 치질약이 동상 연고와 제일 비슷하다며 치질약을 주고 가셨어요. 저는 발뒤꿈치에 동상을 입었는데, 많이 발랐죠."
최정명씨와 한규협씨가 국가인권위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29일째 농성을 벌이던 당시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두 사람은 1년 동안 가족에게 못할 짓을 했다. 아이들은 아빠 없는 1년을 보냈고, 아내들은 광고판 업주에게 온갖 수모를 당했다. 2015년 8월 최정명씨의 아내가 밥을 전달하려 했지만, 광고판 업주가 이를 막았다. 그러면서 "(최정명·한규협씨가) 죽어서 내려오면 돼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씨의 아내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았다. 두 사람은 아직도 아내와 가족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경찰은 최정명씨를 압박하기 위해 그의 노부모에게 연락을 하기도 했다.

"노부모님이 쓰러질까봐 고공농성하는 것을 일부러 알리지 않았어요. 근데 경찰이 어머니한테 몇 번 전화 했나 봐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경찰이라고 하면, 보이스 피싱이니 바로 끊어버리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그 다음부터는 경찰이라고 하면 바로 끊으셨어요."

☞ [인터뷰②] 생산라인에서 쫓겨나고, 정규직에게 버림받고

태그:#기아차 불법파견, #최정명, #한규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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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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