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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3층 규모의 노동당사 모습. 한국전쟁 전에 북한이 노동당사로 이용한 건물로 수많은 총탄자국이 남아있어 전쟁의 참상을 말해준다
 지상 3층 규모의 노동당사 모습. 한국전쟁 전에 북한이 노동당사로 이용한 건물로 수많은 총탄자국이 남아있어 전쟁의 참상을 말해준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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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9시, DMZ생태평화공원 탐방로 걷기여행에 참가한 32명의 목적지는 한탄강 주변과 노동당사 방문이다. 생창리숙소를 출발한 버스는 한탄강을 향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지만 대부분은 개의치 않는다. 장마철이라 비 맞을 각오를 한 것이겠지만 차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 속에 북한 오성산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한탄강으로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깜박 잠이 들려다 어젯밤 일행 중 한분이 들려줬던 이야기가 나를 깨웠다. 그는 일행이 하루전에 방문했던 십자탑 전망대 부근 GP에서 40여년 전 분대장으로 근무했었다고 한다. 십자탑전망대 바로 앞에는 6.25전쟁 중 최대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오성산이 눈 앞에 있었다.

생창리 인근에 펼쳐진 비닐하우스  뒤쪽 멀리 북한에 위치한 오성산이 보인다. 6.25전쟁 중 최대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격전지 중 하나이다
 생창리 인근에 펼쳐진 비닐하우스 뒤쪽 멀리 북한에 위치한 오성산이 보인다. 6.25전쟁 중 최대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격전지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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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전 근무했던 부대로 다시 돌아와 현장을 보니까 감개무량하죠. 제가 근무했던 당시와는 비교가 안 되게 시설이 현대화되었네요.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꼼짝마라!'일 것 같아요.

국군초소와 가장 가까운 북한군 초소의 거리가 63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망원경으로 보면 상대방 얼굴도 보입니다. 북쪽에다 대고 오줌을 누면 '야임마! 너 어디다 대고 오줌누냐?'며 욕을 하기도 했어요.  한번은 초소 밖에서 비스켓을 먹었더니 자신이 김일성대학 나왔다고 소개한 김영철이 '야! 너 분대장놈 새끼! 졸병 것 뺏어먹었지?'하며 욕하는 거예요. 저쪽에서 '똥돼지 같은 놈아! 이 호로 자식같은 놈아!'그러면 우리도 같이 욕합니다. 이 곳에 근무하면서 상욕을 배웠습니다."

관광공사가 추천한 도보여행 코스 한탄강 유역

한탄강 모습
 한탄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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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은 오대쌀로 유명하다. 한탄강 주변의 친환경벼를 재배하는 논에 우렁이가 기어다니고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철원은 오대쌀로 유명하다. 한탄강 주변의 친환경벼를 재배하는 논에 우렁이가 기어다니고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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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에 대한 해법은 없을까 상념에 빠져있는데 가이드가 한탄강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양쪽에 큰 산이 없는데도 평야지대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한탄강 모습이 이채롭다. 북한 평강쪽에서 시작해 철원, 포천, 연천지역을 흘러 임진강과 합류되는 한탄강은 계곡이 장쾌하고 좌우 절벽이 진귀한 바위들로 이뤄져 곳곳에 경치 좋은 곳이 많다.

때문일까 강 주변에는 잘 가꿔진 위락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위락시설도 좋지만 내가 찾는 건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철원군농산물검사소, 철원제2금융조합, 승일교와 노동당사 건물이다.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의 도피안사

도선국사가 세운 도피안사 모습.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광복 후 공산당치하에 있다가 수복 후 육군 제15사단에서 복원했다.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고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도선국사가 세운 도피안사 모습.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광복 후 공산당치하에 있다가 수복 후 육군 제15사단에서 복원했다.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고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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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으면 강바닥이 보이는 곳까지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탄강으로 대신하고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의 '도피안사'를 방문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 말사인 도피안사는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고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통일신라 제48대왕인 경문왕 5년(865년)에 도선국사가 철원에 세운 절은 광복후에 공산당치하에 있었다가 수복 후 육군 제15사단에서 복원했다. 정문을 거쳐 본당으로 올라가는 길 옆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있고 연잎이 비스듬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연꽃과 연잎에 맺힌 빗방울을 촬영하다가 법정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도피안사 연못에  피어있는 연꽃과 연잎 모습. 법정스님은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버린다'고 했다.
 도피안사 연못에 피어있는 연꽃과 연잎 모습. 법정스님은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버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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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버린다"

내 자신 속에 또아리 틀고 있는 과한 욕심도 버려야 한다. 이틀간 DMZ지역을 돌아본 남북대치상황도 그렇다. 남북한이 서로를 무력으로 통일하려는 욕심도 버려야 한다.  며칠전 TV에 나온 90세 할머니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는 일본이 시작한 대동아전쟁부터 6.25전쟁까지 다 겪었어요. 전쟁은 적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해요. 전쟁은 절대 안 됩니다."

총탄 자국이 선명한 노동당사
 총탄 자국이 선명한 노동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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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을 간직한 노동당사 모습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을 간직한 노동당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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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잡한 심정으로 비 오는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노동당사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뉴스에서 여러 번 보았던 노동당사. 지상 3층 규모의 노동당사는 말 그대로 한국전쟁 전에 북한이 노동당사로 이용한 건물이다. 지역 주민들의 돈과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해 만든 것으로 무철근 콘크리트 방식으로 지었다.

당시 반공 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잡혀와 죽었다. 그을린 흔적과 포탄 자국, 탱크가 지나가며 부순 외벽 등 건물의 틀만 아슬아슬하게 남아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수많은 총탄과 포탄자국을 보며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DMZ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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