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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지난 수세기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고 참혹한 일을 저지르는 명분으로 성서 구절을 이용했다. 신의 저주를 받은 인종이라며 1400년간 아프리카인들을 폄하하고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는데도 성서를 이용했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수만 명의 (대부분) 무고한 여성들을 신의 이름을 학살한 마녀 사냥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도 성서였다. 아파르트헤이트와 반유대주의를 정당화하는 데도 성서 구절을 인용했다. 지금도 많은 지역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복종을 강요하고, 동성애자를 탄압하고, 자연환경을 착취하는데 성서 구절을 악용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 사제인 데이브 톰린슨의 책 <불량 크리스천>의 한 대목이다. 성서는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는 고전이다. 그러나 톰린슨의 지적처럼 성서는 종종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범죄행위의 명분을 제공해왔다.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독자들은 성서 이야기를 하는 데 어리둥절해할 지도 모른다. 이제 아래에서 성서 이야기를 끄집어 낸 이유를 풀어가려 한다.

8개 교단 이대위 모임이 임보라 목사의 이단성 심사와 관련해 내놓은 의견서. 의견서는 임 목사가 퀴어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를 위해 기도한 일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8개 교단 이대위 모임이 임보라 목사의 이단성 심사와 관련해 내놓은 의견서. 의견서는 임 목사가 퀴어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를 위해 기도한 일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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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장로교단인 예장합동 교단을 포함해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회 모임(아래 이대위 모임)이 8월8일자로 성소수자 인권 보호 활동을 해온 임보라 목사의 이단성에 대해 의견서를 내놓았다. 이 의견의 핵심을 한 줄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정통 교회는 성경의 말씀에 따라 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같은 결론에 따른다면 보수 개신교계가 성소수자를 향해 발산했던 혐오는 정당한 '신앙적' 행위다. 실제 이들은 의견서에서 "동성애는 인권이 아니라 음란으로 규정되는 죄악"이라고 못 박았다. 임 목사는 이에 맞서 목회 활동을 비롯해 방송 출연이나 저술, 기고 등을 통해 성소수자 혐오가 편견과 무지의 소산임을 주장해왔다. 이대위 모임은 임 목사의 활동 전반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동성애를 가증한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을 '동성애자에 대한 악의적인 내용'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서운 범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대위 모임의 결론이 선포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성서가 죄악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우리는 계속 성소수자를 혐오하겠으며, 다른 의견은 이단으로 간주하겠다'는 말이다.

이대위 모임은 자신들의 결론이 위와 같은 메시지를 품고 있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이들은 1일 오전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입장을 밝혔다.

"임 목사는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하여 일하는 인권운동가로 묘사되고 있으며, 본인 또한 그렇게 주장하면서 성경에 근거하여 자신의 활동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기독교가 임 목사의 성경 해석 및 주장에 대해 관찰 및 조사, 그리고 연구를 함은 마땅하다. 관련하여 임 목사는 성경해석에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그러한 까닭에 교회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주장들을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문자주의의 함정에 빠진 보수 교단 

이런 말 하면 많은 이들이 놀랄 수 있겠고, 일부는 분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8개 교단 이대위 모임이 낸 의견서와 기자회견을 지켜 본 이상 막말 같아도 꼭 해야겠다.

만약 이대위 모임의 결론대로라면, 성서는 성소수자 혐오를 공공연히 설파하는 불온한 책이다. 따라서 정부 담당 부처는 당장 성서를 금서로 지정하고, 전량 수거해 폐기 처분해야 한다. 또 성서를 들먹이며 성소수자 혐오를 정당화하는 무리들, 특히 예장합동 및 8개 교단은 우리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

7일 오전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는 예장합동의 임보라 목사 이단심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7일 오전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는 예장합동의 임보라 목사 이단심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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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담고 있는 책이지만, 교회가 배타적인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다. 성서는 수천 년에 걸쳐 인류가 겪은 경험을 담고 있는 책이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서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 미국의 작가이자 신학자인 프레데릭 뷰크너는 그의 저서 <말로 다할 수 없는>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요컨대 성서는 3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기록한 60여 권의 특이한 책을 어지럽게 모아놓은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안에는 지루하고 야만적이고 모호하고 모순적이고 일관성 없는 내용이 가득하다. 책으로 쌓아 올린 퇴비 더미이자 시와 선전물, 율법과 율법주의, 신화와 우울함, 역사와 히스테리를 넣고 끓인 아이리시 스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서에 담긴 메시지를 정확히 끄집어내기 위해선 '60여권의 특이한 책'이 쓰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지금 이 시대에 새롭게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그리스도교는 보이지 않는 절대자 하느님의 존재를 믿어야 하기에 상상력 동원은 필수다. 이런 노력 없이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회 전반에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프레데릭 뷰크너는 특히 문자주의의 폐단을 심각하게 경고했다.

"오랫동안 이 책들은 열변을 토하는 복음 전도와 따분한 경건주의, 낡아빠진 미신, 청교도식 훈계, 교회의 권위주의, 치명적인 문자주의와 끔찍하게 엮이곤 했다."

예장합동을 비롯한 8개 교단 이대위 모임이 임보라 목사를 향해 자행한 이단성 심사는 바로 이런 문자주의가 불러오는 폐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스도교를 비롯해 모든 종교는 각 사회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며,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바로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 말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예장합동 및 8개 교단의 이단성 심사는 성서를 모독하고, 그리스도교의 정신마저 거스르는 심각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21세기에 뜬금없는 이단성 심사에 나서면서 고작 '동성애는 인권이 아니라 음란이자 죄악'이라는 천박한 결론을 낸 건 참으로 경악스럽다. 우리 사회 공동체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격리가 필요해 보인다.

한국 교회, 특히 보수 개신교는 사회 통합에 역기능을 수행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소망교회 장로였던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전폭 지지한 한편, 역사교과서 국정화, 12.28한일위안부합의, 개성공단 폐쇄 등 박근혜 전 정권이 밀어붙이다시피 추진한 정책을 지지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이번 예장합동 및 8개 교단의 임 목사 이단성 심사는 한국 보수 개신교가 한국사회에 남긴 또 하나의 흑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흑역사로 기억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기독교 인터넷 신문 <베리타스>에 동시 송고하고자 합니다.



태그:#임보라 목사, #예장합동, #데이브 톰린슨, #불량 크리스천, #프레데릭 뷰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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