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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는 어떤 시일까? 나에게 좋은 시란 쉬운 말로 썼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시다. 너무 쉬워서 긴장을 하지 않고 읽다가 무방비 상태에서 감동의 허를 찔리는 시다. 편하게 읽다가도 시대의 아픔에 가슴이 저려오는 시다. 최근에 읽은 박일환 교육 시집 <덮지 못한 출석부>(나라말)에는 그런 시가 많았다. 우선 두 편만 읽어보자.

지각을 밥 먹듯 하고 툭하면 결석하고 때로는 중간에 말없이 집으로
가 버리는 녀석들에게 화를 내곤 했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시험
답안지에 3번만 내리 긋고 급식 시간에 새치기를 하고 청소 시간에
농땡이만 부리는 녀석들을 향해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런 녀석들이 한 명도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선생이란 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 <선생이라는 존재> 전문 

화장실 얘기가 아니다.
아침에 들어설 때 처진 어깨였다가
오후에 재잘거리며 우르르 빠져나가는
저 싱싱한 웃음꽃들을 보라.
오므라들었다가 확 펴지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이 없는 저 교문!
-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 전문

박일환 교육 시집 <덮지 못한 출석부>(나라말) 표지
 박일환 교육 시집 <덮지 못한 출석부>(나라말) 표지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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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환의 두 편의 시를 읽고 "이런 시쯤이야 나도 쓸 수 있겠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아마도 박 시인은 그걸 좋게 여길 것 같다. 시가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박 시인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가 현직 교사로 근무하면서 전업 작가 못지않게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다(그는 스무 권 가량 책을 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를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그를 만난 뒤의 일이다. 
 
지난 팔월, 전주에서 박 시인을 만났다. 전북교육청 로비에서 교육문예창작회(아래 교문창) 소속 시인들이 쓴 세월호 기억시(육필시) 전시회가 있던 날이었다. 교문창 대표이기도 한 박 시인은 교문창 소개와 함께 세월호 기억시를 쓰게 된 과정 등을 설명했고, 나는 내가 쓴 다섯 편의 기억시 중에서 한 편을 낭송했다. 

우리는 행사를 마치고 단둘이 오붓이 만난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같은 해에 교직을 같이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국어 교사로, 나는 영어교사로. 특기할만한 것은 우리가 당시 사학재단이 주관한 사립교원 공채 시험 출신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보다 더 특기할 만한 점이 더 있었다. 그가 먼저 고백(?)하고 내가 바통을 받았다.  

"전 대학 때 공부를 별로 안 했어요. 교직은 이수했지만 교사가 될 생각도 없었고요. 시험에 간신히 붙긴 했는데 대학 학점이 바닥이어서 면접에서 떨어질 줄 알았어요. 어떻게 용케 학교에 들어가긴 했는데 처음 몇 달은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지도 못했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가출을 두 번이나 했거든요. 그것이 생활기록부에 무단결석으로 잡히기도 하고 행동발달사항도 준법성과 책임감에 '다'가 두 개나 되다보니 사학채용 시험에 합격하고도 임용이 안 될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다행이 통과가 되어 교단을 밟긴 했지만요."

이게 무슨 즐겁고 통쾌한 일이라고 우리는 서로의 못나고 부족한 공통점을 알게 되자 배꼽을 잡고 웃어제꼈다. 하긴 나는 지난해 2월 정년퇴임을 한 상태이고, 그는 올해 팔월에 명예 퇴임을 할 예정(당시로는)이어서 안 웃고 말 것도 없었다. 어쨌거나 한 순간에 수십년지기가 된 기분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남학생들만 다니는 상고였는데 입학식 때 안 보이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가출한 학생들 잡으러 다니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고요. 아이들이 이해되지 않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저랑 수준이 비슷하거나 더 양호하거나 그랬으니까요. 그래도 졸업이라고 해서 교직에도 올 수 있었으니 아이들을 포기하지 못한 것 같고요."

"저는 첫 학교가 여상이었는데 가정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제가 살았던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생활을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오히려 많이 배웠지요. 제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어색하고 그랬지만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우리는 서로 비슷한 듯 달랐다는 얘긴데, 그는 나중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가입 문제로 해직교사가 되었다가 다시 복직하여 공립학교에 재임용된다. 그는 삼선중, 오류중, 구일중, 오남중, 개웅중을 거쳐 영남중에서 교사 생활을 마무리 했다. 나는 달랐다. 전교조 조합원이긴 했지만 해직교사의 길을 걷지는 못하고 첫 학교가 마지막 학교가 되었다. 그가 해직교사 시절 쓴 시가 눈에 밟힌다. 

4년 반 동안 달고 다니던
전교조 해직교사라는 꼬리표.
한 번도 부끄럽게 여긴 적은 없으나
언젠가는 꼭 떼어 내고 싶었던
그 꼬리표.
끝내 싸워서 이겨서
이간 자의 당당함으로 서서
보란 듯이 떼어 내고 싶었으나
전교조 탈퇴각서에 도장을 찍고
초라하게 참으로 초라하게
떼어 내던 그날.
나는 울었던가.
속으로속으로 눈물 삼켰던가.
그로부터 다시 1년.
위급함을 모면하기 위해
자기 꼬리를 자르고 도망간다는
도마뱀을 생각한다.
도마뱀이 잘라 버린 꼬리는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눈물 머금은 희생인가.
아니면 그저 목숨만 부지하기 위해
매정하게 잘라버린 살덩어리인가.
밤 깊도록 잠 못 이루며 생각한다.
- <도마뱀을 생각하며> 전문

그는 시집 후기에 "교사 시인이 아니라 시인 교사가 되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나는 그가 교사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모른다. 다만 그의 시를 읽다보면 그가 좋은 교사였으리라는 짐작은 간다. 여기서 좋은 교사란 자기 성찰에 능한 교사이거나, 학생들에게 어떤 교사여야 하는지 늘 묻고 고민하는 교사를 의미한다. 다음 두 편의 시를 읽어보자.

칠판에 글씨를 쓰다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
분필이 뚝 부러졌다.
선생으로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분필을 부러뜨렸을까?

삼십 년 동안
아―삼십년 동안
내 사나운 목소리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 마음을
뚝! 부러뜨렸을까
- <부러진 분필> 전문

너 오늘 청소 당번이니까
청소하고 가야 해, 알았지?
도망갈까 봐 일부러 콕 찍어 일러 주는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냥 간다.

다음날 교실에서 만난 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쩡한데
왜 나 혼자 속이 터지는 걸까?
교과서를 펼쳤다 덮듯이
생각을 열고 덮는 사이
너에게 온전히 가 닿지 못한 말들이
분필가루처럼 쌓여 떨어진다.
- <배웅> 부분

이 시집의 발문을 쓴 박두규 시인은 "박일환의 교육시들은 주로 학교라는 고정화된 틀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아이들이 시로 올라온다. 아이들이 자유롭고 싶은 것은 사실 뭇 생명의 본능적 행위인 창조적 삶을 위한 몸부림이다"라고 말한다. 다음 두 편의 시를 읽어보자.  

교실마다 뛰쳐나오고 싶은 개구리들이
뒷다리에 잔뜩 힘을 모으고 있다.
- <경칩> 전문

넌 맨날 지각이냐?
지각 안 한 날이 더 많은데요?
그래서 잘 했다는 거냐?
선생님이 말은 똑바로 하라고 하셨잖아요.
남아서 벌 청소하고 가.
청소 말고 다른 거 하면 안 되나요?
오늘은 일찍 가야 해서요.
갈 데가 왜 그리 많아?
학교만 아니면 갈 데야 많죠.
그럼 학교에는 왜 오는 거냐?
졸업하려고요.
졸업은 해서 뭐하게?
지금까지 다닌 게 억울하잖아요.
억울하면 청소하고 가.
한 번만 봐주세요. 어차피 도망갈 건데.
니가 나 좀 봐 줘라.
헤헤헤―
허허허―
- <수업 일기 3. 이길 수 없는 싸움> 전문

이길 수 없는 싸움은 아름다운 싸움이다. 교사는 학생을 이기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학생을 억압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음을 박일환 교사 시인은 너무도 여실히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니가 나 좀 봐 줘라니?" 다행히도 그 말이 아이에게 통했나보다. "헤헤헤―" "허허허―" 서로 웃고 마는 걸 보면.

그런 곳이 학교다. 그는 학교를 떠나 있던 시절에 그걸 알았다. 이제는 영구히 학교를 떠나 있겠지만 말이다. 그가 떠나도 학교에는 "학생주임이라도 뜨면/혼비백산/달아나기에 바쁜 아이들이" 야단법석을 떨고 있을 것이다.

또한 "비록 등허리가 휘어지더라도/매달릴 아이들이 있기에" 마냥 즐겁고 행복한 박 시인만큼이나 어리숙한 교사가 그의 빈 자리를 채워줄 것이다. 교직을 떠나는 박 시인의 쓸쓸한 심경이 엿보이기도 하는 마지막 시를 소개하면서 부족한 글을 마칠까 한다.

이렇게 가르치고 싶었다.
늘 깨어 있어라.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아라.

하지만 눈 감고 책상에 엎드린 아이들 많았다.

이렇게 가르치고 싶었다.
교과서를 믿지 마라.
무엇이든 의심하고 질문하며
교과서 밖의 진실을 찾아가라.

그래서일까. 교과서를 베고 잠든 아이들 많았다.

가르치고 싶었으나 가르치지 못한 것들이
수북한 낙엽을 이루어
교정 화단에 쌓여 있다.

낙엽 한 장 집어 드니
숭숭 뚫린 잎맥 사이로 지나온 길이 보인다.

나는 어느새 가을에 와 있고
아이들은 철모르는 웃음을 날리며 운동장 쪽으로 뛰어간다.
- <수업일기 15. 가을 앞에서> 전문


덮지 못한 출석부

박일환 지음, 나라말(2017)


태그:#박일환, #교육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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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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