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7월 13일부터 10월 16일까지 100일 프로젝트로 '당신이 기다리는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되어주세요 600'(당기다 600)을 진행합니다. 인권활동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이어가기 위해 안정적인 활동비를 확보하고 아픈 활동가와 지친 활동가에게 안정적인 쉼을 제공하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편집자말]
사회적 약자들을 세상과 연결해 주던 사람들

 쌍용자동차 대한문 분향소.

쌍용자동차 대한문 분향소. ⓒ 점좀빼


2012년 봄, 대한문은 늘 전쟁 통이었다. 유서 한 장 없는 죽음들을 추모하겠다며 차디찬 바닥에다 얼굴 없는 영정 사진을 세우고, 종이컵에 흙을 담아 향을 피우고, 쓴 소주잔만 올린 상차림을 경찰들은 발로 걷어찼다. 신고하지 않은 불법행위를 그만두라는 스피커 소리에 맞춰 피곤한 두 눈에 적개심을 드러낸 앳된 경찰들은 향불을 끄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추모는 불법이었다. 국가가 부여하는 공권력은 늘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 그게 두려웠다.

2009년 쌍용차 평택공장 옥상에서 벌어진 정당한 공무집행은 얼마나 살 떨리도록 무서웠던가. 인적이 드문 시간도 아닌 벌건 대낮에도 종이컵을 빼앗고 영정사진을 부숴버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경찰들의 우악스러운 공무집행에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추모를 멈출 수는 없었다. 범법자로 낙인찍힌 해고자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추모뿐이었다. 타협이 불가능한 시간들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고요히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영화에서 나오는 저격수처럼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 순간순간들을 '기록'하던 사람들, 국가라는 가면 뒤의 숨겨진 폭력과 공포에 대해 카메라로 '질문'하던 사람들, 그리고 고립된 섬처럼 불법으로 둘러싸인 사회적 약자들을 세상과 '연결'해 주던 사람들, 그들 중에 연분홍치마가 있었다.

가려진 이름, 연분홍치마

연분홍치마는 용산 참사, 성 소수자, 노동자,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세월호참사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현장에서 기록과 질문과 연결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세상에 내놓은 영화 <두 개의 문>은 그런 질문과 연결의 정점에 선 작품이었다. 꺼지지 않는 유황불 같던 용산 남일당의 참사를 다룬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뒤에도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불길을 남겼다. 7만 명이 넘는 관객, 용산 참사에 대한 사회적 성찰, 국가 폭력에 대한 근본적 의문 등 영화 <두 개의 문>이 남긴 것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나 연분홍치마에게 남겨진 것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활동비, 공포에 가까운 사무실 임대료, 아직 청산하지 못하는 빚만이 남겨졌다. 사람들은 화면에 나오는 노동자들, 유가족들, 주민들을 기억하지 정작 그들의 싸움을 기록하고 질문하고 세상과 연결해준 연분홍치마는 기억하지 못한다. <당기다 600>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프로젝트는 그래서 제안되었다. 600명이 매달 1만 원씩 후원하면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이혁상, 한영희, 넝쿨, 변규리 활동가가 거리의 기록들과 질문들을 이어나가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가려진 연분홍치마의 이름을 이제 조금은 드러내자고 말이다.

우린 이제 어쩌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대한문 분향소에서 묵념을 드리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대한문 분향소에서 묵념을 드리고 있다. ⓒ 점좀빼


부끄럽게도 사실 난 그들의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천장이 낮아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했던 옥탑방 사무실을 가보고서도, 그 사무실조차 임대 기간이 끝나 이사 걱정에 이만저만이 아닌 걸 듣고서도 그들이 버티고 넘어야 할 그들의 문제로만 생각했다. 난 해고자니까, 늘 질문을 받아왔으니까,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티고 견뎌왔으니까 다른 이들의 고통에는 둔감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사실 답답한 친구들이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이런저런 일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러질 못했다. 생계비가 없으면 후원 주점이라도 해보자고, 사무실 이전을 할 요량이면 후원 콘서트라도 기획해보자고 핏대를 올렸지만 '우리가 해도 될까? 다른 어려운 곳도 많은데'라며 주저하거나 "우린 이제 어쩌지?"하며 배시시 웃는 게 다였다. 다른 이들의 어려움은 내 일처럼 기획하고 제안하던 사람들이 자기 일들에 대해선 자신 없어 했다. 그 와중에도 연분홍치마는 매년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2017년 쌍용차 해고자 자녀의 이야기를 다룬 <안녕 히어로>가 관객을 맞았고, 용산 참사 당시 생존자를 다룬 <공동정범>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물론 재정 상황은 생계비 지원 중단, 보증금에서 임대료를 제하고 있는 상황이란다. 결국, 망설임 끝에 후원주점을 하기로 했나 보다. 오는 28일 오후 5시부터 신촌 하이델베르크에서 연분홍치마 창립 13년 만에 후원주점을 연다는 연락이 왔다. '난생처음'을 무척 강조하고 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절박해 보이긴 또 처음이다.

끝까지 기억하는 자가 되자

 연분홍치마 활동가들의 안정적인 활동과 안정적인 사무실 운영구축를 위해, 더불어 아픈 활동가와 쉼이 필요한 활동가에게 안정적인 쉼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연분홍치마가 난생처음 후원주점을 엽니다.

연분홍치마 활동가들의 안정적인 활동과 안정적인 사무실 운영구축를 위해, 더불어 아픈 활동가와 쉼이 필요한 활동가에게 안정적인 쉼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연분홍치마가 난생처음 후원주점을 엽니다. ⓒ 연분홍치마


몇 달 전에 아직 복직하지 못한 해고자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적막한 장례식장 한편에서 상복을 입은 그녀의 남편과 소주를 나누는데 그러더라.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지금까지 선택하고 살아온 삶을 부정하고 후회하지 않지만, 시간을 조금만 되돌려서 살아보고 싶다'고. 되돌리지 못할 시간만큼 내 삶에서 갚아나가야 할 빚이 늘어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갚고 싶어도 갚아지지 않는 마음의 빚이 그렇게 커져 나간다. 사실 갚아야 할 이들은 아무 생각 없는데 기억하는 이들만 마음의 빚들을 늘려가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다시 복직하고 일상을 되찾더라도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삶에서 잃어버린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방법은 잊지 않는 것이다. 해고가 정당한 것인지 계속 질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고통에 둔감해지지 말고 함께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연분홍치마의 생존을 희망한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국가로부터 자본으로부터 내몰리고 쫓겨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친구가 돼주고 이 야만적인 사회에게 질문을 던져내는 <연분홍치마> 같은 친구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그들이 난생처음 쑥스럽게 내민 손을 우리 모두 '꼬옥' 잡아주자.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쌍용차 복직자 고동민님과 연분홍치마와의 인연
 글쓴이인 쌍용자동차 복직자 고동민, 대한문 분향소에서.

글쓴이인 쌍용자동차 복직자 고동민, 대한문 분향소에서. ⓒ 점좀빼


쌍용차 복직자 고동민님과 연분홍치마가 처음 만나게 된 것은 2012년 쌍용차 해고자들의 연이은 죽음이 이어지던 무렵이었습니다. 분향소 설치를 위해 쌍용차 해고자들이 밤낮없이 대한문 앞 투쟁을 하고 계시던 상황이었습니다. 연분홍치마는 대한문 앞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쌍용차 해고자의 복직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분홍치마의 어떤 제안에도 흔쾌히 함께 해주셨던 고동민님.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13년 퀴어문화축제의 현장에 와서 연대 발언을 해주셨던 순간입니다. 노동자들의 투쟁현장뿐 아니라 이 사회 곳곳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고동민님과 함께, 연분홍치마의 현장은 이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일시: 2017년 9월 28일(목) 오후 5~12시
장소: 하이델베르크하우스 신촌(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53-3, 지하1층)
문의: 02-337-6541 / ypinks@gmail.com
후원공식계좌: 우리은행 1006-701-255845 연분홍치마
함께 하는 사람들: <연분홍치마의 친구들> "진분홍치마"
사랑스러운 포스터 디자인: 이진아 작가
연분홍치마난생처음사랑스러운후원주점 고동민 쌍용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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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마마상, 3X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 두 개의 문, 노라노, 공동정범, 안녕히어로, 플레이온, 무브@8PM, 너에게 가는 길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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