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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한국전력공사는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마을 쪽 산에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95번 철탑을 완료해 세워 놓았다.
 2014년 2월 한국전력공사는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마을 쪽 산에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95번 철탑을 완료해 세워 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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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벌써 70이다. 처음 송전탑 반대 데모를 시작할 때가 50대 중반이었으니까, 제법 세월이 흘렀다. 그때만 해도 젊었고 한창 때라고들 했다. 그때는 765KV 송전탑을 단순히 전기에너지를 보내는 다른 것보다 조금 큰 철탑이라고만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원자력 발전이나 송전탑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고리 1호기가 있는 기장 고리에도 별 생각 없이 가끔 다녀왔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 자체가 확 달라졌다. 12년간 온갖 일을 다 겪고, 수많은 농성 현장에서 밤을 지새고 저들의 폭력을 겪으며 많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아래 한전)이나 국가가 국민의 알 권리를 정확하게 보장해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국민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이권만 챙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2011년초 즈음부터 한전은 본격적인 공사의 시작을 알렸고 하청업자의 공사가 개시됐다.  마을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철탑 부지 나무 베는 소리가 들리면 새벽 5시에도 현장으로 가   몸으로 공사 진행을 막았다. 현장 인부가 주민들을 약 올리고 욕설을 하고 사라지고 나면 움막에서 간단한 요기를 했다. 이후엔 그 뒤에 현장으로 출근하는 다른 인부들과 실랑이를 벌이길 반복했다. 그때 당시 하루 일과는 그랬다.

처음엔 주민 전부가 합의를 하지 않아 송전탑 반대 데모에 많은 이들이 참여해 힘도 생기고 재미도 있었다. 그러던 중 세월이 자꾸 흐르니 지치는 주민도 생기고 한전의 회유에 말리는 사람도 생겨나면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2014년 6월 11일, 그날 있었던 일 사과 않는 경찰

그렇게 싸움을 반복 하던 중, 2012년 1월 16일, 산외면 보라마을 한 노인이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분신을 한 뒤에야 공사가 얼마 동안 중단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다시 공사가 재개되고 중단되기를 반복했고 주민들과의 몸싸움도 되풀이되었다.

그러다가 2013년 12월, 상동면 고정마을 유한숙 노인이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공사는 계속되었다. 우리 평밭마을에는 지하땅굴까지 4개의 움막이 만들어졌다. 할머니들은 아래 위로 나누어서 잠을 자고 남자들은 마을 서편에 별도 컨테이너를 설치해 조별 근무를 하며 보초를 섰다.

그 후 2014년 6월 11일 새벽 행정대집행이 벌어졌다. 당시 3000명의 경찰 시청 공무원들은 벌거벗고 쇠사슬을 목에 걸고 있는 할머니들의 몸도 가려주지 않은 채 끌어내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많은 주민과 연대자들이 다쳐서 병원으로 후송 되었다. 당시 경찰들은 승리의 V자를 그리며 기념촬영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2014년 6월 11일 오후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승학산 정상에 있는 101번 송전철탑 현장의 움막농성장 철거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한 가운데, 주민들이 몸에 쇠사슬을 묶은 채 움막 안에 앉아 있다.
 2014년 6월 11일 오후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승학산 정상에 있는 101번 송전철탑 현장의 움막농성장 철거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한 가운데, 주민들이 몸에 쇠사슬을 묶은 채 움막 안에 앉아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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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지금도 주민의 인권을 유린한 이 일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한전은 각 마을을 찬성파 반대파로 이간질시키고, 결국 돈으로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송전탑 찬성-반대 주민들은 현재 서로 원수를 보는 듯하며 지내고 있다. 지나가도 만나도 서로 인사 없이 고개를 돌린다. 너무 참담하다.

그동안 한결 같이 반대를 한 150여 세대 주민들은 지금도 탈핵탈송전탑 활동에 참여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현재도 전국을 다니며 탈핵을 외치고 있다.

그나마 우리 150여 세대 주민들은 요즘 살맛이 난다. 새 정권이 들어선 뒤 탈핵 탈석탄 발전을 외치며 신재생 에너지 정책으로 나아갈 것임을 밝혀 정말 힘이 난다. 하지만 핵마피아의 검은손이 신고리 5·6호기 핵발전소 건설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어 탈핵탈송전탑을 바라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신고리 5·6기 문제의 당사자로서 걱정이 많이 된다.

내 소원은 단 하나, 깨끗한 환경 남겨주는 것

나의 소원이 있다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백지화 하고 불필요 하게 설치된 밀양+청도 송전탑 철거되는 것이다. 후손에게 살기 좋은 깨끗한 환경과 안전한 나라를 물려주고 눈을 감고 싶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 것이다. 정다웠던 이웃과도 옛날 같은 사이로 돌아가고 싶다.

나 자신이 탈핵탈송전탑 활동을 왜 해야 하는지 신념도 섰다.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 날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우리의 후손 그 다음 후손들이 누리고 살아야할 땅이다. 핵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체르노빌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서 알게 됐다. 또 지난 12년간 강행된 송전탑 공사를 몸으로 막으며 정말 '이건 아니다'는 신념이 섰다.

밀양시와 경찰이 2014년 6월 11일 오후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승학산 정상에 있는 101번 송전철탑 공사장 부지의 움막을 강제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단행한 가운데, 움막 지붕에서 농성하던 조성제 신부가 이수환 밀양경찰서장(오른쪽 서 있는 사람)의 면담을 요구하며 부르고 있다.
 밀양시와 경찰이 2014년 6월 11일 오후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승학산 정상에 있는 101번 송전철탑 공사장 부지의 움막을 강제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단행한 가운데, 움막 지붕에서 농성하던 조성제 신부가 이수환 밀양경찰서장(오른쪽 서 있는 사람)의 면담을 요구하며 부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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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짓이기고, 거짓과 폭력으로 철탑을 세우고, 마을을 분열시키고, 수만년 동안 치우지도 못할 핵쓰레기를 남기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여서도 안 되는 일이다. 거기다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너무 가까운 곳들에 밀집되어 있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주민들과 함께 <판도라>라는 영화를 봤지만, 사고가 나면 정말 딱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허가가 떨어지고 두 달 있다가 경주에 큰 지진이 나지 않았나. 이렇게 위험한 짓을 왜 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신고리 5·6호기를 계속 짓자고 470여명의 교수님들이 성명서를 낸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그 분들께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다. 만약 신고리 5·6호기 핵발전소가 교수님 여러분들 집 앞에 들어선다고 생각 하면 어떻게 하실 건지 묻고 싶다. 핵발전소 공사를 강행하라 할 수 있을까. 안전하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설마'를 생각해 보라.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고는 공사를 잘 못해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지 않은가.

에너지 정책을 신재생 중심으로 바꾸어 나가자는 문재인 정부의 방향은 옳다. 우리가 그동안 목이 아프게 외쳤던 이야기다. 자기 지역에서 필요한 전기는 그 지역 인근에 필요한 양의 크기로 신재생 에너지 시설을 세워 조달하면 된다. 그리고 송전선로를 지하로 매설하면 전국 각지에 있는 핵발전소 송전탑 없앨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연환경 훼손 없는 깨끗한 환경을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지 않겠는가.

공론화위와 시민배심원단에 드리는 당부

우리 밀양 같은 시골 사람들 충분히 고통을 겪었다. 많은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나 작은 시골 마을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똑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사회적 공론화 위원들, 시민배심원단 여러분들께 밀양 주민들을 대표해서 간절히 호소하고 싶다. 남의 일이 아니다. 나 자신과 내 가족 내 손주, 나아가 세세연년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사명감과 역사에 길이 남을 선택을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핵마피아의 유혹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하고 깨끗한 선택을 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우리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주민입니다.



태그:#밀양송전탑, #신고리5,6호기, #원자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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