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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외교부가 지난 12일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비판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전면 이행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 캄보디아 외교부 본관 전경 캄보디아 외교부가 지난 12일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비판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전면 이행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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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전통 우방인 캄보디아가 "북한의 6차 핵실험을 비판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전면 이행을 촉구했다"고 지난 13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국내방송과 신문들도 앞다퉈 이 소식을 인용 보도했다.

캄보디아 외교부가 지난 12일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 따르면, "지난 3일 북한이 실시한 핵실험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 북한이 저지른 6차 핵실험은 반복적인 안보리 결의 위반사항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됨은 물론 한반도 긴장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관련 안보리 결의와 국제적 의무를 전면 이행하고 모든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것을 북한에 촉구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캄보디아의 대북성명, 의도는 따로 있다

국내 언론들은 캄보디아 정부의 이 같은 성명 내용을 전하며, 대북 비판 여론 확산으로 동남아시아에서도 북한의 외교적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캄보디아 정부가 자국 주재 북한대사 등 북한인사들과 면담할 때, 안보리 결의 존중과 6자 회담 복귀 등을 요구한 적은 있지만, 성명까지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최근 북한의 잇따른 핵과 미사일 실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풀이된다"는 그럴듯한 해석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의 분석대로 과연 캄보디아 정부가 전통 우방으로 손꼽는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하거나, 일방적인 선을 그으려는 행보로 볼 수 있는지는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번 외교부 성명이 나오게 된 배경 역시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우리 정부 측은 아세안국가들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발사에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아세안회원국 10개국 중 유일하게 캄보디아가 반대하고 나섰다. 아세안공동성명서는 회원국 중 단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채택될 수 없다.

당시 캄보디아 프락 소쿤 외교부장관은 "북한에 대한 아세안의 입장이 지나치게 강경화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드러냈다. 결국, 5일 채택하려던 공동성명이 우여곡절 끝에 다음날인 6일로 연기됐다. 성명의 문구수정 등 강도와 수위를 낮추는 조건으로 간신히 합의를 이뤄 성명서가 마지막 날 발표될 수 있었다.

지난 8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캄보디아 프락 소쿤 외교부장관은 “북한에 대한 아세안의 입장이 지나치게 강경화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했다.
▲ 연설중인 프락 소콘 캄보디아 외교부장관 지난 8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캄보디아 프락 소쿤 외교부장관은 “북한에 대한 아세안의 입장이 지나치게 강경화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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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해서 나온 공동성명서는 "북한 핵실험을 개탄하며 엄중한 우려를 표명, 북한에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하고 협상 테이블에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으로 대략 정리됐다. 캄보디아의 반대로 성명서의 수위가 낮아졌다는 사실은 국내언론 보도뿐만 아니라, 익명을 요구한 현지 외교부 관료의 말을 통해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당시 캄보디아정부가 우리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면서까지 굳이 대북공동성명 내용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은 전통 우방인 북한을 의식한 행보라기 보다는 중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캄보디아는 이미 알려진 것과 같이 대표적인 친중국가로 최근 중국의 투자와 원조가 늘면서 부쩍 가까워진 관계다. 북한제재에 대한 미국과 서방세계의 강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만큼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는 점에서 중국이 공동성명내용과 수위를 둘러싸고, 캄보디아 정부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 새로 나온 캄보디아 정부의 대북성명이 갖은 숨은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현지 전문가들은  "캄보디아 정부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유엔과 공조하겠다는 순수한 의지의 표명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우리 정부를 의식해 내놓은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 1997년 우리나라와 정식 재수교를 맺은 이래 훈센 정부는 북한을 적당히 배제한 채 우리 정부를 지지해주는 모양새를 취해왔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우리나라는 한때 캄보디아 투자국 순위 1위에 오를 만큼 막대한 규모의 경제적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는 가난한 주변국가를 돕는다는 순수한 목적 말고도 전통 우방으로 알려진 북한과의 관계를 떼어놓으려는 우리의 외교 전략도 함께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 같은 전략이 캄보디아 측에 너무 쉽게 들키고 말았다. 32년째 장기집권중인 훈센 총리는 부자인 남한으로부터 돈을 얻기에 북한이 굉장히 좋은 카드라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말았다. 훈센 총리는 그동안 우리나라를 5~6차례가 넘게 국빈 방문할 때마다 북한카드를 슬쩍 보이며, "제발 도와 달라"고 손을 벌렸다.

이에 우리 정부는 형평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이주근로자들의 쿼터를 두 배 이상 늘려주고, 차관 규모도 대폭 늘려주었다. 숨은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우리 정부는 돈으로 환심을 사 캄보디아를 달래서 어떻게든 북한과 떼어놓고 싶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를바 없다.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대북 경제제재조치에 대해서만큼은 침묵을 지키거나 은근히 반대해 왔던 캄보디아 정부가, 이번에 뜬금없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발사 반대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놓은 데도 나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을 수 있다고 현지전문가들은 말한다.

'알맹이'가 빠져있고 구호만 난무

지난해 12월 주캄보디아 대사관 신축 개관식에 참석해 축사중인 프락 소콘 캄보디아 외교부장관의 모습
 지난해 12월 주캄보디아 대사관 신축 개관식에 참석해 축사중인 프락 소콘 캄보디아 외교부장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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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센 정부가 그동안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준 남한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해 속으로 켕기던 차에 성명서 한 장로 대충 때우려는 얄팍한 술수일 수도 있고, 우리 정부가 투자나 차관 등 거래조건을 내세워 물밑작업을 통해 대북성명을 권고하는 메시지를 전달했을 수도 있다.

때 마침 외교부성명이 발표되기 일주일 전인 지난 5일, 우리 정부는 수출입은행을 통해 캄보디아 정부에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으로 1200만 달러를 지원하는 차관공여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캄보디아 정부 성명을 유심히 살펴보면, 실질적으로 이 나라 정부가 북한에 어떠한 경제적 제재조치를 취하겠다는 구체적 실천 강령이 단 한 줄도 들어 있지 않다. 북한에 대해 "핵안보리 결의와 국제적 의무를 전면 이행하고 모든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는 구호성 문구 말고는 알맹이가 빠져있다.

또 다른 친북국가인 베트남 외교부가 지난 6일 북한 핵실험을 "심각한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보고 북한에게 안보리 결의 준수와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한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미국 정부와 관계가 조금씩 개선중인 필리핀 정부가 최근 대북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북한과의 경제단절을 선언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캄보디아와 북한 양국은 과거 시하누크국왕 재임시절부터 스스로를 '형제국가'라 부를 만큼 오랜기간 친분을 맺어온 사이다. 비록 훈센정부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 경제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정책을 펴는 바람에 우리와의 관계가 급진전을 이뤘지만, 북한과 완전히 연을 끊은 것은 아니다. 그럴 이유도 없다. 캄보디아 입장에서 '북한카드'는 남한을 상대로 돈을 얻어낼 때 만큼은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내년 7월 총선을 의식한 훈센 총리의 신문사 폐쇄 등 언론탄압과 제1야당 총재구속사태(관련 기사 : 2017년 9월 3일자 한밤중 제1야당 총재 긴급체포, 캄보디아의 혼미정국)에 중국을 제외한, 다른 서방선진국들이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원조중단 등 제재방안을 검토중이란 소문도 들린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과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돌팔매를 맞을 때 우리 정부가 침묵을 지키니 이 나라 입장에선 고마운 일일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순전히 우리만의 착각이다. 침묵이 반복되다 보니, 요즘은 오히려 당연하게 여길 정도다. 그래서 "열심히 퍼주면서 정작 인권, 정치문제에 대해선 한마디 끽소리도 못한다"는 자조섞인 목소리마저 흘러나온다.

캄보디아는 말로만 떠들 뿐, 정권이 바뀌더라도 가뜩이나 인권문제로 사이가 나쁜 유엔의 안보리 결의를 실천할 의지가 눈곱만치도 없을뿐더러, 향후 북한에 대해 어떠한 경제제재 조치도 취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외교부 책임자들은 경제지원과 투자교역확대를 통해 캄보디아 내 외교적 영향력을 키워왔다고 홍보하기 여념이 없다.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최근 캄보디아와 중국이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해외차관의 1/3이상이 중국이 차지해 버리는 바람에 캄보디아 내에서 우리 외교적 입지와 영향력이 이전보다도 훨씬 낮아진 상태다. 중국보다 더 큰 돈보따리를 풀지 않은 이상 북한을 떼어놓으려는 정부의 외교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캄보디아의 '대북성명', 호들갑이다

중국 원조로 지어진 다리공사 완공식에 참석한 훈센총리. 그뒤로 중국대사가 보인다
 중국 원조로 지어진 다리공사 완공식에 참석한 훈센총리. 그뒤로 중국대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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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성명을 두고도 캄보디아 정부가 이 정도 입장을 내놓은 것만도 진일보한 선택이며, 우리 정부가 거둔 '외교적 성과'라고 자화자찬하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동안 쌓은 외교적 노력의 성과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스스로 인정하고 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국내 우리 언론들마저 이 점을 간과하거나 무시했다.

따라서, 캄보디아 정부가 내놓은 성명서 한 장을 두고 오랜 전통 우방과 단절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며, 상황을 과장 해석할 필요는 없다. 실질적인 대북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한 대북성명은 단순히 휴짓조각에 지나지 않다.

그렇다고, 캄보디아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거나, 분해할 필요까지는 없다. 실리를 따라 움직이는 게 국제사회의 냉혹한 기본 룰이자, 현실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순진한 우리가 아니지 않던가.

양국간 교역 규모는 남한과 비교도 안될 만큼 미미하고, 남북간의 긴장속에 한국관광객들이 줄어 북한식당수가 줄고 폐업위기마저 놓인 건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여전히 양국은 과거 친분과 인맥을 통해 교류를 이어지고 있다.

양국관계가 남한에 가로막히자, 최근 들어서는 국제사회의 눈치를 안 봐도 되는 스포츠 교류 쪽으로 방향을 튼 모습이다. 이를 입증하듯, 현재 캄보디아 프로축구리그에는 북한 선수 4명이 뛰고 있다. 그중에는 '북한의 호나우두'로 불리던 최명호 선수도 포함되어 있다. 때마침 북한체육당국이 축구선수들에 이어 자국의 여자레슬링 감독을 조만간 캄보디아에 코치로 파견할 예정이란 익명의 제보도 들어온 상태다.  

현재 캄보디아 국가대표 레슬링은 한국인 감독이 맡고 있다. 두 명의 남북한 감독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 함께 선수들을 가르칠 수도 있고, 둘 중 하나가 밀려날 수도 있다. 캄보디아 정부가 스포츠영역에서도 '북한카드'를 꺼내 들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저버릴 수가 없다. 진짜 '전가의 보도'다.

사진은 캄보디아 프로축구팀의 모습. 이 선수들중 4명이 북한출신선수들이다. 북한의 호나우두로 불리던 전 북한국가대표출신 선수도 이 팀에서 뛰고 있다.
▲ 스포츠 교류로 캄보디아와 외교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캄보디아 사진은 캄보디아 프로축구팀의 모습. 이 선수들중 4명이 북한출신선수들이다. 북한의 호나우두로 불리던 전 북한국가대표출신 선수도 이 팀에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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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캄보디아, #캄보디아 외교부장관, #프락 소콘 장관, #훈센총리,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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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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