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유나이티드 새내기 김보섭의 전진 패스 ⓒ 심재철
VAR(비디오 판독 심판) 판정을 기다리는 이기형 감독도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화창한 일요일 낮 숭의 아레나를 찾아온 6298명 관중들도 숨죽여 기다렸다. 곧이어 김우성 주심이 휘슬을 길게 불며 중앙원 쪽을 가리켰다. 기다렸던 관중들의 2차 함성이 터져나왔다. 인천 유나이티드 특산품 '시우 타임'이 또 한 번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이기형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17일 오후 3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2017 K리그 클래식 29라운드 FC 서울과의 홈 경기에서 종료 직전에 터진 송시우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다시 10위 자리에 올랐다.
"세 번 모두 질 수 없다!"어웨이 팀 FC 서울 팬들은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을 향해 강등당할 것이라고 놀렸다. 최근 경기 기록만 놓고 봐도 그런 놀림을 받을 만했다. 4월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시즌 첫 대결에서 FC 서울이 3-0으로 완승을 거뒀고, 7월 19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두 번째 대결에서도 FC 서울이 5-1 대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두 경기에서 8골을 내주는 동안 데얀 다미아노비치의 해트트릭도 나왔다. 2007년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K리그에 데뷔한 데얀은 이 두 경기를 통해 모두 5골을 넣으며 친정 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번에도 데얀은 FC 서울의 공격 라인 맨 앞에 섰다.
하지만 인천 유나이티드가 이대로 주저앉을 팀이 아니었다. FC 서울이 아무리 강팀이라지만 내리 세 번 패한다는 것은 팬들이 놀린 말처럼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살림꾼 미드필더 한석종이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했기에 더 이를 악물고 뛰어야 했다. 미드필더 김도혁과 센터백 부노자가 오랜만에 스타팅 멤버로 나와서 한석종의 빈 자리를 그나마 채워줄 수 있었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 양상에서 승부의 갈림길은 역시 역습 순간이었다. 21분만에 FC 서울이 절호의 선취골 기회를 잡았다. 역습의 키를 특급 미드필더 하대성이 잡았다. 그는 뒷걸음질만 치고 있는 인천 선수들의 빈틈을 제대로 노려 오른발 중거리슛을 날렸다.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이진형이 몸을 날려 그 공을 쳐냈지만 거기는 윤일록 자리였다. 하지만 윤일록은 빈 골문이나 다름없는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결과를 놓고 봐도 이 순간이 승부의 첫 번째 갈림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88분, 인천 유나이티드 송시우가 결승골을 터뜨리는 순간 ⓒ 심재철
'시우 타임'의 과학양보 없는 경기 흐름은 후반전 중반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여기서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기형 감독은 중대 결단을 내렸다. 78분에 날개 공격수 김진야를 빼고 송시우를 들여보낸 것이다. 4월 9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어웨이 경기 이후 두 번째로 선발 출전했던 김진야의 얼굴에서 4분 전에 김보섭의 결정적인 패스를 받아 왼발 슛을 성공시키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송시우가 또 한 번 큰 일을 저질렀다. 10분만에 이기형 감독과 인천 팬들의 믿음에 보답한 것이다. 왼쪽 측면에서 이루어진 인천 유나이티드의 역습 패스가 빛난 것이다. '김보섭-김대중-김도혁-김대중-송시우'로 이어진 패스 줄기가 아름다웠다. 그리고 송시우의 왼발 인사이드 슛이 골키퍼 양한빈을 피해 절묘하게 굴러들어갔다.
김대중의 마지막 패스 순간 송시우와 FC 서울 수비수 오스마르의 발끝이 오프 사이드 라인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겹쳤기 때문에 비디오 판독까지 이어졌지만 송시우의 득점이 최종 확인된 것이다.
송시우는 열광하는 인천 팬들 앞으로 달려가 자신의 손목과 전광판 시간을 번갈아 가리키며 '시우 타임'을 멋지게 자랑했다. 정말로 그것이 과학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것이다.
지난 해 데뷔한 송시우는 프로 무대 첫 득점부터 극장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2016년 4월 13일 전주성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0-1로 패색이 짙던 팀을 90+1분 동점골로 구한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수원 블루윙즈를 상대로 90+6분에 또 하나의 1-1 동점골을 터뜨렸다.
송시우는 지금까지 10득점(2016년 5골, 2017년 현재 5골) 기록을 남겼는데 스타팅 멤버로 나와 골을 터뜨린 경우는 2017년 4월 1일 수원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 70분 득점이 유일하다. 정확히 나머지 9골을 모두 후반전 교체 선수로 나와서 터뜨린 것이다. 이 정도면 '시우 타임'은 과학이라 불릴 만하다.
축구장 마의 시간대라 불리는 85분 이후에 터진 송시우의 골이 10골 중 6골이다. 10골이 터진 시간대를 계산해봐도 평균 80.1분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어쩌면 그가 체력이 더 좋아져서 선발 멤버로 쓰고 싶어도 일부러 벤치에 대기시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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