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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시내의 건물. 노란 벽에 붉은 지붕은 관공서의 상징이라고 한다.
 하노이 시내의 건물. 노란 벽에 붉은 지붕은 관공서의 상징이라고 한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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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다시 하노이로 복귀하는 날이다. 저녁에 하노이 공항에서 귀국 행 비행기를 타는 날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호텔을 나서 하노이로 올라가는 길. 이날도 어김없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ABC(아베쎄) 휴게소에 들렀다. 그것도 무려 한 시간씩이나. 

휴게소까지 가는 내내 가이드는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불행한 과거사를 한 시간 가까이 늘어놓았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유려하게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마치 신앙 간증 같기도 했다. 똑같은 레퍼토리를 수백 번도 넘게 연습한 것처럼 들렸다. 장시간에 걸친 이야기의 끝은 이번 휴게소에서 파는 키플링 가방과 노니 비누, 참깨, 게르마늄 팔찌 등에 대한 상세한 소개로 마무리되었다.

그의 애잔한 인간사에 마음이 흔들린 사람들은 휴게소에서 제법 지갑들을 열었다. 휴게소에서 파는 물건 값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약간 저렴한 정도였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그 값에 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보였다. 현지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를 모른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키플링 가방은 하노이 시내의 쇼핑센터보다 다섯 배 비싼 것이었고 참깨 역시 마찬가지였다. 휴게소에서 1kg에 17달러라던 참깨를 우리는 하노이의 슈퍼마켓에서 약 4분의 1 값인 10만동(우리 돈 약 5천원)에 구매했다.

휴게소 다음은 노니 판매점이었다. 역시 한국인 사장이 나와서 한 시간 동안 노니의 효능에 대한 강의를 해댔다. 한 통에 500불짜리를 무려 200불에 주겠다는 말에 여러 사람이 또 노니 가루를 구입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베트남 현지보다 약 스무 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다. 인터넷 검색만 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베트남 현지보다 스무 배 비싼 노니

점심은 쌀국수였지만 역시 한국인이 운영하는 패키지 여행팀 전문 식당이었다. 생각해보면 2~30명 이상의 단체가 기다리지 않고 신속히 식사를 하고 나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들어가면 테이블에는 이미 기본 반찬들이 세팅되어 있고, 자리에 앉자마자 줄줄이 음식이 나왔다.

메뉴 선택권 같은 것은 물론 없다. 그래도 음식의 질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한국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 베트남 음식을 먹어도 한국 음식 같은 맛이 나는 것이 단점이었다. 향이 강한 고수나 라임 같은 토핑은 아예 없고, 한국 사람이 먹기 편한 양상추 같은 채소만 곁들여 나왔다. 매 끼니 밥이나 김치, 찌개 등 한국 음식도 꼭 따라 나왔다.

바딘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 저 멀리 호치민의 시신을 안치한 호치민 묘소가 보인다.
 바딘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 저 멀리 호치민의 시신을 안치한 호치민 묘소가 보인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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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 벨트 위 물건들처럼 줄줄이 앉아서 점심을 마치고, 하노이에 도착했다. 드디어 이날의 관광 일정 시작. 호치민이 독립선언을 한 것으로 유명한 바딘광장과 호치민 묘, 호치민이 근무했던 주석궁과 천년 고찰인 일주사 등을 둘러보았다. 마침 소나기가 쏟아져 가이드가 사다 준 파란 일회용 비옷을 입고 경내를 걸었다. 기념품으로 받은 베트남 전통모자 농까지 머리에 쓰니 우산이 필요 없었다.

관광 후 일정은 또 다시 한국인이 운영하는 라텍스 숍. 가이드가 무려 47%라는 할인율을 보장하기에 7.5센티 두께 퀸 사이즈 매트의 가격을 물어보았다. 매장 직원은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백만 원이라고 답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도 이미 가격은 정해져 있었으리라. 나는 똑같은 것을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20만 원에 샀는데.

베트남 국보 1호 일주사(한기둥사원). 1049년 리 왕조의 창건자인 리따이똥( Ly Thai Tong)왕이 세웠다고 한다.
 베트남 국보 1호 일주사(한기둥사원). 1049년 리 왕조의 창건자인 리따이똥( Ly Thai Tong)왕이 세웠다고 한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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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지막 쇼핑센터까지 빈손으로 나오고 나니 가이드 보기가 민망했다. 저녁 식당으로 가는 버스 안에는 어색한 침묵만 맴돌았다. 저녁은 선택 관광에 포함된 센(Sen) 레스토랑에서 뷔페식으로 먹었다. 센(sen)은 베트남어로 연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과연 식당 이곳저곳에 연꽃이 핀 연못들이 있었다.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분수가 밤의 정취를 더해주었다. 

식사 후 일정은 씨클로 타기+야간 시티투어. 하지만 이는 잘 진행되지 않았다. 이날 하루 종일 하노이에 내린 비는 밤이 되자 거의 폭우로 변했다. 그래도 우리는 씨클로를 타야만 했다. 왜냐? 선택 관광 명목으로 여기에 50불을 지불했으니까. 이걸 하지 않으면 가이드는 돈을 환불해 주어야만 하니까. 

폭우가 내려도 씨클로는 타야 한다, 돈을 냈으니까 

자전거 앞에 달린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의자 위에 비닐을 둘러치고 우리는 씨클로에 올랐다. 두 사람이 함께 타자 허리가 아플 정도로 자리가 비좁았다. 비닐 포장 사이로 비가 새어 들어와 금세 발이 젖었다.

스물두 명을 태운 씨클로 행렬이 비를 쫄딱 맞으며 느릿느릿 거리로 나섰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가던 베트남 아주머니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 꼴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지막 날 저녁식사를 한 센 레스토랑의 연못이 있는 정원.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만오천원~이만원)에 괜찮은 부페식을 즐길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저녁식사를 한 센 레스토랑의 연못이 있는 정원.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만오천원~이만원)에 괜찮은 부페식을 즐길 수 있었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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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가 우리를 이끌고 진행하겠다던 야간 시티투어는 시간관계상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다. 비 때문에 도로가 막혀서 이미 일정이 많이 지체된 상태였다. 선택 관광비는 환불해주지 않았다. 씨클로 투어의 종착지인 성요셉성당 앞 콩카페(Cong Caphe)에서 유명하다는 코코넛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자정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그래도 우리 팀을 담당했던 가이드는 끝까지 자신의 업무에 성실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오자 버스를 대기 힘든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카페 앞까지 버스를 불러왔고, 공항 앞에서도 노인 분들의 짐을 일일이 챙겨주었다.

하롱베이의 유람선 안에서는 9월에 생일을 맞은 사람들을 위해 케이크를 준비해 촛불을 붙이고 선물까지 전달했다. 그의 과도한 친절 하나하나가 선택 관광과 물건 구매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받으면서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폭우 때문에 비행기 시간이 연기되지 않을까 마음 졸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비행기는 제 시간에 출발했다. 좌석에 앉아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사흘간의 강행군에서 오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였다.

하노이 성요셉성당 앞 콩 카페(Cong Caphe)의 명물 코코넛 커피. 연유 대신 코코넛 밀크 슬러시를 듬뿍 넣어 아이스크림처럼 달고 시원했다.
 하노이 성요셉성당 앞 콩 카페(Cong Caphe)의 명물 코코넛 커피. 연유 대신 코코넛 밀크 슬러시를 듬뿍 넣어 아이스크림처럼 달고 시원했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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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트남여행, #하노이, #씨클로, #센레스토랑, #바딘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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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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