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 민족의 명절인 추석입니다. 예로부터 추석 명절에는 멀리 떨어져 살던 자식들이 햇쌀로 밥을 짓고 옹기종기 맛있는 음식들을 차려 먼저 조상님들 묘소를 찾아 뵙고 부모님과 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이 풍습은 북녘과 남녘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의 고유한 전통이지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릅니다. 고향을 떠난 지 7년. 혈육 한 점 없는 이곳 남녘땅에서 먼 북녘 하늘만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가족을 애타게 그리는, 제게는 유달리 아픈 추억과 간절한 그리움만 넘치는, 쓸쓸하고 외로운 명절이랍니다.

이번에는 존경하는 부모님과 따뜻한 남편, 사랑하는 딸과 함께 아름다운 내일을 꿈꾸며 단란한 행복을 누리던 옛 추억의 바다에 풍덩 빠져보기로 했습니다. 추억으로 지금을 위로하면서 즐겁게 보내기로 마음 먹었죠.

그런데 참 야속하게도 남녘의 추석 연휴는 10일이라고 하니... 너무나 긴 시간이라 저로써는 지루하고 또 지루할 것 같기도 합니다.

대체휴일·임시휴일이 흔치 않은 북녘

지난 2013년 추석 연휴 당시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촬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노란 들판의 모습.
 지난 2013년 추석 연휴 당시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촬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노란 들판의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세세하게 따져 보면 남녘의 명절 문화는 북녘의 그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것 같습니다.

북녘에도 많은 명절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남녘처럼 10일을 휴식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명절이 주말과 겹치면 최대 4일 정도 쉴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2~3일 명절 휴식을 하게 됩니다. 북녘에는 남녘처럼 대체휴일 같은 것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음력설이 주말과 겹칠 때는 하루 대체휴일이 생기지만, 단오나 추석은 그렇지 않았어요. 당 창건일 등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 대체휴일이 나오곤 했고요.

북녘에서 가장 크게 치르는 명절은 단연 음력설(음력 1월 1일)입니다. 그리고 단오와 추석도 쇱니다. 이럴 때면 광장, 공원마다 줄당기기, 그네뛰기, 윷놀이와 장기 같은 민속놀이가 벌어집니다. 추석 때는 '대황소상 민족씨름경기'가 열립니다. 이 씨름경기는 조선중앙TV로 생중계 되는데, 이 씨름경기 방송을 보면서 가족들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젊은 사람들은 이런 경기 방송에 별로 흥미가 없다는 점은 북이나 남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결혼 전, 추석 저녁에 밤하늘의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꼭 우리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어본 적도 있답니다.

저의 집도 추석날이면 햇쌀밥과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만들어, 아침에 대성구역에 있는 할머니 묘소를 찾아가곤 했습니다. 먼저 아버지와 남동생이 벌초를 하면 묘비 앞 상돌 위에 준비해 온 밥과 물 한 그릇, 떡, 돼지고리 료리, 생선찜, 부침개, 녹두전, 고사리채, 콩나물, 밤, 대추, 두부, 닭알, 과일 등을 차려 놨습니다. 그런 다음 술을 붓고 묵례를 했습니다. 그리고 물그릇에 밥 한 숫가락과 반찬 등을 골고루 조금씩 담아뒀다가 성묘가 끝나면 아버지께서 묘 주변 땅 속에 묻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온 가족이 묘 주위에 둘러앉아 제사상에 올렸던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한 끼에 밥상·술상을 세 번씩이나... 왜냐면

평양시내의 한 아파트의 모습.
 평양시내의 한 아파트의 모습.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제게 '시집'이 생기고, 우리집에 올케가 들어오니 명절이 마냥 좋기만 한 게 아니더군요. 불편한 점도 생겼습니다.

명절날에는 아침에 남편, 딸과 함께 시집에 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형님과 함께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함께 명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명절날 아침부터 시부모님께 인사하러 찾아오는 아파트 이웃들과 손님들 때문에 술상과 음식을 차려주느라 정신이 없었답니다.

북녘에서는 명절에 친척보다 연로하신 아파트 이웃들이 왕래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각자의 시집이나 본가에 방문하곤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 끼에 밥상, 술상을 세 번이나 차린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어요.

시누이와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북녘에는 '시누이 한 명이 벼룩 닷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누이 한 명이 피를 빨아먹는 벼룩 다섯 되 만큼 곤란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시누이가 셋이었는데 참 힘들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시부모님이 제게 어떤 선물을 주는지 시누이들이 살피면서 눈치를 준 적도 있었지요.

이제야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

남한의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탈북동포 김련희씨의 딸 련금양과 김련희씨 남편. 사진은 2015년 10월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가 평양에 거주 중인 김련희씨 가족을 인터뷰할 당시 모습.
 남한의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탈북동포 김련희씨의 딸 련금양과 김련희씨 남편. 사진은 2015년 10월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가 평양에 거주 중인 김련희씨 가족을 인터뷰할 당시 모습.
ⓒ 신은미

관련사진보기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고 오후가 되면, 저희는 본가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저희가 본가에 갈 때면 시부모님은 "사돈 가져다 드리라"면서 선물을 주곤 했습니다. 이것이 북녘의 일반적인 명절 문화입니다.

선물은 고기 세트나 과일 혹은 떡 등입니다. 북녘에서는 소고기가 귀해 돼지고기나 오리고기(2~3마리)를 선물로 주곤 했습니다. 떡은 시장 같은 곳에서 사오는 떡이 아니라 집에서 직접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선물을 받아 안고 본가로 가면, 그때는 시집살이에서 벗어나 엄마의 품에서 응석을 부릴 수 있는 꿀 같은 시간이랍니다. 시부모님, 시누이 눈치 보지 않고 맛있는 료리를 해 먹고, 온 가족이 모여 즐겁게 놀았습니다. 윷놀이나 카드놀이 같은 걸 하면서 진 사람이 저녁 설거지 하기 등을 내기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명절이 하루라면 올케는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곤 했습니다. 그러면 온 가족인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 모두 함께 대동강 유보도나 모란봉에 갔습니다. 그곳에 가 준비해 온 송편 등 여러 가지 음식들을 펼쳐 놓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하루를 즐기고 돌아오곤 했죠.

가족과 함께 부대끼고 웃고 떠들던 일상생활과 힘들고 지쳤던 시집살이, 시누이와의 갈등도 지나고 보면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고 행복입니다. 가족과 함께한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태그:#추석, #북한, #아파트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