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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생 전쟁둥이인 이입분(68)씨는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 '에비앙' 생수까지 모두 맛본 세대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현대생활사를 물건으로 되짚어 보려 한다. 이입분씨는 내 엄마다. - 기자 말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차가운 계절이 다가오는 것이 마냥 좋을 리 없건만 그래도 반갑다. 여름 내내 입었던 갑갑한 옷 한 가지를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브래지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차가운 계절이 다가오는 것이 마냥 좋을 리 없건만 그래도 반갑다. 여름 내내 입었던 갑갑한 옷 한 가지를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브래지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차가운 계절이 다가오는 것이 마냥 좋을 리 없건만 그래도 반갑다. 여름 내내 입었던 갑갑한 옷 한 가지를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브래지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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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브래지어를 해 보곤 깜짝 놀랐다. '이렇게 답답한 걸 어떻게 하고 있지?' 당장 벗어던졌다. 하지만 얼마 후 담임선생님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브래지어 미착용자 색출'에 걸린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것을 다시 집어 들었다. 불편한 인생이 시작됐다.

브래지어를 하면 소화가 잘 안 됐다. 어깨도 뻐근하고 숨도 제대로 쉬어지는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붙들려 있는 듯,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솟구쳤다. 외출했다가 집에 오면 손도 씻기 전에 브래지어부터 풀어 놓는 게 일상이 됐다.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심해지고 안 하던 멀미도 했다. 몸이 편치 않으니 일하는 데 집중도 안 됐다. 정말 안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가슴만 쳐다볼 것 같았다.

방법을 찾다 보니 나름대로 대안이 있었다. 반창고를 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게 여간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반창고의 비닐 부분이 까끌까끌하게 거슬렸다.

반창고는 탈락! 돌출된 부분에만 붙이는 동그란 실리콘 패치 상품도 나와 있었다. 그래 이거야! 반가운 마음에 사서 붙여 보았다. 며칠 편한가 싶더니 통풍이 되지 않아 습진이 생겼다. 아쉽지만 이것도 탈락!

결국 안쪽에 패드가 붙은 메리야스를 비싼 값에 샀다. 이마저 한여름 메리야스 입기도 더울 땐 브래지어를 하는 수밖에 없다. 대신 와이어가 없는 것을 입는다.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두꺼운 옷을 여러 겹 입는 겨울이 되면 브래지어를 안 해도 티가 나지 않았다. 반창고도, 둥근 패치도, 패드가 붙은 메리야스도 없이 두꺼운 점퍼로 몸을 둘러싸고 첫 외출을 한 날, 시원하고 통쾌하고 자유롭고…. 아무튼 무지 좋았다.

겨울이 오면 그래서 좋고, 따뜻한 봄이 오면 그래서 아쉽다. 아니, 가슴 달고 태어난 게 죄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거지. 대체 브래지어는 언제부터 한 걸까. 한국전쟁 때도 여자들은 이걸 하고 피란길에 올랐을까?

손수 만든 '브라자'가 아궁이 속에서 '활활'

어느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렸을 때도 브래지어를 했는지.

"스무 살(1970년) 때인가? 친구들이 브라자를 하기 시작하더라고.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고 싶었지. 근데 돈도 돈이지만 그런 걸 살 줄을 몰랐어.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나 치장할 물건을 돈 주고 살 순 없었지. 비쌌거든.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유행처럼 생각했으니까."

멋쟁이였던 엄마는 어느 날 낡은 옷을 오리고 실로 꿰매 뒤로 묶는 방식의 '수제 브라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친구랑 둘이서 정말 그럴 듯하게 만들었어. 파는 것보다 훨씬 예쁘더라고. 그런데 너희 외할머니가 보시더니 '이년들이 미쳤구나!' 하고 화를 내면서 글쎄 아궁이에 던져버린 거야. 홀랑 타고 있는 걸 보는데 너무 황당했지."

엄마는 "그래도 외할머니를 원망하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나이 칠십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날의 아쉬웠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스물다섯 살에 결혼했을 때도 브래지어를 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너네 낳고 나서 밖에 다닐 일이 많을 때부터 한 것 같아. 다들 하니까 한 거지, 왜 해야 하는지 생각 안 해 봤어."

선거 때 등장한 브래지어 3500개?

브래지어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산된 것은 1954년이다. 국내 최초 란제리 회사인 신영에서 '비너스'를 만들고 7년 뒤 남영에서 '비비안'을 출시했다.

브래지어는 1950년대 대도시에서 판매하기 시작해 서서히 전국으로 퍼졌다. 1960년대부터 신문에는 브래지어 관련 기사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우선 미용 또는 건강 관련 내용이 많았다.

"가슴도 탄력성 고무로 만든 브라자로 조른다. 그러면 움직일 때마다 기름덩이와 붕괴직염 덩이가 근육과 막 사이에 모이며 이로 인하여 땀이 많이 나면 여러 가지 독소가 제거된다"(1961년 5월 31일 <경향신문>)

"코르셋, 브라자 등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는 데 도움을 준다"(1962년 8월 6일 <경향신문>), "가슴의 융기를 지탱하는 인대는 브래지어로 받쳐주지 않으면 늘어진다"(1972년 2월 3일 <매일경제>)는 등, 브래지어가 미용과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다.

대부분 근거 없는 이야기다. 오히려 브래지어가 가슴 처짐을 가속할 뿐만 아니라 금속 와이어가 림프액의 흐름을 막아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이후 발표됐다. 하지만 지금도 꽤 많은 이들이 브래지어가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근원이 바로 옛 신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브래지어는 사건 사고에도 많이 등장한다. 1968년 베트남에서 총에 맞은 한 여성이 브래지어의 솜에 총알이 박히는 바람에 목숨을 구한 일이 해외 토픽에 실렸다. 해외에서 국내로 입국할 때 브래지어 안에 반입이 금지된 금괴·다이아·권총 등을 숨겨 들여온 사건도 꽤나 많이 발생했다.

1970년 5월 12일 <동아일보>에는 '영국 여자육상협회에서 여자육상선수들이 경기 시 브라자 착용을 금지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올랐다.

이유가 특이하다. 가슴이 큰 여성들이 두툼한 브래지어를 착용해 결승점 테이프를 먼저 가슴으로 끊어 많은 득을 보았다는 것이다. 두툼한 브래지어를 착용하면 달릴 때 불편해서 오히려 성적이 좋지 않을 수 있는데. 누구의 결정인지, 참 별일이 다 있었다.

1971년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 때 일화가 눈에 띈다.

"경남 H군에서는 모당 측이 브라자 삼천오백 개를 부산에서 주문해와 농촌의 이십대 여성 유권자와 가정주부들에게 뿌릴 계획을 짜고 있다. 이 <브라자 선물작전>이 여성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것에 당황한 상대 당 측은 대책을 세우기에 고심"(1971년 5월 20일 <동아일보>)

당시는 선거 때 온갖 선물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선거 사상 브래지어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란다.

'꼴불견 여성론'이라고? 과거 기사 살펴보니...

사실 브래지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신문의 연재소설이었다. 어찌나 브래지어를 벗겨대고 이를 관찰하는지, 옛 신문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여성과 여성의 몸을 대하는 당시(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사회상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했다. 일반 기사에서도 여성의 옷차림이나 행색을 질타하고 훈계하는 내용이 제법 많았다.

"부라자 끈이 겉으로 나와 걸음 걸을 때마다 밀어 넣든가 또는 팔로 흘러내려 꼴이 볼일 못 보는 여인의 모습을 흔히 보게 되는 여름철인 만큼 심한 데자인(디자인)일 때는 스트랍레스의 부라자나 슬립을 입거나 그렇지 않을 때는 속치마 끈을 잘 처리할 것이다."(1960년 6월 14일 <경향신문>)

"오늘은 조영남이 <꼴불견 여성론>을 편다. 스타킹이 밑으로 내려온 여자, 브라자 끈이 보이는 여자, 극장서 껌을 씹는 여자, 다방서 음악을 따라 부르는 여자 등 날카롭게 꼬집으며(후략)"(1970년 4월 15일 <경향신문>)

브래지어 끈이 보여도, 흘러내린 것을 다시 올리려 애써도, 모두 꼴불견인 모양이다. '여자라면' 모름지기 감추고 가려서 오차나 실수 없이 늘 단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기사를 보시라.

1964년 12월 10일자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엔 '미국에서 속이 들여다 보이는 투명성 브라자가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가십성 기사가 실렸다.

1977년 3월 7일자 <동아일보>에는 '새로운 브래지어 디자인을 내놓고 있다'는 기사와 함께 내용과 전혀 상관 없는 여성의 가슴 일부가 노출된 사진을 실었다. 끈은 안 되고 가슴은 보여도 된다? 여성을 판단하는 이중 잣대인 동시에 은근히 압박하는 이중 메시지이다. 정숙하되 섹시하라는 식. 여자로 살기 참 어렵다, 어려워.

브래지어 때문에 벼락 맞아 숨지기도

과거 언론은 '노브라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1960년대 말 미국에서 여성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운동인데 신문에선 '브라자 벗기 운동' 정도로만 간단히 표현했다. 역시 가십성 성격이 짙다.

1970년엔 브래지어를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본 노브라 운동의 의미가 조금씩 드러났지만 제대로 이해하기엔 많이 미미했다. 그런데 노브라가 우리나라에선 조금 다른 면에서 확산된 것 같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노브라 추세가 확산돼 브래지어 제조업자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는 기사가 1977년부터 1979년까지 등장한다. 내가 느낀 불편함을 다른 이라고 느끼지 못했을까. 추측건대, 득보다 실이 많음을 안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점점 멀리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역시 기업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속옷 제조업체들은 소재와 디자인을 새롭게 바꾸고 인기모델을 내세워 꾸준히 광고했다. 1986년엔 형상기억합금을 와이어로 사용해 그해의 인기상품으로 꼽혔다. 1990년대 들어 컴퓨터로 디자인을 한다는 내용을 광고하고 소재도 고급화했다.

1996년엔 10대 초반 연령대를 위한 브래지어를 선보였고, 컵의 크기와 종류도 다양해졌다. 1998년엔 공기를 주입해 볼륨을 조절하는 '에어컵' 상품이 출시됐고, 이듬해 전자파 차단 기능을 더한 브래지어가 나왔다. 잠시 주춤했던 브래지어 시장은 나날이 커졌고 내 가슴은 점점 답답해졌다.

그런데 1999년, 브래지어 때문에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영국 런던의 한 공원에서 여성 두 명이 브래지어의 와이어에 벼락을 맞아 숨진 것이다. 11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단 세 줄짜리 기사를 그때 보았다면, '브래지어는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물건이니 모두 다 벗어던집시다!'라고 외쳤을 텐데.

아니면 '번개가 자주 치는 여름철에라도 브래지어를 하지 말자'는 주장을 펼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좋은 기회가 가십으로 묻히고 브래지어는 승승장구했다.

결국 1999년 세기말을 앞두고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에서 '지난 100년 동안 사랑받은 인기 상품'에 브래지어가 뽑히는 일까지 벌어졌다. 브래지어와 나란히 인기상품으로 뽑힌 품목은 지퍼·냉장고·라디오·페니실린·포스트잇 등이다.

하고 싶은 사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가슴을 짓누르는 브래지어.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하고, 그냥 맘대로 입고 나가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 신경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아니 이런 걱정 자체를 잊고 살 수 있다면 좀 좋을까.
 내 가슴을 짓누르는 브래지어.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하고, 그냥 맘대로 입고 나가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 신경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아니 이런 걱정 자체를 잊고 살 수 있다면 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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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시선을 꽤 의식하는 나는 아마도 당분간 집에서 브래지어를 싹 내다 버리는 일은 하지 못할 것이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더라도 티 나지 않게 최대한 신경 쓰며 살겠지. 하지만 언젠간 훌훌 벗어버릴 수 있길 기다리고 기대한다.

여성해방이 아니라도 좋다.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하고, 그냥 맘대로 입고 나가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 신경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아니 이런 걱정 자체를 잊고 살 수 있다면 좀 좋을까. 축 늘어진 가슴에 티 하나 걸쳐 입고 여름날 맘 편히 거리를 활보하는 아줌마, 할머니.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브래지어, #옛날물건, #여성생활사, #여성주의,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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