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부산국제영화제


01.

젠틀 크리처. 영화 속 여자 주인공(바실리나 마코프세바)은 이렇게 불린다. 점잖은 동물이라는 뜻이다. 2시간이 넘게 진행되는 영화 속에서 그녀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그렇게 불릴 뿐이다.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그녀는 누명으로 인해 감옥에 수감 중인 남편에게 정기적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보낸다. 남편이 수감되어 있다는 감옥은 시베리아의 고립된 마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혼자 찾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같은 방식으로 보냈던 소포에 문제가 생긴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반송이 되어 온 것이다. 그녀는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남편의 신상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영화 <젠틀 크리처>는 이름조차 없는 한 여인이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고, 반송되어 돌아온 소포를 직접 보내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건들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그 여정에서 겪게 되는 일련의 경험들은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02.

우크라이나 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작품 <젠틀 크리처>는 지난 칸 영화제에서 현지 기자들에게 가장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 영화라고 알려져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모티브로 하여 러시아 사회를 관통하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여성의 삶에 대해 그려냈지만, 무관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강압적이고 조직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계층화가 확고해진 시스템 속에서 힘 없는 이들은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한 여성의 경험은 극도의 현실감과 함께 그를 뛰어넘는 허구성을 함께 느끼게 한다. 러시아 사회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과 표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여성 인물의 성적 학대 장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에 대한 비난을 함께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비판과 논란 속에서도 이 작품은 미국의 유명 매체 저널리스트를 포함한 언론들을 통해 영화제 기간 한 때 황금종려상 후보로 손꼽히며 두각을 드러냈다.

ⓒ 부산국제영화제


03.

이 영화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여정에 오른 뒤 그녀가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곤경들과 그런 상황들 앞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과 반응이다. 주인공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농을 주고 받는 남자들, 수색이라는 명목으로 그녀의 신체를 일방적으로 더듬는 경비원, 제대로 된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정당한 권리를 박탈하는 권력자들의 비행. 이 모든 것들을 통해 관객들은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감정에 빠지게 되고, 심리적 동일성 하에서 다양한 부정적 감정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일종의 '안티 휴머니즘(Anti-Humanism)'이라고 불리는 영역의 표현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억압된 사회 시스템과 폭력적인 상황들에 놓인 개인의 무력함, 상실감 등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오히려 반대로 진정한 휴머니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에서 비롯되는 표현 방식에 대한 찬반 논쟁은 분명히 존재한다.

04.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서 역경과 곤란에 빠지게 되는 주인공을 표현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방식이 동시에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칸 영화제에서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이 심사위원 기자회견을 통해 영화 속 여성의 표현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이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판타지(역사 내에서 잠이 들고 만 그녀가 꾸게 되는 꿈을 사실처럼 묘사한 지점이다) 속 성폭력 피해 장면과도 같은 장면들이 해당된다. 특정 작품을 언급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 언론에서 이 작품을 논란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작품이 제 아무리 안티-휴머니즘의 의도로 연출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직접적일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안티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떠나, 그 어떤 작품도 그 작품을 접하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넘어선 감정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 이 영화 속 마지막 장면 속에는 분명히 그 지점을 넘어서는 불쾌함이 존재한다.

05.

그런가 하면, 새로운 장면이 시작될 때마다 고정된 앵글을 통해 첫 장면을 일정시간 조용히 관망하며 지켜보던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아무런 인위적인 연출도 배제한 채, 그저 버스가 길을 따라 다가오는 장면을 보여준다던가, 버스정류장에 나란히 줄을 선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다던가, 들판에 불어오는 바람을 10초 내외로 관망하는 감독의 시선은 마치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는 심리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1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가 대사를 하는 장면은 다 모아도 20분이 채 안 될 것이다. 자신에게 어떤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그저 묵묵히 감내하려고 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그런 앵글들 속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반대로 그 장면들 속에는 그녀의 불안까지도 담겨져 있다. 이상하리만큼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서 점점 불안감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다른 작품들과 달리 같은 장면만 10여초간 바라봐야 하는 몇 번의 순간들이 동일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쯤 되니 더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섬세한 연출이 가능한 사람이 왜 그런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가 담긴 장면을 긴 시간 담았던 걸까?

ⓒ 부산국제영화제


06.

교도소가 위치해 있는 마을이 기차를 타고 수 일을 걸려 가야 한다고 물리적 거리가 설정되어 있는 것처럼, 그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행위들이 고립된 장소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미끼>(2010)나 <곡성>(2016)에서도 활용되고 있는 형식의 구조인데,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곳에서 억압되어 있는 상황이나 비이성적으로 조직적인 시스템을 조성하여 불안과 위기를 조장하는 방식이다. 특히 이 경우 대부분의 작품에서 고난을 겪게 되는 것은 외부에서 유입된 인물인 경우가 많은데, 그 상황을 타개하고 원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다면 그 시스템 속에서 또 하나의 희생자로 남겨지느냐가 작품들 사이에서 또 하나의 차이를 만든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그녀가 영화 속 판타지, 그녀의 꿈 속에서 깨어난 뒤에 동일한 현실을 마주 한 후 보여주는 행동 때문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 순간 주인공이 특정한 행동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게 되는데, 감독의 의도대로 여성은 관객들의 그 기대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이며 영화가 끝나게 된다.

07.

부산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이 이 작품을 선정한 것에는 비단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작이라는 타이틀 이상의 것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소 생소한 영역의 표현 방식을 국내 관객들에게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다소 첨예하게 다루어질 수 있는 소재를 통해 그 내용에 대한 불편함과 논란들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 말이다. 영화에 주어진 대외적 평가와 무관하게 작품의 소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비록 그녀가 젠틀 크리처라는 이 영화의 제목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실상 그런 이름은 반대로 그녀를 둘러싼 세상과 인간들에게 더욱 잘 어울린다는 것 또한 함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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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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