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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10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10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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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청산 문제로 격화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친박 간의 내전이 주춤하는 모양새다. 홍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과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탈당을 밀어붙이며 강공 드라이브를 이어가자, 친박의 좌장 격인 서 의원은 반격의 카드로 '성완종 리스트' 관련 녹취록을 꺼내들며 역공에 나섰다. 이후 한국당의 내홍은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양상으로 흘러온 터였다.

특히 홍 대표와 서 의원은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치열한 설전을 펼쳤다. 미국을 방문 중이던 홍 대표는 지난달 26일 서 의원을 향해 "정치를 더럽게 배워 수 낮은 협박이나 한다. 깜냥도 안 되면서 덤비고 있다"고 독설을 퍼부은 데 이어, 28일 귀국 기자회견에서는 "8선이나 되신 분이 새카만 후배를 도와주지 못할 망정 그런 협박이나 하느냐"며 "어디 한 번 해볼 대로 해보라"고 녹취록 공개를 요구하기도 했다. 서 의원의 공세에 특유의 배짱으로 맞선 것이다.

홍 대표의 기자회견 소식을 접한 서 의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서 의원은 "홍준표는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2010년과 2011년 당 대표 경선 당시 홍준표의 언론특보였다는 사실은 얘기하고 있지 않다"면서 "홍준표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이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진실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며 조만간 녹취록을 공개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박 전 대통령 출당을 결정할 3일 최고위원회의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홍 대표와 서 의원은 '정중동'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이라도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격렬하게 부딪혔던 두 사람의 기싸움이 소강 상태로 접어든 것이다. 거칠었던 홍 대표의 발언은 몰라보게 잠잠해졌고, 공개할 것처럼 보였던 녹취록도 현재까지는 감감 무소식이다. 죽기 살기로 싸울 듯하더니 막상 뚜껑이 열리자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세력 없는 홍준표, 초선의원들 붙잡고...

두 사람의 숨고르기는 자신들의 처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홍 대표의 경우, 박 전 대통령 출당과 서·최 의원 탈당에 대한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부담이다. 특히 당내 주류인 친박계의 집단 반발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팽팽한 대립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초·재선 그룹 내에서도 박 전 대통령 출당과 서·최 의원 탈당에 이견이 속출하고 있어 홍 대표가 세 사람의 출당과 탈당을 자신의 의지대로 밀어붙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내 계파가 없는 홍 대표는 친박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초·재선 그룹이 당내 혁신 작업에 힘을 실어주지 않을 경우 리더십에 커다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당 대표로 취임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했던 과거의 전철을 다시 밟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 시절인 지난 2011년 7월 4일 압도적인 지지로 당권을 거머쥐었던 홍 대표는 이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패배와 중앙선관위 디도스 파문 등 각종 내우외환에 시달린 끝에 그해 12월 9일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바 있다.

실제 홍 대표가 직면해 있는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계파나 조직이 없는 탓에 당 대표로서의 실질적 권한과 위상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친박계와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당시 홍 대표는 당 안팎에서 사퇴 압력이 비등해지자 재신임 카드와 당 혁신안 발표 등으로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당내 주류였던 친박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대표직에서 내려와야 했던 아픔이 있다.

1일 홍 대표가 초선 의원들과 만찬회동을 갖은 것도 이같은 상황을 염두해 둔 포석일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출당과 서·최 의원의 탈당 등 친박 청산의 당위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초선 의원들의 입장을 확인하려는 취지다. 총 44명에 이르는 초선 의원들은 한국당 전체 의석수인 107석의 4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이들이 당내 현안에 한 목소리를 낸다면 무시못할 파급력을 갖게 된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퇴진 요구가 거세게 제기되고 있는 만큼 홍 대표 입장에서는 초선 의원들의 협조가 절실한 처지다.

'용퇴설' 서청원, 줄어드는 당내 입지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0월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0월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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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녹록지 않기는 서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친박을 대표해 홍 대표와 맞서고 있는 서 의원은 당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동안 박 전 대통령 출당과 서·최 의원의 탈당은 보수통합을 위한 선결 과제로 끊임없이 지목돼 온 터였다. 이에 당내에서는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대선 패배의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서·최 의원이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두 사람이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내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용퇴설'은 서·최 의원의 결단이 보수통합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두 사람의 용퇴가 바른정당 통합파의 합류 명분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그를 기화로 사분오열된 보수세력이 결집하는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는 친박계의 입장에서도 최소한의 출혈로 당내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지지부진하다고 비판받아온 한국당의 혁신 작업을 감안하면 서·최 의원의 용퇴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동안 '박터지는' 진흙탕 싸움을 이어가던 홍 대표와 서 의원은 두 사람에 대한 동반 퇴장 목소리가 당내에서 분출된 이후 말을 아끼고 있는 중이다. 이는 녹취록을 둘러싼 진실공방과는 별개로, 두 사람이 자신들의 거취와 관련된 당내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방증이다.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이 한국당을 깊숙이 휘감고 있다. 친박계의 표적이 된 홍 대표는 과연 대표직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당 안팎으로부터 용퇴 압박을 받고 있는 서 의원은 스스로 보수 통합의 희생제물이 될 수 있을까. 박 전 대통령 출당의 향배가 그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3일 한국당 최고위원회의를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박근혜 출당, #서청원 최경환 탈당, #홍준표 성완종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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