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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고불총림 백양사 주차장에 가부좌 튼 단풍입니다.
 장성 고불총림 백양사 주차장에 가부좌 튼 단풍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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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단풍 나들이객이 연일 주요 뉴스로 등장합니다. 이에 마음 들떴을까. 아내의 솔깃한 제안입니다.

"당신 백양사 갈래요?"
"좋지. 정신없이 바쁜 당신이 웬일이래?"
"바쁜 일상에서 탈출구를 찾고 싶어. 언제나처럼 그래야 한 해 보낼 수 있을 거 같고."

"백양사, 각시랑 와서 기억에 전혀 없는 거 아냐?"

장성 백암산 백양사. 땅에 내려 앉아 가부좌 튼 단풍보다 공중부양처럼 요렇게 물 위에 가부좌 튼 단풍이 끌리대요.
 장성 백암산 백양사. 땅에 내려 앉아 가부좌 튼 단풍보다 공중부양처럼 요렇게 물 위에 가부좌 튼 단풍이 끌리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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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 트고 싶다는 아내에게 하루를 배려해야 할 상황. 아침부터 서두릅니다. 아기단풍으로 유명한 전남 장성 고불총림 백암산 백양사로 향합니다. 나들이 차량이 즐비합니다.

"백양사, 대학 때 가보고 30여 년 만에 다시 가는 것 같아."
"우리 둘이 10여 년 전에 왔잖아. 아이들하고도 왔고."
"아닌데. 기억이 전혀 없는데. 또 우기네."
"아니거든. 그때도 당신이 지금과 똑같이 말했거든. 다른 여자가 아니라, 각시랑 와서 기억에 전혀 없는 거 아냐? 와, 서운하다."

부부, 간혹 이렇게 티격태격합니다. 어떤 곳은 아내가 다른 사람과 간 것을 남편과 같이 온 거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백양사 어쩌면 까마득히 기억 속에 전혀 없을까. 이해불가입니다. 장성 백암산 백양사. 아무래도 인상적으로 기억할 강력한 무엇인가가 필요하나 봅니다.

"당신, 그때도 똑같이 저 자리에서 사진 찍었다"

백양사 일주문입니다. 백양사 애기단풍은 이번 주말이 절정일 듯합니다.
 백양사 일주문입니다. 백양사 애기단풍은 이번 주말이 절정일 듯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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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으로 한참을 걸어가자 백양사 가람이 나옵니다.
 가을 속으로 한참을 걸어가자 백양사 가람이 나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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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축제 기간이라 차량이 몰립니다. 주차장도 마음껏 선택할 상황이 아닙니다. 주차 요원 안내에 따라 움직입니다. 걷기 좋아하는 아내, 이번에는 딴청입니다. 절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주차하길 바랍니다. 아래서부터 걷기가 부담스럽다나. 전혀 기억에 없는 저로서는 멀리부터 걷는 게 좋습니다.

백양사로 가는 길. 시끄러운 음악이 울립니다. 자연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축제 프로그램에 이런 걸 꼭 넣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조용히 자연을 즐기는 축제면 더 좋을 법한데. 축제장 인근 프로그램 부스가 즐비합니다. 한쪽에서 김치를 담고 있습니다. 맛보라는데 생김치가 입맛에 딱 맞습니다. 앗, 건너편에서 연잎밥을 팝니다. 부부, 점심으로 배추김치와 연잎밥을 점찍습니다.

단풍이 여행객을 반깁니다. 손잡은 연인, 아이를 안은 아빠, 떨어질 듯 주렁주렁 매달린 감, 인증 샷을 남기는 사람들, 모두가 한마음입니다. 단풍, 제각각인 사람을 하나로 엮는 고수입니다. 백양사 애기단풍, 화장기라곤 전혀 없는, 치장하지 않는 아내와 묘하게 어울립니다. 단풍과 함께 사랑이 또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당신, 그때도 똑같이 저 자리에서 사진 찍었다."

아내, 다시 한번 부부가 같이 온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같이 오면 어떻고, 따로 왔으면 또 어떻습니까. 그저 지금처럼 같이 단풍 즐기면 되는 게지요. 단풍객 모습에서 작년과 변화를 봅니다. 지난해엔 단풍객들 옷이 울긋불긋, 옷 단풍으로 화려했습니다만, 올해에는 아웃도어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눈에 띄게 감지됩니다. 자연에 더 시선을 주는 분위깁니다.

'엄마', 그 단어만으로도 그리움이지요

백양사의 가을.
 백양사의 가을.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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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총림 백양사 대웅전입니다.
 고불총림 백양사 대웅전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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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총림 백양사(白羊寺)는 1400여 년 전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조사가 창건한 고찰로 호남불교의 요람이다.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와 함께 5대 총림이다. 가을 백암산 전체를 물들이는 백양사 애기단풍은 백양사의 자랑이자 마스코트이며, 하늘높이 솟아있는 백암산 학봉의 기암괴석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기상과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칠성신앙은 백양사에서 시작되었고, 대웅전 바로 옆에 칠성각이 자리한 사찰은 백양사밖에 없다."

백양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칠성신앙의 시작점이 백양사였다니 이채롭습니다. 사천왕문을 지납니다. 국화 천지입니다. 어, 대웅전이 돌아앉았습니다. 이런 특별한 곳을 기억 못 할 리 없는데, 싶습니다. 그럼 그렇지. 알고 보니, 대웅전 자리가 너무 작아 산 밑에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무심(無心)합니다.

아내는 백양사 부처님께 국화를 올려 친정 엄마의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아내는 백양사 부처님께 국화를 올려 친정 엄마의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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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기어이 남편을 백양사 부처님이 내려 앉은 단풍 앞에 세웠습니다.
 아내, 기어이 남편을 백양사 부처님이 내려 앉은 단풍 앞에 세웠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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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마음을 담아 부처님께 국화꽃 두 개를 올리고 싶답니다. 하나는 수능을 앞둔 아들과 대학생인 딸 몫이랍니다. 다른 하나는 지난 9월 돌아가신 장모님과 먼저 가신 장인어른 몫이랍니다. 이런 적 없었는데 친정엄마가 돌아가시니 많이 허전하니 봅니다. 물론 그렇게 하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종이 하날 내밀어 제게 문구를 쓰라 합니다.

해탈의 길목!
김창현 임연실
- 극락왕생 -

아내, 울컥합니다. 또 엄마가 불쑥불쑥 나타나나 봅니다. '엄마', 그 단어만으로도 그리움이지요. 얼굴 붉어진 아내 보니, 저까지 코끝이 찡합니다. "엄마마저 돌아가셔서, 이제 고아가 되었다"는 아내에게 그 빈틈을 주지 말아야겠다, 다짐합니다. 이번 부부 단풍 여행은 장모님의 '극락왕생'을 비는 부부만의 '마음속 49제'가 되었습니다.

항변, 배춧속 먹는데 남자 여자가 어디 있냐?

백양사 단풍축제장에 마련된 어느 부스에서 한창 배추김치를 담고 있습니다. 얼마나 입맛 땡기던지, 생김치에 연잎 밥을 먹기로 했지요.
 백양사 단풍축제장에 마련된 어느 부스에서 한창 배추김치를 담고 있습니다. 얼마나 입맛 땡기던지, 생김치에 연잎 밥을 먹기로 했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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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어느 의자에 걸터 앉아 연잎 밥에 생김치를 올렸습니다.
 백양사 어느 의자에 걸터 앉아 연잎 밥에 생김치를 올렸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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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살살 고파 옵니다. 뭘 먹을지, 유혹은 많습니다. 특히 점심 공양으로 백양사 사찰 음식이 당깁니다. 허나, 그것마저 미리 정했던 부부만의 메뉴에 밀립니다. 백양사를 올라오면서 눈여겨 봐뒀던 곳으로 갑니다.

"연잎밥 하나에 둘이 나눠 먹을까?"
"아니. 하나씩 제대로 먹게."

"배추김치 얼마에요?"
"킬로에 구천 원입니다."
"집에서도 먹게 두 포기 주세요. 연잎밥과 같이 먹을 수 있게 좀 찢어 주시고요."

연잎밥 두 개와 배추김치가 손에 들려 있습니다. 벌써 든든합니다. 앉아서 편히 먹을 자리를 물색합니다. 그 새 또 입맛을 다십니다. 자연 속에서 연잎밥과 갓 담은 배추김치를 펼칩니다. 아, 입속은 맛의 향연입니다. 연잎에 배추가 올라탄 형국이랄까. 아내, 연잎밥을 먹으면서 추억 속으로 빠져듭니다.

"우리 신혼 때 배추 많이 싸 먹었잖아. 그때 배춧속만 골라 먹는 당신에게 '뭔 남자가 배춧속을 먹냐?'고 했더니, 당신이 뭐라 했는지 알아? '배춧속 먹는데 남자 여자가 어디 있냐'고. '배춧속이든 밖이든 먹고 싶은 거 먹는 거다'고. 나는 '그 말이 맞다'하면서도 속으로 많이 놀랐어."

별 게 다 대화거리입니다. 그러면서 "연잎밥에 배추 생김치랑 맛있게 먹었던 백양사라 이제 잊지 않겠네!" 합니다. 부부, 이렇게 세월을 거슬러 올라 '단풍연어'가 됩니다. 가을, 우리 모두 원 없이 사랑하게 하소서!

백양사의 가을 2.
 백양사의 가을 2.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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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의 가을, 가부좌를 튼 채 극락세계로 흘러갑니다.
 백양사의 가을, 가부좌를 튼 채 극락세계로 흘러갑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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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고불총림 백양사, #장성, #애기단풍, #단풍축제, #가부좌 튼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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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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