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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영산법률문화상 시상식이 11월 7일 오후 3시 경기도 의왕시 서울소년원에서 열렸다.
 제12회 영산법률문화상 시상식이 11월 7일 오후 3시 경기도 의왕시 서울소년원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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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9일 '청소년회복센터'(일명 '사법형그룹홈')를 청소년복지지원법상의 공식 시설로 받아들이는 청소년 복지지원법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던 때를 생각하니 다시 심장이 두근거립니다.보호는커녕 투명인간 취급당하던 보호소년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지난 7년간의 고군분투가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제12회 영산법률문화상 수상자인 부산가정법원 천종호(53) 부장판사는 7일 서울소년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다 목이 메여 잠시 중단하고 눈물을 삼켰습니다. 보호소년들을 위한 외롭고 힘겨웠던 고군분투의 세월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8년째 소년재판 전담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천 부장판사는 수상식에서도 소년들이 왜 범죄와 비행의 늪에 빠지게 됐는지 배경을 설명하면서 소년들의 아픔을 헤아려주기를 거듭 요청했습니다.

영산법률문화재단 양삼승 이사장이 천종호 판사에게 수상패와 부상을 전달했다.
 영산법률문화재단 양삼승 이사장이 천종호 판사에게 수상패와 부상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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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년은 범죄나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보호소년들을 혐오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연을 살펴보면 혐오만 하기가 어렵습니다. 보호소년들 가운데 배가 고프거나 아무도 보살펴줄 사람이 없어서, 경쟁에 낙오하여 좌절하여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부모와 사회의 무관심이 범죄의 배경 중에 큰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호소년들에게 돌을 던지는 이 사회에서 그는 외로운 대변자입니다. 그는 부모와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보호소년들도 대한민국 청소년이고 보호받아야 할 아동들이라고 강조합니다. 판사 경력 21년째인 그는 '호통판사'라고 불릴 만큼 소년범들에게 무서운 판사이지만 법정 밖에선 소년들의 아픔 때문에 눈물 흘리는 '만사소년'(萬事少年)입니다. 자나 깨나 소년들을 생각해서 붙은 애칭입니다.

19곳의 소년 피난처를 만든 판사... 정부 지원은 언제 이루어질까?

천종호 부장판사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부산과 경남, 충남 대전 등지에서 달려온 '청소년회복센터' 센터장과 관계자들.
 천종호 부장판사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부산과 경남, 충남 대전 등지에서 달려온 '청소년회복센터' 센터장과 관계자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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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천 판사를 처음 만났습니다. 저는 연쇄방화범 소년과의 인연으로 보호소년들을 돕는 단체(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천 판사가 시작한 '사법형그룹홈'을 경기도 의왕시에 마련하면서 그의 사역에 동참했습니다. 그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저의 손을 잡아준 것은 소년들의 피난처가 한 곳이라도 더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에게 소년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 힘들고도 아름다운 이 길을 함께 가자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틈이나면 대학과 단체, 교회 등지를 다니며 호소했습니다. 배고픈 소년에게 비난의 돌을 던지기보다 따뜻한 밥을 주면 좋겠다고 간청했고, 잠잘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는 소년들에게 잠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소년범들을 혐오하던 사람들은 그가 들려준 소년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눈물 흘렸고 스님과 목사, 퇴직 군인 등은 사법형그룹홈 운영자로 나서 주었습니다.

초기엔 사법부 안팎에서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외롭고 힘든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이 미워하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2010년 경남 창원에서 처음 시작된 '사법형그룹홈'은 그의 고군분투로 인해 경남 창원 6곳, 부산 6곳, 울산․양산 3곳, 충남 대전 4곳 등 모두 19곳으로 늘었고 명칭도 '청소년회복센터'로 변경했습니다. 더 늘어야합니다. 충남 대전까지 상륙한 '청소년회복센터' 설립의 훈풍이 수도권으로 북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당국의 지원금은 법원이 보호소년을 위탁하면서 지급하는 1인당 월 50만 원 뿐입니다. 게다가 운영자 스스로 소년들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해야 합니다. 상처 많은 아이들을 보듬고 사는 일도 힘들지만 그에 못지 않게 힘든 것은 운영난입니다. 그래서 천 판사는 2014년 10월 보호소년들의 '청소년회복센터'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했고 2016년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 법률안이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법은 만들어졌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지원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속히 지원되어야 합니다.

소년범 문제 해결, 엄벌보다 희망에 있습니다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천종호 판사와 부인과 늦둥이 막내딸.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천종호 판사와 부인과 늦둥이 막내딸.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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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이 발생하면서 소년범에 대한 엄벌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수십만 명이 청와대에 소년법 개정을 청원했고 어떤 정치인은 사형까지 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천종호 판사는 엄벌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비난의 화살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 발언했다가 벌집이 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렇게 말한 것은 소년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엄벌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3년 조사 결과 소년원을 퇴소한 소년들의 3년 이내 재비행이 70%에 육박한 반면 '청소년회복센터'에서 6개월 생활하다 퇴소한 소년들의 재비행은 30%대로 떨어졌고, 1년간 생활하다 퇴소한 소년들의 재비행은 1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현상입니다. 보호소년들에게도 안정된 환경을 조성해주면 건강한 소년들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비결은 엄벌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천 판사는 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고졸 학력 취득을 위한 특별반 개설을 주도했고, 캠프를 열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함께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나누었고, 합창단과 축구단을 만들어 심신을 건강하게 했습니다.

비난하는 일, 낙인찍는 일, 격리하는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문제는 악화됩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할 때 그와 그의 아내는 보호소년들을 회복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청소년회복센터 소년들이 합창 연습을 할 때면 식사를 준비하곤 합니다.

천종호 판사는 도시빈민의 아들입니다. 그는 7남매 중에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는 판사 퇴임 후 돈을 많이 버는 변호사가 되어 가난한 형제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소년범의 아픔을 다룬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 2013)와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우리학교, 2015)를 펴내 7천만 원 가량의 인세를 받았습니다. 인세의 일부로 형제를 도우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청소년회복센터'에 전액 기부했습니다.

천 판사는 영산법률문화상 부상으로 5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번 상금은 가족과 형제들을 위해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소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도 소중하지만 어려운 형제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 또한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교사인 아내와 맞벌이해서 집을 겨우 장만한 그의 처지에서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형제를 도울 수 있을까요. 그는 가난한 형제를 도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역자로서 소년의 눈물과 형제의 눈물을 함께 닦아주시길 천 판사에게 부탁드립니다.

영산법률문화상은 영산대 설립자인 고(故) 박용숙 여사가 30억 원을 출연해 설립된 영산법률재단(이사장 양삼승)이 운영하는 상으로 역대 수상자 중 현직 법관이 선정된 것은 천종호 판사가 처음입니다.


태그:#천종호 부장판사, #영산법률문화상, #청소년회복센터, #보호소년, #만사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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