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타자기' 유아인, 병역 숨길거 없어요! 배우 유아인이 5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tvN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제작발표회에서 자신의 몸상태를 설명하며 병역에 관련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카고 타자기>는 슬럼프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유아인 분)와 그의 이름 뒤에 숨은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 분), 한세주의 열혈 팬에서 안티 팬으로 돌변한 작가 덕후 전설(임수정 분)이 의문의 오래된 타자기와 얽힌 미스터리한 앤티크 로맨스 드라마다. 7일 금요일 오후 8시 첫 방송.

배우 유아인. 사진은 지난 4월 tvN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제작발표회 당시 모습. ⓒ 이정민


일명 '애호박게이트'로 구설에 오른 배우 유아인이 새로운 글을 올릴 때마다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아인은 최근 올린 글을 통해 "나는 '조직폭력배'와 싸우고 있습니다"라며 자신에게 반대 의견을 피력한 사람들을 '조직폭력배', '폭도'로 명명했다. 유아인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저열함과 무지와 폭력", "천박한 언어"라고도 말했다.

유아인의 '애호박으로 맞을래?'사건

이 논란은 배우 유아인이, 자신과 일면식 없는 일반인을 상대로 "애호박으로 맞을래?(코 찡끗)"이라는 트윗을 올린 것에서 시작되었다. 해당 트윗은 앞서 "유아인은 그냥 한 20미터 정도 떨어져서 보기엔 좋은 사람일 것 같다"고 어떤 트위터리안이 올린 글에 반응한 것이었다. 이 트위터리안의 글은 해시태그나 유아인의 ID 언급 없이 본인의 타임라인에 올린 트윗이었고, 유아인은 본인의 이름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리안은 "막 냉장고 열다가도 채소 칸에 뭐 애호박 하나 덜렁 들어있으면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나한테 '혼자라는 건 뭘까?'하고 코 찡끗할 것 같음"이라고 적었고, 유아인은 그가 '애호박'을 언급하자 이에 같은 '애호박'으로 답한 것이다.

이에 몇몇 누리꾼들이 유아인의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맞을래?"라는 표현이 '폭력을 연상'시키니 그만둬 달라는 비판 의견들이었다. 그러나 유아인은 이런 지적에 사과하는 대신 정면으로 맞대응을 하고 나섰다. 일반 누리꾼의 트윗을 검색해가며 일일이 '정신 차리라', '메갈짓 이제 그만' 등으로 답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에게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 그 중 특히 일부 여성의 행위를 '메갈 짓'으로 단호히 규정하는 유아인의 확신은 어디서 나왔을까?

유아인이 올린 트윗을 순서대로 살펴보았다. 그의 글 속에서 여성은 두 가지 타입으로 분류된다. 유아인은 적으로 규정하고 조롱해도 되는 여성과 불쌍하게 보는 시혜적 관점으로 여성을 나눴다. 그러면서 스스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있다.

과거 유아인은 여성들을 향해 기죽지 않고 할 말 다 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며칠 간 인터넷 속에서 사람들이 그의 행동이 옳지 못하다고 비판했을 때는, 그 비판자 중 특히 여성으로 추정되는 누리꾼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유아인이 여성의 발언을 용인하는 한계는 유아인의 뜻에 반대하지 않는 여성에 한하는 것처럼 보였다.

설전을 벌이는 와중에 유아인이 추정되는 성별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한 일도 화두에 올랐다. 여성 사용자로 추정되는 트윗에는 반말로 대답하거나 교설적인 훈계를 남기고, 같은 논조로 비판을 해도 남성 프로필 사진을 단 사람에게는 답변을 달지 않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익명으로 같은 비판을 해도 남성과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논란이 일었다. 특히 남성인 박성우 평론가가 비판 글을 남기자, 유아인이 이에 정중하게 답변한 게 화제가 되었다.

뒤에 박성우 평론가로부터 "역시나 저에게만은 친절하다. 남성, 영화 평론가인 저에 대한 배려는 당신이 비아냥거린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다. 저에게 하듯이 다른 분에게도 하든가, 다른 분에게 했듯이 저에게 했어야 한다. 이 차별적인 태도만으로 남자들이 기득권인 것이다"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페미니즘과 폭력에 공포를 느끼는 여성들

결과적으로, 유아인은 여성들이 보낸 의견들을 무시하며 신뢰하지 않았다. 유아인은 "맞을래?"라는 표현이 여성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공감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자신의 표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그가 봤을 때는 '메갈 짓'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 중 하나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긴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유명인, 상류층이나 부유층까지 가정 폭력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한국에 비해 비교적 성 평등이 실현된 곳으로 여겨지는 미국에서조차도 1970년대까지 가정 폭력을 심하게 당해도 법적으로 처벌된 케이스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현 시점에도 미국에서는 '9초'에 한 번 씩 여성이 구타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매년 200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이 중 14만5000여 명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매년 발생되는 강간 범죄 숫자는 8만7000여 건이고 6.2분에 한 번씩 경찰에 신고된다.

공개된 SNS를 통해, 일면식도 없는 일반 누리꾼에게 "맞을래?"라고 말하는 게 적합하지 않다는 의사를 누군가 호소했다. 그 호소에는 이처럼 폭력에 노출된 여성의 현실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유아인이 이에 공감했다면 그처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아인은 여성이 폭력에의 공포를 호소했을 때, 한국에서 몇 초에 한 번씩 여성이 구타나 강간을 당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굳이 정확한 수치를 배우지 않더라도, 여성들은 사회 구조적인 경험을 통해 강간과 폭력에 대한 공포를 깊이 느끼며 살아간다. 한국에서 여성들은 남성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만으로도 폭력과 조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다. 반대 의견에 자존심이 상해 조롱을 멈추지 않는 유아인에게서 자신의 자존심만을 귀히 여기는 모습이 보인다.

진정한 여성 혹은 폭도로 여성을 양분하는 유아인

유아인은 오히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 중 일부 여성을 지칭해 그들은 '진정한 여성이 아니며, 폭도'라고 지칭했다. 동시에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적어 자신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다. 이 글에서 유아인은 '제사 때마다 차별받은 어머니와 남아선호사상으로 지어진 이름으로 차별받은 누이를 지켜봤다'고 썼다.

그러나 유아인은 글 속에서 자신이 '진정한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을 나눌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한다. 스스로에게 그 권리를 부여하는 자체가 성차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진정한 여성이 아니다'라고 폄하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여성들은 자신의 자유 의지가 아닌 유아인이 '옳다'라고 생각한 기준에 맞춰야 한다. 남성이 여성을 규정짓고 어떻게 행동할지 지도하는 상황은 기본적인 성차별이다. 자신이 만든 잣대를 여성에게 들이대며, 자신에게 반대하는 여성은 '진정한 여성'이 아니라는 유아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기시감을 느낀다. 한국 사회 속에서 여성들을 구속하기 위해 붙여지던 '성녀', '창녀', '된장녀', '김치녀', '개념녀' 등의 잣대 때문이다.

결국, 유아인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여성의 의견은 '가짜 페미니스트'이자 '폭도'이며, 자신의 기준이 '진짜 페미니스트'라 주장하는 셈이다. 이 모습은 상당히 기묘하다. '여성의 말을 증언으로 신뢰하지 않는 태도'는 성차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유아인이 반대 의견을 내는 여성들을 '익명성에 기댄 폭도'라고 표현하자, 유아인에게 반대 의견을 내기 위해 자신의 실명과 어떤 배경을 지녔는지 밝히는 이도 늘고 있다.

여성이 유아인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유아인에게 자격을 증명 받아야 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그리고 자칭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유아인의 모습은 페미니즘에서 묘사하는 성차별 남성들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남성이 여성에게 뭔가를 더 잘 안다고 설명을 요구하기도 전에 무조건 설교하려는 태도도 여성들이 느끼는 대표적 성차별 중 하나이다. 이를 단어로 표현한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는 지난 2011년, 해외의 신조어로도 등장했다.

주류 남성 문화가 아닌 여성과 싸우는 유아인

유아인에게 있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한 근거는 '차별에 대한 목도'와 '그에 부당함을 느낀 자각'이다. 유아인이 페이스북에서 올린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유아인의 본명은 엄홍식이다. 그는 대구에서 2녀 1남의 가정의 막내아들로 태어났고, 자신의 둘째 누이의 이름은 '엄방울'이라는 내용이다. 유아인은 할머니께서 지어주신 '엄방울'이라는 이름은 그 다음 태어날 아이가 남자이기를 염원하는 이름이라 했다. 유아인의 페이스북 글을 읽는 독자는 '엄방울'이 남성의 성기 일부에서 따온 남아선호사상을 그대로 드러낸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글에서 유아인은 '엄방울'이 '예쁘고 불쌍한 이름'이라고 했다.

유아인은 차별을 주시했고, 그 부당함을 글의 소재로 사용했다. 하지만 정작 유아인이 현재 목소리를 내며 싸우는 대상은 남성 주류 문화가 아닌 여성이다. 유아인이 페미니스트이기 위해서는 여성과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들에게 차별을 강요하는 여성'이 아니라, '여성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여성들'과 싸우고 있다. '엄방울'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할머니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맞을래?"라는 말 속에서 폭력을 당해온 역사를 이야기 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싸우는 셈이다.

유아인은 '직접적으로 맞은 적 없지 않냐'며 여성들이 직접 해오는 호소에 등을 돌린다. 실제 피해를 증명할 수 있고, 상대가 '진정한 여성'이었을 때만 사과하겠다는 유아인의 태도는 문제적이다. 사회 구조적으로 여성들이 경험한 폭력에의 공포를 외면하는 무지와 몰이해가 보인다. "맞을래?"라는 표현의 부당함을 그가 '메갈 짓'으로 묘사하는 태도 속에서, 오늘도 여성들은 의견을 제대로 말하고 상황이나 구조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여성이 순식간에 '나쁜 여성'으로 매도되는 모습을 지켜본다. 여성들의 지적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유아인은 '여성을 돕고 싶다'라고 한다.

 유아인 트윗

유아인 트윗 ⓒ 유아인트위터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유아인의 회고 속 성차별적 가정환경을 바라본다면, 그 중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이야기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와 남아 선호 사상 및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 차별에서 여성이 해방될 때 남성 또한 함께 해방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즉 차별을 철폐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꾸자는 취지이다. 유아인은 '불쌍하게 여길 수 있는 자신의 인정'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한다. 하지만 여성이 보기에 유아인은 일어나서 여성이 차별받지 않도록 맞서 싸운 사람이 아니라 '강 건너 불구경'을 한 기득권자이며 현재 여성들과 싸우고 있는 남성이다.

여성을 높은 위치에서 바라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것은 반(Anti) 페미니즘적인 태도이다. 여성과 남성이 같은 위치에 서도록 바꿔 나가고 고정 관념과 남성 주류 문화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여성들이 차별받고 상처 받아온 역사를 그저 지켜보는 '수동적 무관심' 역시 가장 일반적인 반 페미니즘적인 행동이다.

유아인의 글에는 시혜적인 위치에서 여성을 내려다보는 동정만 있을 뿐이다. 유아인은 '가짜 페미니즘'을 비판하며, 남성을 비판한다. 그리고 '나는 페미니스트'라며 자신은 비판의 대상에서 배제한다. 가족인 남자들의 제사 풍습을 '남자들이 성에 취해 허세를 부리는 상'이라는 표현으로 비판하면서도, 그 악습을 없애지 못하고 우대받고 방관하고 있던 기득권자인 자신은 그 비판 대상에서 열외로 둔다. 그런 그에게 여성들은 그가 부당하다고 느낀 제사 문화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누이가 느낀 고통을 묻고 개명을 권유했는지를 물어볼 수밖에 없다.

단지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천대받고, '너는 귀하지 않았다'는 상징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아 평생 불린 누이이다. 그 글에서 유아인은 '엄방울'이 '예쁘고 불쌍한 이름'이라고 했다. 차별의 수혜자인 유아인이 '불쌍하고 예쁜 이름'이라 표현한 말은, 부끄러움이 없고 수동적이다.

자칭 페미니스트이면서도 반 페미니즘적인 언행을 보인 유아인. 그가 '페미니스트'가 무엇인지 실제로 알고 있는지, 혹여 혼자서 뜻을 규정지은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유아인에게 있어 '페미니스트'란 표현은 차별의 수혜자인 자신이 손쉽게 비판을 빠져나가 유리한 입지에 서기 위한 탈출구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자신을 유리한 입지에 올려놓기 위한 도구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 단어를 사용하며 여성들을 공격할 리 없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노력한다면서,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한 여성을 묵살하고 공격하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유리한 입지를 위한 도구로 쓰지 않았다면, 성차별적이라는 여성들의 지적에 "상처받았다면 미안하다. 생각이 짧았다"가 아닌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만난 한 남자 동료는 '자신은 페미니스트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문화권에서 자란 남성인 자신이 여성이 평생 겪은 모든 상처와 받아온 압박들을 온전히 그대로 경험할 수 없어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남성이기에 더 높은 고지에 서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경청하고 여성을 상처 입히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 같이 서게끔 항상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 말이 사려 깊음을 유아인 덕에 알게 되었다. 지금 노력하고 있지만 이해의 부족을 인정하고 더 노력하겠다는 말이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타이틀보다 사려 깊어 보일 때가 있다.

배우 유아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현재 유아인은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을 촬영 중이다. <버닝>에는 유아인 외에도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배우 스티븐 연이 출연한다.

스티븐 연은 최근 한국 노숙자의 자립을 위한 잡지인 <빅이슈>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문화의 경계에서 약자의 입장을 경험했다"며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호소했다. 여성이 아님에도 주류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회의 문제점을 의식하며 "한국은 내가 이성애자 남성이라 호의적으로 대할 것이다"라고도 말한 바 있다.

미국 케이블 시청률 1위 드라마의 주연 배우임에도 주류 문화에게 받을 비난과 차별을 감수하고 소수자, 약자를 위해 차별 이슈마다 호소했던 스티븐 연의 용기와 유아인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위해 주류 사회에게 비판을 던졌던 스티븐 연이 페미니즘 문제로 여성들과 싸우는 중인 유아인과 <버닝>을 찍는 중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유아인의 이번 행동들로 영화 <버닝>이 개봉도 전에 제동이 걸린다면 유감스러운 일이다. <시카고 타자기>가 유아인의 군 문제로 방영 전에 구설에 올랐던 것처럼 말이다. 유아인의 소신으로 포장하기에는 그가 쓴 많은 표현들이 성차별적이다.

 리베카 솔닛 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창비


두 번의 기회를 쉽게 주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 배우들에게는 좀 더 쉽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 배우 이병헌, 박시후 등의 복귀를 통해 쉽게 증명되는 사실이다. 선택이 절박하지 않기에 귀 기울여 볼 필요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아인에게 페미니즘이 여성에게 어떤 의미인지 배우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리베카 솔닛이 지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남성인 자신이 당사자인 여성보다 여성에 대해 더 잘 안다며 가르치려든 것은 아닌지, 페미니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유아인 페미니스트 박우성평론가 버닝 맞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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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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