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01 21:10최종 업데이트 17.12.15 08:51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사람들-국가폭력피해자들이 있다. 그들의 억울함을 듣고 조사하는 과거사 위원회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들을 만나는 일을 해왔다. 나는 국가폭력피해자를 음식으로 기억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기자 말

울릉도로 향하는 여객선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묵호항을 출항한 지 1시간여가 지나자 급격히 높아진 파도로 인해 여객선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고 내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조금 지나자 여객선에 승선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멀미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급기야 멀미가 심한 사람들은 아예 화장실 앞에 누워서 죽여 달라며 울부짖기까지 했다. 그렇듯 4월의 동해바다는 사람들에게 뱃길을 쉬 열어주지 않았다.

우리는 1시간여의 지옥 같은 뱃길을 경험하고서야 울릉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라는 가사처럼 '울렁대는 가슴'이 아닌 '울렁대는 멀미'를 안고 도착한 울릉도였다.

선착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불편했던 속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편안한 속에 한껏 좋아져 선착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울릉도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의 빛깔이나 해안 바위의 색과 모양이 육지의 그것들과 분명 달랐다.

"저 분 아냐?"

배 조사관이 말했다. 흰 머리카락에 키가 제법 큰 마른 얼굴의 남자 한 분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곧장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서울서 오셨는교?"
"예, 손 선생님이시죠?"
"선생은 무신. 기냥 '손'이라고 하이소"
"아닙니다."

미리 공문서를 통해 협조 받은 장소인 울릉도군청 조사실로 함께 향했다. 조사실에 앉자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현재 위원회에서는 어디까지 조사가 됐습니꺼?"
"과거에 이 사건으로 처벌받은 사람만 32명이고, 단순히 조사받은 사람들까지 합하면 거의 100여 명 가까이 되어서 조사가 쉽지 않네요. 그래도 피해자 분들은 얼추 한두 번씩 뵈었습니다. 선생님을 뵈면 피해자는 거의 마무리 되어 갑니다."
"아무렴 그렇지 않겠습니꺼. 사건이 워낙에 큰 사건이다 보니 조사가 쉽지 않을 낍니더."

그가 고기를 씹지 못하는 이유

1974년 3월 15일자 <동아일보>. '울릉도 거점 간첩망 47명 검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울릉도 간첩단 조작사건은 중앙정보부가 북한을 오가며 간첩활동을 하거나 이를 도운 혐의로 전국 각지에서 47명을 검거,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낸 공안 조작 사건이다. 2015년 11월, 41년 만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그가 연행되던 1972년 1월의 그날은 눈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새벽에 집으로 들이닥친 남자들에게 이유도 듣지 못한 채 끌려나와 울릉도 저동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걸어 나왔다. 그가 살던 천부에서 도동까지의 거리는 20km가 훨씬 넘는 거리였다.

새벽에 출발한 그들은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양말도 신지 못한 채 끌려나온 그의 발은 감각도 사라질 만큼 꽁꽁 얼어버렸다. 그때 걸린 동상으로 지금도 겨울마다 고생을 하고 있다. 그렇게 도착한 도동파출소에는 이미 친척 여러 명이 잡혀 와 있었다. 그 길로 배를 타고 포항으로 나왔고, 헬리콥터를 타고 남산으로 끌려왔다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던 그가 나이가 들어 몸이 힘드니 좀 쉬어 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쉬었다 하자고 하자 그는 어디 가서 밥을 먹자고 한다. 마침 멀미로 고생한 뒤라 배도 고팠던 참이었다. 그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고깃집이었다.

"여기 울릉도 한우가 참 맛있습니더. 한번 드셔 보이소."

한국 어느 지역에 가 봐도 그 지역의 소고기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울릉도의 소고기가 맛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소고기는 홍성이나 횡성 아닌가?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고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한우 갈비 2인분을 달라신다. 그리고는 덧붙여서

"내 오면 먹는 거 있제? 내는 그거로."

자주 드시는 게 있는 것 같아 무엇을 주문했는가 물었더니 섭죽이라고 했다. 섭은 자연산 홍합의 다른 말이다. 강원도가 고향인 나는 동해안 해안가에서 자주 먹었던 섭죽이나 섭국이 울릉도에도 있나 싶어 매우 궁금해졌다. 나는 가게도 둘러보고 메뉴판도 둘러봤지만 섭죽이라는 메뉴는 없었다.

"아 여기 메뉴에는 없는 기고, 내가 특별히 부탁해서 만들어 주는 깁니다."
"선생님, 혹시 고기 싫어하세요? 그럼 다른 거 드시러 가시죠."
"아입니다. 내가 잘 씹지를 못해서 그럽니다."
"그럼 저희도 같은 걸로 먹겠습니다. 저희도 같은 걸로 주세요."

그는 왜 고기를 씹을 수 없는지 설명했다.

"정보부에 있을 때 날 조사하던 놈이 이치왕이란 놈이 있었습니더. 그 놈을 다른 수사관들이 '미치광이'라고 부르는 깁니더. 나를 담당하던 그 미치광이한테 을매나 맞았는지 모릅니더, 군용침대 막대기 그 단단한 걸로 때리다 때리다 지가 분이 안 풀리모 주먹으로 얼굴을 사정없이 조지는 깁니더.

본 적도 없는 사람을 만났다고 인정하라고 하는데 정말 누군지 얼굴이나 보여주면 그노마라고 인정하고 싶을 심정이었심더. 그 놈한테 을매나 맞았는지 나중에 교도소로 넘어와서 보니 이빨이 5개가 빠집디더. 그리고는 하나둘 더 빠지더니 결국 15개 넘게 빠졌심더. 그러니 밥을 올케 먹을 수가 있겠습니꺼"

교도소에 간청을 해서 교도소 밖 민간 치과병원에 나가 자비로 의치를 해 넣었다. 의치를 한 상태에서 조리 상태가 엉망이었던 교도소에서의 식사를 제대로 씹을 수가 없었고, 결국 위장병을 달고 살기에 이르렀다.

'간첩' 소리 들으면서도 악착같이 섬에서 버틴 건

1974년 7월 24일 오전 서울대법정에서 열린 울릉도 간첩단 사건 선거공판 ⓒ 연합뉴스


10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와 울릉도에 돌아온 뒤로 다시 배를 타려 했지만 예전처럼 선뜻 선원 일을 내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섬에서 먹고 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섬을 떠나지 않았다. 섬을 떠난다면 그 순간 스스로 간첩이란 걸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착같이 울릉도에서 버텼다. 그리고 결국 그는 떠나지 않았다.

울릉도에서 스스로의 삶을 증명하며 투쟁하는 동안, 치아가 다 상해버린 그를 위해 아내는 늘 홍합을 잘게 잘라 홍합 밥을 지었다. 영양도 있고, 씹기도 편한 그 밥을 간장에 슥슥 비벼 뚝딱 먹고는 일을 나가곤 했다. 그런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로는 그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자식 놈들이 뭔 죄가 있겠어요. 자식 놈들 커서는 다 포항으로 내 보냈지요. 그래서 안사람 먼저 보내고는 밥을 올케 얻어먹지 못할까 했는데 여기 식당서 섭죽을 만들어 주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그 뒤로 자주 여기 와서 자주 밥을 얻어먹고 삽니더. 좀 드셔보니 어떠니껴?"

뜨거운 섭죽을 호호 불어가며 한 숟갈 입에 넣었다. 강원도에서 먹었던 섭 요리는 본래 칼칼한 맛의 섭국이었는데 이곳의 섭죽은 맵지 않은 맑은, 그야말로 죽이었다. 자연산이라 그런가 섭의 살이 씹히는 맛이 담백하니 맛있었다. 그렇게 밥을 먹는 중에 식당의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울릉도 트위스트'였다.

"저 노래 알지요?"
"그럼요. 울릉도 트위스트 아닌가요?"
"맞심니더. 요즘 울릉도에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니 온 식당에 다 저 노래를 틀어놓는 모양입니다. 근데 난 저 노래만 들으면 징글맞습니더."
"아니 왜요?"
"그 가사 보면 육지손님 보고 데려가란 가사 안 나옵니꺼. 난 그 가사만 들으마 소름이 쫙 끼쳐요."
"아~"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누구에게는 고통을 기억해야 하는 노래가 될 수도 있었다.

배를 타고 나오며 내가 기억하는 울릉도는 호박엿도, 오징어도 아닌 섭죽으로 기억되는 섬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치아를 절반가량 잃어버릴 정도로 끔찍한 폭력을 당했던 그가, 정작 본인은 씹지도 못할 오징어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며 죽으로 끼니를 이어가는 그가 있는 그곳이 내가 기억하는 울릉도였다.

그리고 머리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래가사.

'육지손님 어서와요. 트위스트 나를 데려가세요. 나를 데려가세요.'
.
* 최근 포항의 지진으로 자식네가 걱정된다며 한숨을 쉬는 그와 통화했다. 그의 가족을 비롯해 포항의 모든 이들에게 평화로운 일상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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