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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내 지하철 내부에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된 노동자를 찾는다는 광고판이 걸려있다(자료사진).
 인천시내 지하철 내부에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된 노동자를 찾는다는 광고판이 걸려있다(자료사진).
ⓒ 민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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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틸알코올(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파견노동자가 또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2014년 삼성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한 지 4일 만에 양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당시 고용노동부의 조사나 수사는 이뤄지지 않아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2015~2016년 파견노동자로 일한 20·30대 청년 6명이 삼성전자·LG전자 스마트폰 부품 가공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시력을 잃은 사실이 지난해에 드러나면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2014년 당시 노동부 조사·수사가 이뤄지고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됐다면, 2015~2016년 메탄올 중독 실명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시력을 잃고 한국을 떠났다

<오마이뉴스>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받은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인 중국 동포 남아무개씨는 2014년 3월 3일부터 파견업체 케이오시스템을 통해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 내 도금업체 N사에서 일했다.

N사는 삼성전자 하청업체로 스마트폰 부품을 도금하고 세척하는 곳이다. 세척액으로는 독성물질인 메탄올을 썼다. 고농도의 메탄올은 사람의 중추신경계와 시신경을 망가뜨린다. 메탄올은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인체에 덜 해로운 에틸알코올(에탄올)에 비해 가격이 싸다.

노동부의 메탄올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따르면, 메탄올을 취급하는 노동자는 외부로부터 깨끗한 공기를 공급받는 송기마스크를 비롯해, 보안경·보호복·보호장갑·보호장화 등을 착용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도 보호장비 착용을 비롯해 유해물질을 작업장 바로 위에서 빨아들여 외부로 배출하는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남씨는 N사에서 일한 지 4일 만인 7일 어지럼증, 메스꺼움, 구토, 호흡곤란 증상을 겪었고,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남씨는 대사성 산증과 시력 저하 등 메탄올 중독 진단을 받았다.

이후 수원 아주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남씨의 두 눈은 어떠한 빛도 느끼지 못하는 '광각무 상태'로 진단됐다.

남씨는 한 달 뒤 메탄올 중독으로 인한 시신경염으로 산재보험 요양급여를 신청해 승인받았다. 이후 치료를 계속 받다가, 2014년 11월 한국을 떠났다.

기자는 남씨에게 전화를 했지만, 통화연결음만 이어졌다. 남씨를 도운 노무법인과 파견업체 케이오시스템은 폐업 등의 이유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현재 운영 중인 사용업체 N사에 남씨의 실명과 관련해 문의했지만, 이 회사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아는 사장이나 관련 책임자가 해외 출장 중이라 만날 수 없다"라고 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2015년 12월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된 한 파견노동자가 근무했던 공장 내부 모습으로, 공장 한편에 메탄올통이 쌓여있다(자료사진).
 2015년 12월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된 한 파견노동자가 근무했던 공장 내부 모습으로, 공장 한편에 메탄올통이 쌓여있다(자료사진).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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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조사나 수사는 없었다

남씨가 쓰러진 후, 사고가 난 사업장을 담당하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산지청은 별다른 조사나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남씨가 시력을 잃은 과정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사례가 있었는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안산지청은 2년 뒤인 2016년 4월 메탄올 중독 실명 사고 이후 메탄올 취급 사업장 일제 점검을 하면서 N사를 찾았다. 이곳에서 2013년 11월 ~ 2014년 5월 메탄올이 사용됐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2016년 메탄올 중독 실명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남씨의 사례를 확인한 후, 안산지청 쪽에 당시 수사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안산지청은 해당 사고는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에 따른 정기·수시·특별감독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한 2014년 일반재해조사대상 선정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메탄올 중독 사고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돕고 있는 박용호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재해를 조사하거나 수사하지 않고 유사재해 예방을 하지 않은 것은 대한민국의 주의의무 위반"이라고 밝혔다.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을 뜯어보면, 유해화학물질 누출 등으로 급박한 안전·보건상의 위험이 있는 사업장은 수시 감독 대상이다. 또한 안전·보건관리가 매우 불량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거나 일으킬 우려가 있는 사업장은 특별감독 대상이다.

실명 사고가 일반재해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안산지청의 해명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재해조사대상 선정 기준 5가지는 ▲팔목·발목 이상 절단 ▲다발성 분쇄골절·요추 골절 재해 ▲화상 깊이 3도와 체표면의 10% 이상인 재해 ▲4주 이상 의식불명이거나 사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는 재해 ▲지청장이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재해다.

한정애 의원은 "팔목 절단 사고는 조상 대상에 포함하면서 두 눈을 실명한 사건을 조사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라면서 "당시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조사·수사하고 메탄올 취급 사업장 전수조사나 예방대책을 내놓았다면, 그 이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고용노동부가 제 역할을 했다면, 2015~2016년 청년 6명의 실명을 막을 수 있었다"면서 "이 사건 처리 과정에 관여한 사람을 밝혀서 책임을 묻고 파견노동자의 위험을 방치하는 노동행정을 개혁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4~6월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삼성·LG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파견노동자 청년 6명을 조명하는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기획 기사 시리즈를 내놓았다. 다음 스토리펀딩에도 연재해 1745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클릭]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기획기사와 후속보도 모아보기


태그:#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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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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