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파'가 살아나고 있다. 한동안 극심한 부진으로 한국 축구의 자부심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유럽파가 월드컵 본선을 약 7개월 남겨두고 소속팀에서 잇단 맹활약으로 청신호를 밝히고 있다.

권창훈(디종)은 최근 정규리그 3경기 연속 골을 터뜨리며 팀의 주전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권창훈은 29일(한국 시각) 프랑스 1부리그 아미앵 SC와 정규시즌 원정경기에서 전반 15분 환상적인 감아차기로 동점 골을 터뜨리며 18일 트루아전, 26일 툴루즈전에 이어 3경기 연속 골이자 시즌 5호골을 폭발했다. 지난 시즌 K리그 수원에서 프랑스 리그앙에 진출했던 권창훈은 초반에 적응기를 거치며 고전했으나 올 시즌에는 팀의 주전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모습이다.

저니맨 석현준(트루아)도 기나긴 방황을 마치고 프랑스 리그앙에서 부활의 나래를 펴고 있다. 석현준은 지난 26일 앙제와 홈 경기에서 원톱 공격수로 나서 3경기 연속 골 맛을 봤다. 2016년 포르투(포르투갈) 이적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던 석현준은 터키-헝가리로 잇달아 임대 생활을 다녀오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하며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3번째 임대였던 프랑스 리그 트루아에서 자신감을 회복하며 골잡이로서의 면모를 되찾아가고 있다.

부상을 털고 돌아온 황희찬(잘츠부르크)도 최근 2경기 연속 골을 기록했다.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활약중인 황희찬은 오른쪽 무릎과 허벅지 부상으로 두 달간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복귀 일주일 만에 두 골을 몰아넣으며 맹활약 중이다. 황희찬은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벌써 시즌 9골을 넣어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 달성을 바라보고 있다.

 신태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12월 8일부터 16일까지 일본에서 열리는 2017 동아시안컵에 출전할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신태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12월 8일부터 16일까지 일본에서 열리는 2017 동아시안컵에 출전할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들 3인방은 신태용 감독과는 리우 올림픽에서 나란히 호흡을 맞춘 멤버들이자 성인 국가대표팀에서도 승선한 경험이 있는 멤버들이다. 권창훈은 이미 지난 11월 콜롬비아-세르비아와의 2연전을 통하여 신태용호의 베스트11로 자리잡았다. 황희찬은 부상으로 11월 A매치에서는 불참했지만 건강하다면 여전히 신태용 감독의 플랜 A로 거론되는 공격수다. 석현준은 지난해 10월 이후 대표팀과는 한동안 인연이 없었으나 탁월한 신체조건과 골결정력으로 현재 신태용호에 몇안되는 정통 '타깃맨' 자원으로 꼽히고 있다.

유럽파의 부활은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을 앞둔 신태용 호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축구는 최근 유럽파의 침체가 길어지며 고민이 깊어졌다. 대표팀의 전력이 몇 년째 정체된 배경에도 팀내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유럽파들의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한국 축구는 2000년대 이후 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설기현 등 세계 무대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해외파 선수들을 다수 배출했다. 월드컵같은 큰 무대에서도 이들의 능력을 앞세워 좋은 성적을 올렸다. 유럽파 선수들은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 활약한다는 상징성만으로도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한국 축구의 가장 확실한 무기로 특별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기점으로 이런 환상에 금이 갔다. 당시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 구자철, 김보경, 지동원 등 경기력이 좋지 않았던 유럽파들을 무리하게 중용하며 '의리 축구' 논란을 일으켰으나 정작 대표팀은 1무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피하지못 했다. 오히려 홍명보 호에서 과소평가 받던 K리거들이 그나마 선전하며 '유럽파 우월론'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그 뒤를 이은 슈틸리케 호나 신태용 호 역시 유럽파에 대한 기대감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특히 신태용 감독은 해외파로만 구성된 지난 10월 러시아-모로코와의 A매치에서 2연속 참패를 당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유럽파들의 형편없는 경기력과 투지 부족도 도마에 올랐다. '소속팀에서 꾸준히 출전을 못하거나 경기력이 좋지 않은 해외파'와 '이름값은 떨어져도 소속팀에서 안정적으로 활약하는 K리거' 중 어느 쪽이 더 대표팀에 적합한가의 문제가 최대 고민이 됐다.

분명한 사실은 대표팀에는 여전히 유럽파의 경험과 재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큰 무대에서 활악하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했던 유럽파의 노하우는 월드컵에 도전해야하는 한국축구에게 있어서 귀중한 자산이다.

손흥민(토트넘)-기성용(스완지시티)-구자철(아우스크부르크) 등은 2010년대 이후 꾸준히 유럽파의 간판이자 축구 대표팀에서도 핵심 멤버로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몇 년간 이들을 대체할 경쟁자들이 등장하지 않다보니 일부 주축 선수들에게만 너무 많은 부담이 몰리고 상대 수비의 집중 견제에도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리우 올림픽 멤버인 황희찬, 석현준, 권창훈 등의 상승세가 더해지고, 여기에 국내파와의 건강한 경쟁구도까지 살아난다면 신태용 호는 월드컵에서 한결 희망이 생긴다. 유럽파들의 동반 부진으로 고민하던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관건은 현재 유럽파들이 큰 부상없이 내년 월드컵까지 소속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는 것이다.

대표팀은 아직 더 지켜봐야할 유럽파들이 남아있다. 한동안 잊혀진 이름이지만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박주호(도르트문트) 등은 포기하기에 아까운 이름들이다. A대표팀에서는 아직 승선한 경험이 없지만 재능면에서는 차세대 유망주로 꼽히는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역시 한번쯤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자원이다. 유럽파가 함께 살아나야 신태용호도 더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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