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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제씨가 근무하는 버스 회사 차고지
 고정제씨가 근무하는 버스 회사 차고지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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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인한 사망 사고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다를 수 있을까? 버스 회사 측은 '기사의 부주의' 탓이라 진단했고, 버스 기사들은 신호 위반, 과속 등 난폭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무리한 운행 일정' 등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사망 사고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 원인을 서로 다른 데서 찾고 있다. 사망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경기도 안양에 있는 한 버스회사에서 지난 9월~10월 한 달 사이에 무려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모두 버스 기사가 신호를 어겨서 발생한 사고였다. 그런데 버스 기사가 신호 위반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놓고, 버스 회사와 기사 사이에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회사는 "안전 운전에 집중하지 않고 빨리 운행을 마친 뒤 좀 더 쉬려는 생각만 가지고 운전해서 사고가 난 것"이라며 버스 기사를 몰아붙였다. 이어 사고 처리 비용 등으로 많은 지출을 해서 회사가 어려우니, 의무 운행 횟수(하루 6회)를 철저히 지키고, 의무 휴식 시간도 기존 20분에서 15분으로 줄이라고 지시했다.

버스 기사들은 이러한 회사의 방침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기사들은 "무리한 운행, 충분히 쉴 수 없는 열악한 노동 환경 탓"에 사고가 났다는 의견이다. 그런데도 운행 횟수를 줄이기는커녕 도리어 의무 운행 횟수를 철저히 지키라고 압박했고, 휴식 시간도 줄였다며 항의했다.

기사 A씨는 "지난 9월 가장 심하게 잡아 돌린 노선에서 두 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휴식시간 15분은 화장실 가기도 바쁜 시간이다. 나한테도 그런 사고 나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글을 SNS(밴드)에 올렸다.

B씨는 "이익을 위해 기사를 위험에 노출하는 행태에 치가 떨린다. 수 시간 운행한 뒤에는 재충전 시간이 필요하다. 피로가 누적되면 3건의 참사가 (또) 초래될 것이다. 사고 나면 기사 자르고 보험 처리하고 끝나겠지만..."이라는 글을 올렸다.

안전 운전을 위해 5분 더 쉬겠다고 하자, '일 하지 마!'

버스기사 고정제씨
 버스기사 고정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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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휴식시간에 불만을 나타냈다가 징계를 받은 사람도 있다. 이 회사 버스기사인 고정제씨(46)다. 고씨는 '15분 휴식은 부당하다고 항의하며 20분 휴식'을 요구했다. 그러자 회사 측은 그에게 '승무정지'라는 징계를 내렸다.

그런데 이 징계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노사가 합의해서 체결한 단체협약 절차에 따라 내린 징계가 아니었다. 아무런 절차 없이 느닷없이 내린 징계였다. 단체협약을 어긴 것이다.

고씨는 지난 11월 29일 오전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3시간 일하고 들어온 사람한테 15분만 쉬고 다시 나가라고 했다. 그래서 안전 운행을 위해 20분은 쉬어야겠다고 항의했더니, 지시 안 따를 거면 집에 가라며 강제로 차키를 뽑아 버렸다"라고 말했다.

이어 "무리한 운행 일정과 부족한 휴식, 그로 인한 난폭 운전 때문에 사고가 났는데, 회사는 휴식 시간을 줄이고, 의무 운행 횟수를 강제하는 엉뚱한 방침을 내렸다"라며 "(회사가) 사고를 예방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라고 비난했다.

고씨에 대한 '승무 정지'는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고씨는 현재 버스를 하루 1~2회밖에 운행할 수 없다. 월급은, 시급으로 계산하면 35만 원 정도를 받게 된다. 고씨는 "회사가 이런 식으로 불이익을 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입사하면서)부터 그랬다"라며 회사 측과의 갈등을 털어 놓았다.

"처음 입사 했을 때다. 신호 위반 같은 것 안하고 안전 운행을 했더니 1회 운행에 1시간 30분이 걸렸는데, 회사에서는 그 시간에 밥까지 먹으라고 했다. 난폭 운전 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1달을 그렇게, 밥을 먹은 게 아니라 들이 마시며 버텼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식사시간 20분을 보장해 달라고 항의했더니, 보복이 뒤따랐다. 운행을 도저히 할 수 없는 노후 된 차를 배정한 것이다. 그 다음, 집하고 먼 곳으로 예고도 없이 발령을 내 버렸다."

고씨는 무리한 운행 일정으로 인한 어려움도 호소했다. 과도한 운행 시간으로 몸에 무리가 온다는 주장이다.

"신호위반, 과속을 안 하고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하루 6회 운행을 채울 수가 없다. 정말 피곤하기도 하다. 눈이 침침해서 차간 거리를 인지하지 못하겠다는 기사도 있다. 예전에는 하루 7회 운행도 했는데, 총 노동 시간이 21시간이었다. (그때는) 너무 피곤하니까 나중에는 도로가 위로 솟구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고씨는 버스 사고를 방지하려면 다른 버스 회사들처럼 운행 횟수를 줄여야 한다고 사실을 강조했다.

"안전운전을 하려면 (제 노선의 경우) 5회 운행이 적당하다. 광명시에 있는 한 회사는 2년 전 사망 사고 난 다음에 회사에서 스스로 운행횟수를 1회 줄였고, 신호 위반 절대 하지 말라는 공지도 했다. 우리 회사하고는 완전히 다른 처방을 내린 것이다. 또 시흥에 있는 한 회사는 안전 운행을 위해, 예컨대 3시간 걸리는 노선이면 3시간 경과 이전에는 차고지에 못 들어오게 한다. 일찍 들어오면 신호 위반 같은 난폭 운전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눈이 침침해 차간 거리를 인지하지 못하기도..."

회사측 공고문, 사망사고 원인이 기시의 부주의 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회사측 공고문, 사망사고 원인이 기시의 부주의 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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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스회사는 '난폭 운전'을 많이 하기로 이미 잘 알려진 곳이다. 무정차, 신호위반, 불친절 등으로 한 달에 300여 건의 민원(고발)이 접수된다는 게 안양시 관계자 말이다. 지난 11월 30일 오전 안양시 관계자는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200~300건 정도의 민원이 발생하지만, 단속하고 처벌을 해도 고쳐지지가 않는다"라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는 "운행횟수 많고 휴식시간이 짧다고 기사들이 몇 년 째 항의해, 수차례 지적을 했는데도 개선이 안 된다. 배차 간격 8분이 인허가 사항인데, 그것을 안 지켜 수차례 단속을 했는데도, 이 또한 개선이 안 된다. 정말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달랐다. 회사 측은 "무리한 운행일정 등으로 인해 난폭 운전을 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사망 사고도 났다"는 버스 기사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11월 30일 오후 버스 회사의 한 관리자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기사들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난 모르겠다"라는 말을 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기 전에, 버스 기사가 일을 할 수 없도록 차 키를 뽑은 사실이 있냐고 물었을 때도 "직접 뽑지 않았으니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버스 회사로부터는 그 이상 별 다른 말을 듣지 못했다.

버스회사 공고문, 휴식 시간을 15분으로 한다는 내용.
 버스회사 공고문, 휴식 시간을 15분으로 한다는 내용.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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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회사 기사들이 밴드에 올린 글
 버스 회사 기사들이 밴드에 올린 글
ⓒ 고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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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버스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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