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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정년퇴직 이후부터라는 말이 실감나는 모습이다.
▲ AUD에서 근무중인 윤제환 선생님 인생은 정년퇴직 이후부터라는 말이 실감나는 모습이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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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보통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말이지? 소리를 어떻게 눈으로 보게 해? 소리는 귀로 들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면서 의아해 할 것이다. 이 말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의 소망을 담은 말이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에게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글로 보여 준다는 것은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휠체어를 만들어서 타고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나 역시 청각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소리를 글로 보여주면 많은 도움이 된다.

AUD라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이 있다.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일을 하는 곳이다. 청각장애인에게 수화 대신 문자로 통역을 해준다. 나는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된 지 2년이 되었다.

지난 9월초, AUD에 50+재단(만 50~67세의 중장년층에게 그동안 쌓아온 경험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하도록 돕고 맞춤형 지원정책을 추진하는 기관)에서 하는 사업에 참여한 시니어인턴이 오셨다. 어떤 분이길래 AUD처럼 작은 사회적협동조합에 오셨을까 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만나러 갔다.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박원진 이사장 및 직원 두 명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는데 목소리가 굉장히 컸다. 정년퇴직을 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적극적이셨고 두달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에이유디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모습이었다. 인터뷰 하는 내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2009년에 정년 퇴직을 했으니까 올해로 8년째죠. 저는 퇴직하고 주로 성당에서 활동을 했어요. 쌍문동 성당, 월곡동 성당에서 총회장으로 활동했어요. 어느날,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생활공감모니터단이라는 봉사단체를 알게 됐고, 그 단체를 통해 50+재단이 있다는 것도 알았죠. 50+재단에서는 펠로우십이라는 교육과정이 있어요. 말하자면 인턴교육과정이죠. 근데, 사회에서 어느정도 지위에 있었던 분들인데 인턴이라고 부르면 싫어하니까 펠로우십이라고 불러요.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나이가  만으로 67세예요. 저는 아슬아슬하게 만 66세이어서 교육을 신청하고 받았죠.

1주일 교육을 받고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 이런 곳으로 파견근무를 하게 돼요. 15개의 회사가 있었는데 23명의 지원자가 왔죠. 8명이 떨어졌어요. 본인이 가고 싶은 곳을 세 군데 중에서 선택해요. 그런데 아름다운재단이나 아름다운 커피 이런 곳은 지원자가 많아요. 에이유디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한번 가봤어요. 갔더니 박원진 이사장이 있어요. 박원진 이사장과 만나서 큰소리로 말하고 연필로 쓰면서 얘기해 보니까 홍보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마침 홍보쪽을 지원했고요. 그래서 맞아떨어져 일한다고 했죠."

윤제환 선생님은 중앙대학교 행정실에서 30여년을 근무했고, 홍보부장으로 12년을 일한 배테랑 홍보요원이다. 중앙대 마크를 "CAU"로 바꾸자고 제안해 바꾼 분이기도 하다. 그런 일을 해 본 경험에 힘입어 지난 11월 4일에 치른 에이유디의 가장 큰 행사, <소통이 흐르는 밤>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소통이 흐르는 밤>이라는 행사를 준비할 때였죠. 이런건 많이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언론사에도 홍보를 해야 한다고 얘기했죠. KBS부터 MBC, SBS, YTN, 연합뉴스, 조선일보, 세계일보에까지 보도자료를 다 뿌렸어요. 하지만 언론사들이 워낙 많은 보도자료를 받으니까 뿌린다고 다 보지 않죠. 그래서 일일히 전화를 했어요. 마침 연합뉴스에 있는 지인이 관심을 보였어요. 자료를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줬더니 <소통이 흐르는 밤> 낮 행사에 취재하러 온다고 하더군요.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만든 회사이고 좋은 일을 하는 곳이니 기사거리가 될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취재해서 찍은 장면이 뉴스에 나왔어요. 그걸 보고 에이유디 직원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직원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뿌듯했지요."

소통이 흐르는 밤은 AUD조합원간의 소통과 화합을 목적으로 장기자랑도 하고 각 영역에서 활동하는 조합원의 활동을 발표한다.
▲ AUD의 <소통이 흐르는 밤> 행사 장면 소통이 흐르는 밤은 AUD조합원간의 소통과 화합을 목적으로 장기자랑도 하고 각 영역에서 활동하는 조합원의 활동을 발표한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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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그날 저녁, 우연히 연합뉴스로 채널을 돌렸다가 <소통이 흐르는 밤> 행사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관련영상) 비록 1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 이었지만 조합원이 190여명 되는 작은 사회적 기업인 에이유디가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짧은 장면을 위해 애쓴 윤제환님의 숨은 노고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 에이유디에 와서 놀란 게 하나 있어요. 직원들이 제 입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일부러 입을 크게 하고 말했어요. 박원진 이사장님은 입보양을 보고 금방 알아듣더군요. 다른 젊은 친구들 하고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어요. 왜냐면, 우리 어머니가 치매를 앓았었거든요. 장애 3등급을 받았죠. 장남인 내가 어머니를 7년동안 간호하면서 모셨어요. 그런 경험이 있다보니 장애에 대해서 이해하기가 쉬웠어요. 또, 여기 와서 보니까 사무실 분위기가 밝아요. 제가 성당에 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신을 믿는 사람의 표현으로 영이 맑다는 말이 있는데, 박원진 이사장님이 그런것 같아요. 영이 맑아. 무슨 얘기를 하면 열린 마음으로 듣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기탄없이 경험을 얘기해주고 그랬지. 소통이 잘 되었어요. 처음에 와보니 여기는 카톡을 많이 쓰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타자가 좀 느리지만 카톡으로 말했어요. 홍보부장으로 있었으니까 기자들하고 소통 하려면 카톡 안하면 안되죠."

이제 12월 11일이면 펠로우십이 끝난다. 윤제환님은 펠로우십이 끝나도 에이유디에서 봉사 활동을 할 마음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펠로우십이 끝나도 에이유디가 됐든, 어디가 됐든, 시간이 나면 봉사활동을 계속 하고 싶어요.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아직은 사회 활동을 하는 게 나으니까요. 박원진 이사장이 펠로우십 끝나가니까 2018년 홍보 계획안을 세울 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세웠죠. A4 용지로 10페이지를 만들어서 줬어요.

내가 두 달 조금 넘게 여기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되었던 일은 아까도 말했듯이 '소통이 흐르는 밤' 행사 할 때 언론사에 보도자료 뿌려서 연합뉴스에서 취재했을 때고요, 그 행사에 조합원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일일히 전화를 걸었어요. 이틀 동안 전화를 했더니 전화요금이 이만 원이 나오더라구요. 그건 내가 봉사하는 차원에서 한거니까 감수했죠. 물론 청각장애인이 아닌 조합원한테만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조합원들이 에이유디에서는 항상 문자만 하고 (청각장애인들이 운영하는 회사니까)전화를 안하는 줄 알았는데 전화를 해서 놀랐다, 감동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이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보람을 느꼈죠. 나도 아직은 쓸모가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이틀 동안 전화를 했는데, 다하고 나니 목이 아프긴 했어요.(웃음)"

나이 좀 먹었다고 '꼰대 짓'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일까? 60대를 훌쩍 넘긴 분이 인터뷰 하는 내내 이렇게 적극적이고 열정이 가득한 모습으로 말씀 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60세가 넘었고, 사회생활 할만큼 했고, 산전수전 다 겪어 봤다고 일장연설이나 하면 어떡하지? 폼 잡고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건 아닐까?' 라며 짐작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인터뷰 마지막에 윤제환 선생님은 자신의 '꿈'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망원동의 한 성당에 청각장애인 신부님이 있어요. 신자중에는 청각장애인도 있고요. 지금까지는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할 때 수화통역사만 있었는데 이제 에이유디에서 문자로 딱 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전화를 해 봤더니 신부님이 지금 외국에 나가있대요. 곧 들어오신다니까 들어오시면 다시 전화해서 얘기해 보려고요. 미사 집전할 때 에이유디에서 문자 쏘는거, 그거를 보는 게 지금의 내 꿈이라면 꿈이죠."  

"AUD는 현재,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라는 슬로건으로 스토리펀딩을 진행중이다. 후원금이 모이면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을 하는 데 쓰인다고 하니 많은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린다"는 말씀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에이유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에이유디, #50+재단, #시니어인턴,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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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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